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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9일(화) 비전트립 둘째날: 섬진강 진메마을, 전주시 이모저모

by 서귀포강변교회 2008. 2. 7.

 

 

 

 

 

 

 

 

 

 

 

 

 

 

 

 

 

 

 

한국의 대표적인 농촌 시인. 우리의 뿌리이면서, 이제는 낯선 풍경이 되어버린 시골 마을과 자연을 소재로 소박한 감동이 묻어 나는 시와 산문들을 써 왔다. 고향인 섬진강변 진메마을은 대표적인 문학기행 코스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김용택은 부인보다 설거지를 잘 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큰 아들이란 이유로 집안일을 모조리 떠맡아 했던 관록의 산물이다. 밥 안쳐 놓고 나면 개울에서 다슬기 잡아 국거리 삶고, 보리밭 고추밭 매고, 나무 해다 나르고, 동생 다섯 기저귀 갈아주고 업어주고......

1970년 5월, 22세의 김용택은 이웃 면의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교사 수가 턱없이 부족해 고등학교 졸업자를 공채하던 때였다. 이웃 면의 한 분교로 발령 받은 교사 초년병 시절, 오전 수업 끝나면 무료하게 꾸벅꾸벅 조는 것이 일이었다. 그 해 겨울, 월부 책장사가 찾아와 그의 잠을 깨웠다. 두툼하고 널찍한 양장판의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사서는 긴긴 겨울 내내 푹 파묻혀 두 번을 독파했다.

봄이 되자 이제는 김용택이 책을 찾아 나섰다. 읍내 책방에서 박목월 전집 열 권을 산 것을 필두로, 월급 날이면 전주로 나가 돌아올 차비만 남기고 가방에 책을 가득 채워 오는 세월이 시작됐다. 새벽까지 책을 읽고 코피를 쏟으면서도, 책이 있어 행복했고, 책이 있어 제대로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독학으로 문학 수업을 하며 십여 년의 세월을 보낸 후, 나이 서른 넷에 창작과비평사에 보낸 시편들이 눈에 띄어 등단했다. 세상은 그를 주목했고, 그는 자연과 시골 사람들을 소재로 한 독특한 서정적 문학세계를 창조해 나갔다. 그러나 문인이 된 지금도 그의 생활에 달라진 것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는 시골 분교의 선생님이며, 교장 선생님은 절대 되지 않겠다는 고집 또한 여일하다.

그의 별명은 '땅콩'. 시골 분교의 아이들이 붙여 준 별명이다. 그의 분교 역시 땅콩처럼 작다. 선생님 두 명에 전교생은 대략 10여명. 두 학년을 함께 가르치는 복식 수업을 하는 곳이다. 전주에 사는 안도현 시인의 아들과 함께 그의 아들이 '교환학생'으로 다녀 가기도 했다.

시인은 여전하지만, 그를 둘러싼 고향 풍경은 많이 변했다. 처음 교사로 부임했을 때 20~30명의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다니던 강변길에 아이들이 하나 둘 줄어 가더니, 언제부턴가는 텅 빈 하교길을 혼자 걸어가는 아이를 보게 되었다. 이제는 그마저도 경지 정리로 없어지고, 그는 전주에서 자동차로 출퇴근한다. 시인의 말처럼 길은 사라지고 도로만 남았다.

나는 시를 늘 내 삶만큼만 쓴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글이고 무엇이고 간에 모든 것이 내 삶에서 나온다고 믿으며 살았다. 잘 살아야 잘 쓴다,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좋은 글도 쓴다. 글이고 무엇이고 간에 세상의 이치는 다 같다. (1997년 소월시 문학상 수상 소감 중에서)

 

 

 

 

 

 

 

 

 

 

 

 

 

 

 

 

 

 

 

 

 

 

 

 

 

 

 

 

김용택 시인이 2008년 8월, 모교인 전북 임실 덕치초등학교에서 40여 년간의 교단생활을 마친다.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는 김용택 시인이 교사로서는 마지막으로 펴내는 동시집이다. 평생을 '꽃, 풀, 새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 살아온 시인이 고향 마을과 산골 학교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한 권에 담았다.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같은 곳에 뿌리박고 산 시골 촌놈으로서, 마을 아재로서, 교사로서, 동무로서, 산골 학교 아이들과 함께 40여 년을 살아 온 김용택 시인. 그는 먼 기억 속에서 불러온 아련한 시골의 풍경이 아니라, 지금의 아이들이 발 디디고 있는 현실로서의 시골을 이야기한다. 또, 관념 속의 어린이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날마다 부대끼며 함께 울고 웃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수록된 총 51편의 동시들은 모두 5부로 나뉘어 실려 있다. 제1부와 3부에는 아이들의 눈높이로 시골 생활에서 발견한 작은 생명 이야기, 제2부와 4부에는 산골 아이들의 일상과 외로움, 그리고 마지막 제5부에는 산골 아이들의 일상을 다양한 풀꽃들의 모습에 투영한 시가 담겨 있다.



수현이의 일기

오늘도 해가 질 때까지
동네 앞 찻길에서
밤을 팔았다.
사람들이 사 가기도 하고
안 사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물어보고 비싸다고 하면서
그냥 가는 사람도 있다.
밤을 팔면서 오래 앉아 있거나
서 있으면
너무 춥다.


김용택 (작가프로필 보기) -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1982년 창비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1' 외 8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6년 '맑은 날'로 제6회 김수영문학상을, 1997년 제12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2008년 여름, 고향 마을 임실의 덕치초등학교에서 40여 년간의 교단생활을 마치며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를 펴냈다.

시집으로 <섬진강>, <맑은 날>, <누이야 날이 저문다>, <그리운 꽃편지>, <강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그대, 거침없는 사랑>, <그래도 당신>, <언제나 나를 찾게해주는 당신> 등이 있고, 산문집 <작은 마을>,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섬진강 이야기>,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김용택의 교단일기>, <사람> 등이 있다. 이밖의 작품으로 장편동화 <옥이야 진메야>,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등이 있다.

내가 날마다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는 곳은 아주 작은 산골 학교입니다. 뒤에는 커다란 산이 있고 아래로 작은 강이 흐르는 언덕에 자리 잡은 곳이지요. (중략) 나는 어릴 적 이 학교를 다녔고, 이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교사가 되어 이 학교에 돌아왔습니다. 그 뒤 이 학교에서만 40년 가깝게 머물며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놀고 울고 웃었습니다. 산 아래 강 언덕에 자리 잡은 작은 학교에서 나는 자연과 어린이들과 농부들과 함께 평생을 산 셈입니다.

이 책 속 동시는 내가 40년 동안 다닌 학교와 동네 이야기를 담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대길이, 태성이, 성민이, 소희, 현아 같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입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지내며 자연을 품은 마음을 쓰고 싶었습니다. 길 잃은 작은 새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풀잎에 맺힌 조그만 이슬방울을 찾아내는 눈, 작디작은 꽃다지를 들여다보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호기심 가득한 몸짓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 아이들의 이야기가 더 많은 아이들에게 전해져, 우리 모두가 그 아이들처럼 세상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되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함께 숨쉬고 있다는 걸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이제 40년 동안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 온 학교를 떠납니다. 그렇지만 교사로서만 떠나는 것이지 영영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 풀꽃과 벌레와 새, 그리고 바람과 구름과 햇빛까지, 학교와 동네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생명들을 들추어 보고 들여다볼 것입니다. 그곳에서 더 재미난 이야기를 모아 여러분에게 들려줄 것입니다.

2008년 여름, 섬진강 작은 학교를 떠나며 -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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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마을을 뒤로하고 이제 전주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