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물러가며 초여름이 가까워지고 있다. 더운 기색도 훨씬 역력하다. 그래서 꽃의 피고 짐도 빠르다. 게으른 사람들은 자연이 철마다 주는 꽃선물을 포기해야만 될 듯싶다. 나도 천성이 게으른지라 며칠 전에야 경남 황매산(1108m)을 찾았는데 산등성이를 성급히 내려가는 올해 황매산 마지막 철쭉의 꼬랑지를 간신히 붙잡았다. “어유~ 운 좋았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현실의 주머니는 풍족하지 않아도 마음의 주머니만큼은 실한 자연으로 꽉꽉 채우려는 ‘자연과 한통속인 놈’ ‘자연에 대한 욕심이 누구보다 많은 놈’임을 황매산 산신령께서도 그리 나쁘게 보지는 않았는지 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챙겨 주신 거라 생각했다.
경남 합천과 산청의 경계.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기보다는 합천과 산청을 모두 탐내 두 발 다 걸치고 있는, 나처럼 자연의 욕심이 엄청 많은 황매산이다. 황매산은 그리 잘 알려진 산은 아니다. 그러나 대평원에 만개한 철쭉만큼은 전국 어느 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뒤늦게 황매산을 찾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철쭉 방문객은 황매산 철쭉 명성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었다. 정상 황매산 대평원으로 향하는 길 도중에 인사성 바른 철쭉 몇몇이 녹색 잎 사이에서 붉게 상기된 얼굴로 환영 인사를 건넨다. 올해 철쭉 개화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는 시점이라 그런지 그들의 얼굴은 더욱 붉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몇 달을 달려온 연극 공연에서 이제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더욱 열연하는 배우처럼 말이다.
황매산으로 달려오는 초여름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정상을 향한다. 합천댐이 보이고, 지난겨울 억센 바람에 갈퀴를 날리던 억새풀이 한여름 원두막에서 낮잠을 자는 노인처럼 편안해 보인다. 정상 대평원에 다다르자 철쭉 붉은빛이 반사돼 등반객들 얼굴이 모두 철쭉처럼 붉다. 드디어 평원이 내 품에 들어왔다. 이곳은 봄의 피날레가 불을 질렀다. 황매산 정상에서 2011년 봄을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뜨거운 불이 옮겨붙는다. 사방이 온통 불바다다. 봄이 지른 불이 계속 옮겨붙었다. 그러나 불길이 그리 거세진 않다.
시간이 잠시 흐른다. 마음을 가라앉힌다. 떠나가는 남녘 봄 철쭉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붉은 꽃잎 얼굴에 그만의 구별인 작은 점이 군데군데 있는 모습이 ‘점박이’ 내 동생 같다. 동생은 어릴 적 얼굴에 점이 하도 많아 별명이 ‘철쭉이’였다. 결국 의학의 힘을 빌려 수많은 점을 모두 뻥뻥 차버리고 “내가 언제 철쭉이였냐”는 식의 뻔뻔한 얼굴이 됐다.
철쭉은 자기 모습 그대로, 그 점이 철쭉임을 알게 하는 방점으로 고이 간직하고 있다. 철쭉의 작은 점들은 작은 검은깨를 뿌려 놓은 듯 보인다. 철쭉 꽃잎 한가운데는 사마귀 머리를 닮은 암수 수술대가 머리를 치켜들고 가는 봄날이 아직도 아쉬워 목을 빼고 세상 밖 구경이다.
지금 남녘 황매산 정상에서 “봄날은 간다”. 철쭉의 연붉은 마음보다 더 붉은 봄날의 사랑이 황매산 대평원에서 초여름 바람에 흘러간다. 황매산 완등 후 흐르는 등 뒤 굵은 땀방울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잠시 서 있는 것처럼 철쭉이 만든 황매산 봄도 잠시 서성댄다. 황매산 대평원 철쭉꽃 향기가 별안간 진하게 나더니 바람이 더 강해진다. 2011년 봄은 황매산 철쭉에게 떠맡겨 보낸다.
글:박병수<시인> / 사진:정인수<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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