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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단기선교 및 성지순례 여행기

[스크랩] 스핑크스

by 서귀포강변교회 2009. 2. 4.

 

 거대한 석조건축 스핑크스(Sphinx)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기자의 스핑크스도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자를 매료시켰다. 1735년 마예는 스핑크스를 '사자의 몸통, 여자의 머리'라고 생각하고 "처녀와 사자가 한 몸을 이룬 12궁일지 모른다."고 적었다. 아주 오래 전에 그려진 스핑크스는 모두 모래 위에 불쑥 튀어나온 기념비적인 머리의 형태만이 묘사되어 있다. 1816년 카비글리아의 지휘로 시작되었던, 모래 제거 작업은 한때 중단되었다가 1886년 마스페로와 브룩슈의 작업으로 파라오 카프렌의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건축된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기제의 사자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스핑크스 중에 가장 오래되고 큰 것으로 유명한 것은 제 4왕조의 카푸라왕의 피라미드에 딸린 스핑크스이다. 이것은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조각한 것인데, 군데군데 보수되어 있다. 전장은 약 70m, 높이 약 20m라는 거상으로, 그 얼굴은 상당히 파손되어 있으나 카푸라왕의 생전 얼굴이라고 한다. 앞으로 뻗은 앞다리에는 투트메스4세의 석비가 있다. 이 스핑크스는 <지평선 상의 매>를 나타내고, 태양신의 상징이라고 한다.
스핑크스는 머리는 사람이고 몸통은 사자인 신화적 존재로서 날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집트가 발상지라고 하는데 그 후에는 시리아, 아나톨리아와 지중해 그리스 본토 등에 전파되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일찍이 제4왕조기(BC2650무렵)에 기자에 있는 왕 카프레의 피라미드 남동쪽에 조각된 대스핑크스로 등장한다. 이것은 왕자신의 상이라 한다. 애초에 왕을 사자로 여긴 이집트의 옛 관념에서 나왔다 하며 왕비도 여성 스핑크스로 표현되었다. BC2000년대에는 스핑크스는 종종 신, 예컨대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믿어졌다. BC2000년대 중엽부터 BC1000년대 전반에 걸쳐 아나톨리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키프로스 등에서도 스핑크스가 중요시되었다는 것은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밝혀져 왔다. 스핑크스 석상은 문 양쪽에 세워지거나 건조물의 일부로 사용되었으며, 상아의 부조 또는 청동상이 종교색 짙은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모두 날개돋친 상이며, 수호신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처음에는 죽음으로부터 지켜주는 신학적 존재로서 액막이 목적으로 방패나 무덤 등에 새겼으나, 뒤에 테베의 전설에 흡수되어 유명해졌다.
 

 

<그리스 신화>에서 스핑크스는 보통 여성의 얼굴에 날개 돋친 사자상을 한 괴물로 그려졌다. 옛날에는 어린이를 채가고 전사가 쓰러지는 것을 기다리는 사령같은 존재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반면에 마귀를 쫓는 부적의 도상이기도 했다. 다음 단계에서 스핑크스는 땅의 해수害獸라 여겨졌다. 계보상으로는 에키드나와 티폰의 아들 또는 키마이라와 오르토스의 아들이라 한다. 형제인 네메아의 사자가 네메아 땅을 짓밟은 것처럼 스핑크스는 헤라여신에 의해 테베로 보내져 그곳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것은 테베왕가가 범한 죄값이라 했다. 게다가 스핑크스는 땅의 해수로부터 수수께끼를 거는 괴물로 발전했다. "하나의 목소리를 갖고 아침에 네발, 낮에는 두발, 밤에는 세발이 되는 것은 무엇이냐?"는 수수께끼를 내어, 못맞히면 잡아먹었다. 이윽고 오이디푸스(Oedipus)가 나타나 <사람은 어려서 네발로 기고 커서는 두발로 걸으나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으니 세발이다>라고 수수께끼를 풀자 스핑크스는 부끄러워하며 몸을 던져 죽어버렸다고 한다.

 

 

 

 

 

 

 

 

 

 

 

 

 

 

 

 

 

바위를 그냥 자른게 아니고 요철로 해서 틈이 없습니다.  대단한 기술이죠?

 

 

 

 

 

 

 

 

 

 

 

 

 

 

 

 

 

 

 

 

 

 

 

 

 

 

 

 

 

 

 

 

파피루스(우리나라 한지와 비슷) 그림

 

 

 

 

 

파피루스 줄기를 이용하여 종이를 만듭니다. 한지와 거의 비슷한 작업

 

 

 모세기념교회(The Ben Ezra Synagogue)

올드 카이로에 위치한 사원으로 29개의 모스크와 20개의 교회에 둘러싸여있다. 모세기념교회라고 부르는 벤 에즈라(BEN EZRA)는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예배당 중의 하나이다. 이 위치와 흥미로운 역사는 이 예배당을 또하나의 명물로 되새김하고 있다.
올드 카이로에 위치한 모세기념교회는 오래된 모스크와 이집트에 있는 교회당에 둘러쌓여있다. 역사학자에 따르면 이 예배당의 현재의 장소는 원해 6세기경에 콥틱교회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이 사실은 여러 건축물들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9세기 후반, 유태인들이 이땅 주변에 교회를 세웠다. 이곳을 유태인들은 성스럽고 축복받은 장소로 여겼는데, 모세가 이것에서 기도를 올렸던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세가 이집트를 떠나기전 그는 그곳에서 길을 떠나면서 마지막 기도를 올렸고, 그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 표시를 해두었다고 한다. 위대한 랍비인 아브라함 벤 에즈라가 예루살렘에서 이집트로 왔을 때, 모세가 기도를 올렸던 이 성스러운 땅으로 와서 곳으로 이 예배당을 유대인들에게 되돌려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후 벤에즈라가 이 예배당을 재건했고, 이 예배당은 그의 이름을 따서 아직도 벤에즈라라고 부른다.
이 예배당에는 구에니체(Guenizeh) 또는 안전한 보관소라고 불리는 특별한 장소가 있는데, 오래된 구약성서가 보관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이 구약성서는 기원전 475년경 사슴가죽 위에 씌여져 있었다.

 

 

 예수피난교회

 

 

 

 

 

 마라의 샘(Well of Marah)

(출 15:22~26)홍해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 일행이 마라(Marah)에 이르렀을 때, 목이 말라도 샘물의 물이 너무도 써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것을 마라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모세에게 불평을 하며 "도대체 무엇을 마시란 말입니까?" 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모세가 주를 외쳐부르자 주는 모세에게 나무를 보여주었다. 모세가 그 나무를 물 속으로 던지니 그 샘물이 달콤하게 변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해 율법을 정하고 그들을 시험하여 말씀하시길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따르고, 옳은 것을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율법을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을 너희에게 하나도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이니라.  (출 15: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열두개의 우물과 70개의 야자수 나무가 있어 그 물가에 숙소를 정하였다.

 

 

 

 수에즈 운하(Suez Canal)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포트사이드 사이에 뚫은 운하로 총길이 195km, 수면의 너비는 365m, 수심 약 20m, 35피트까지의 배들이 항해가능하다. 프랑스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에 의해 1869년 개통되었지만, 이 운하건설 계획은 고대 이집트인이 이미 착수한 것이었다.

 

 

 

마라의 샘 주변에 사는 베두인들

 

 

 
 

출처 : [가족친구여행] 세계는 넓고 갈 곳은 많다.
글쓴이 : Tour Star 원글보기
메모 : 1998년 성지순례의 감동이 지금도 몰려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