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목회단상

미국제 '영성'에 속지마십시오.

by 서귀포강변교회 2006. 12. 1.

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자 (마이클 호튼) 
 
주관주의와 물량주의, 그리고 감각적 체험주의는 미국교회의 현실의 한 부분이며, 동시에 한국교회에서도 발견되는 부끄러운 부분들이다. 저자는 강단의 메시지에서 기독교복음의 본질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도적 신앙의 붕괴와 복음주의 신앙의 쇠퇴도 언급한다.

 

복음주의 신앙이란 “사도적 증거에 기초하고 펠라기우스주의와의 투쟁에서 어거스틴에 의해  재확인되고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재발견된 역사적 기독교신앙이다”(도날드 블뢰쉬).


저자는 설교자들이 ‘죄인’이라는 말대신 ‘구도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심판의 하나님을 말하지 않고 ‘대하기 쉽고’ 다정다감한 하나님에 관해 설교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칼빈주의자인 저자는 미국교회에 널리 퍼진 알미니안주의와 오순절주의에 대해 염려한다.
하나님의 주권보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강조되고, 실용주의적 전도를 장려하는 현실을 꾸짖는다.

강단에서는 십자가의 그리스도 대신 긍정적 사고방식이 선포되고, 교회 프로그램은 심리치료와 영적 명상을 제공한다.
 
저자에 의하면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일부는 믿음과 적극적 사고방식을 혼동한다.  심지어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버는 일에 하나님을 이용한다.
“성경은 성공지향적인 승리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본서는 강조한다.

저자는 미국의 많은 선교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물질주의적 전도자를 고발한다.

미국내의 한 조사에 의하면 10명의 그리스도인 중 7명 정도가 쾌락주의적 생활 태도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30 %가 “재미있고 행복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보채기만 하는 자녀들이 되었다고 말한다.

 

본서는 무너진 예배도 고발한다. 참된 예배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배는 쇼 엔터테인먼트가 되고 있다. 거대한 쇼핑몰같은 ‘다용도’ 교회가 등장하였다.

교회 건축에서 ‘소비자’를 위해 예리한 선, 각진 구석, 무거운 기물(설교단)이 사라지고 있다.

연기자들을 위한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이동 가능한 기물을 놓는다.

뉴저지의 한 교회는 설교를 없애고 예배를 20분으로 단축했다.

 

예배는 하나님께 절하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개인적인 성경묵상이나 큐티보다 공동체적 예배가 더 중요하다. 예배는 전인(全人)을 요구한다. 예배자에게는 성경의 진리를 파악하는 지성이 있어야 한다.

 파악된 진리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진리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의지와 열정이 있어야 한다.

 

“영적인 혼란의 시대에 오늘의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본서는 이와같은 물음을 던진다.
저자는 최근 수십년 동안의 미국교회의 변화와 변질, 그리고 그로 인한 위기를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정도를 걷도록 성경적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무한한 네트워크를 가진 만능인가?

기도라는 것을 통해 이 지구상에 퍼져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발견하고 용하게도 요소요소 적절하게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그런 만능엔터테이먼트인가 되물어보는 것이다.

 

영화 「52번가의 기적」처럼 가난하지만 착한 사람에게 부요함을 안겨주고,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나 구해주는 슈퍼맨이 돼야할 때도 있고,

사람들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여자의 매니큐어도 발라보고, 스타킹도 신어보는 한 남자는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여자들의 속 마음을 무한정 들을 수 있게 된다(「What Women Want」).

하나님은 이렇게 마음이 넓으셔서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를 풍부하고 유머러스하게 만족시켜준다.

마치 헐리우드의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거나 혹은 제공해 주는 그런 신뢰할 수 있는 주인공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헐리우드식 믿음까지 미국에는 뿌리내려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한국 출판계에도 ‘영성’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책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는데, 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라」의 저자 마이클 호튼은 ‘말씀’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시스템화 되고 있는 교회의 모임들로 ‘믿음’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아회복과 자기개발 그룹, 제자훈련 프로그램, 여타 소그룹 모임들이 예배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친목모임처럼 돼 버렸는데, 이런 모임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기 보다는 좀더 세련되고 교양 있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방편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성경 공부를 하는 시간이나 각 가정에서 드리는 가정예배 조차도 교회에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을 따라가기 위한 교재에 의존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의 방법 보다는

지금 당장 자신이 필요한 것을 채워줄 하나님이 더더욱 급하게 됐다.

 

그래봤자 신앙생활 잘 하기 위한 방법일텐데 얼마나 문제가 되겠냐고 하겠지만 그 피해는 예상 외로 크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한 개인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규모가  큰 대형교회에서 교회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 목회자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그들은 일반 성도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하고 그 빈 자리에 욕심과 자기기만이라는 씨앗을 심는 역할을 하는데 더 큰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영화’와 ‘토크쇼’가 만나면 또 어떤 돌연변이를 낳게 될까.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이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교회는 ‘토크쇼’의 접근 방식을 마치 벤치마킹한 것인양, 사람들의 감수성에 호소한다.

믿음생활에 철들라고 하면서 성경말씀으로 설교를 하는 것 보다, 세상사람들의 부와 영광을 더 가치있는 것으로 인용하다 보니 교회의 참된 표지인 성례와 권징, 말씀마저 희미해지게 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바로 ‘말씀’이어야 하는데,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 많이 하라”는 권유만 받게 된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믿음’을 단지 건강과 부와 행복을 확보하는 부적이나 비밀번호로 전락시키고 방언이나 은사에 집중하면서 ‘체험 숭배’에만 마음을 빼앗긴다.
이렇듯 하나남께 기적을 구하다보니 정작 핵심적인 요구사항인 선포된 말씀은 빼먹고
질병과 귀신을 쫓는 것이 마치 영적인 싸움인양 부각시킨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 전쟁은 우리가 내뱉는 말로 결박할 수 있는 귀신들과의 전투가 아닌데도 말이다.

 에베소서 6장 10-20절을 보면 실제로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 돼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복음의 말씀’이다.


허리우드 영화는 환상을 갖게 만든다. 토크쇼는 재미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환상이 아닌 비전을 갖게 만들고,

재미가 아닌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는 것과 동시에 사명을 통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취향에 맞게 편집해서 성경의 무오성도 인정하지 않고 세상의 수다한 종교 중 하나로 인식하게 하거나, 말씀 없이 ‘착한 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자존심은 버리고 상업화된 허리우드 영화를 따라가는 것과 똑같다.


이 책의 원제는 ‘IN THE FACE OF GOD’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명확한 메시지는 우리 자신의 의로 지옥으로 가든지,
오직 믿음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가든지 하라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귀담아 들을만 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지적이 미국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마이클 호튼이 지적한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한국 교회들이 이 프로그램들을 모두 중단시킨다면 어떤 금단현상이 나타날지 궁금해진다.



Rrom 카페 이름 : 대명교회(大名*大明*大命)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dm3179
카페 소개 : 모든 자료를 공유하는 기독카페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대명교회 담임목사 김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