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아방주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6:13-22)
방주의 재료 : 고페르(속죄), 역청(코페르 : 속죄)
2. 노아의 방주 발견과정
노아의 방주를 발견했다는 기록은 고대와 중세의 많은 문헌에 나타나 있다.
먼저 BC 275년경 베로수스는 바빌로니아라는 역사책에서 '아르메니아에 있는 고르디엔 산맥에는 아직까지 배의 일부분이 남아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역청의 조각들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부적으로 사용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배의 일부분은 아르메니아에 아직 남아있으며... 사람들은 역청을 가져다가 부적으로 사용한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이 장소를 방주가 보존된 하강한 곳으로 부르며, 오늘날까지 그 곳의 거주민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4세기경 살라미스의 주교 에피파네스는 '노아의 방주의 잔해가 쿠르드의 나라에서 지금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산기슭에서 노아가 방주를 떠날 때, 주 하나님께 정결하고 살찐 짐승을 희생 제물로 제사를 지낸 제단의 잔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으며,
초대교회 교부였던 요한 크리소스톰은 '노아의 방주가 있는 아르메니아의 산이 그것의 증거가 되지 않는가? 그리고 또한 노아의 방주 잔해가 요즘까지 우리에게 경고로서 거기에 남아 있지 않는가?' 라고 하였다.
15세기말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는 아라랏산 근처를 통과하면서 '아르메니아 중앙에 아주 크고 높은 산이 있는데, 그 위에는 노아의 방주가 남아 있다고 하며 그래서 이 산은 방주의 산이라고 불리고 있다' 라고 기록하였으며,
1647년 아라랏산 근처에 살았던 아담 올리어리우스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방주 잔해들은 단단하게 되어 그들은 완전히 석화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들은 메디아 페르시아에 있는 샤마키에서 검고 단단한 나무 십자가를 보았는데, 그 곳 주민들은 그것이 방주의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확신하였다.'고 하였다.
아마도 방주를 가장 많이 목격한 사람은 프랑스 보르도의 사업가, 페르난도 나바라 이다. 그의 첫 탐험은 1952년 8월로서, 세상에 방주가 존재하고 있다고 증거하는데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빙하의 얼음 덩어리 밑에 있는 배 모양의 거대한 검은 물체는 방주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1953년 7월에 터키 사진사, 알래딘 세커를 동반하고 두 번째 탐험을 하였다. 그러나 악천후로 인해 방주의 파편을 가져오거나 사진을 찍는데 실패했다. 1955년 6월에 세 번째의 탐험이 이루어졌다. 1955년에 나 바라는 그의 아내와 세 아들과 함께 터키에 돌아왔다. 여행의 목적은 오직 아라랏 산에 올라 방주를 보았거나 만져보았다는 결정적인 증거들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마침 1955년은 수십년만에 빙하가 가장 많이 녹는 해로 탐험하기에는 적당하였다. 아내와 두 아들을 뒤에 두고, 이제 11살인 그의 막내아들 라파엘과 함께 나바라는 아라랏 산에 등정하였다. 마침내 이 부자는 방주 사진을 찍었던 곳에 이르렀다. 나바라 혼자서 로프 사닥다리를 타고 빙하의 갈라진 틈으로 내려가서 흙 속에 묻혀있는 방주를 찾아냈다. 거기에는 잘 잘려지고 손으로 다듬어진 나무 버팀목들이 있었다. 상당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5피트의 나무 조각을 잘라내어 들어 올렸다. 이 파편이 실제 방주의 것인지는 파편의 연대에 달려있다. 나바라는 몇몇 관계 당국에 나무 파편들을 보냈다.
이집트의 농무성은 이 시커먼 나무 파편의 연대를 약 BC 5,000년이라고 추정하였으며, 재질은 참나무라고 발표했다. 또한 나바라는 카이로 박물관의 고고학부서에도 이 나무 파편을 보냈다. 카이로 박물관에서는 약 5,000년에서 6,000년 되었다고 발표했으며, 이들은 방사성 연대측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주를 탐사하는 데에는 아직도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고 있었다. 정부의 통제, 신체적인 어려움, 악천후의 날씨, 각종 동물들의 공격, 빙하 등이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였다.
3. 노아방주와 홍수사건이 주는 영적인 교훈(벧후3:3-14)
창조 - 홍수심판 - 주 예수님의 강림 - 최후의 심판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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