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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말씀과 기도로 겸비된 위대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를 생각하다

by 서귀포강변교회 2012. 4. 18.

찰스 하돈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
"설교의 왕자”라고 불리는 스펄전은 1834년 영국의 에섹스의 켈비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존 스펄전도 경건한 독립파 교단의 목사였다.

스펄전은 그의 할아버지 제임스 스펄전(James Spurgeon)에게 가서 자랐다. 거기서 할아버지의 책들을 읽으면서 청교도의 신학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15세가 되던 1560년 프리미팁 메소디스트 교회의 평신도 설교자의 설교를 통하여 회심을 체험하였고, 1년 뒤 케임브리지 근교의 워터비치 침례교회의 설교자로 부임하였다.

조그만 시골 교회를 목회하던 스펄전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을 통하여 명성 있는 설교자로 준비되었다.

그는 20세의 나이로 런던 남부에 있는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의 담임목사로 초빙되어 괄목할 만한 교회 성장을 체험하였다. 22세에 런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설교자가 되었다.

1857년 크리스탈 팔레스에서 23,654명에게 설교하였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의 품안으로 인도하였다.

이처럼 스펄전을 영향력 있는 목회자로 만든 것은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는 그의 신학이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존 폭스의 “순교사기”,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같은 17세기의 청교도 경건 서적을 통하여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오류를 인식하였고, 철두철미한 반 로마 카톨릭교도가 되었다.

둘째는 그의 설교이다. 스펄전은 천재적인 순발력을 소지한 설교자로, 동일한 순간에 여덟 가지의 생각을 떠올릴 정도의 명철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설교는 대부분이 교육적이다. 그러나 때로는 감동적이어서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탁월한 저술가이기도 했던 그는 「검과 삽」 월간지와 1,900편 이상의 설교문과 주석 등을 발간했을 뿐 아니라, 또한 목회자 양성학교와 고아원을 운영했다.

그는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었지만, 영혼에 대한 불타는 사랑으로 자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렸던 실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스펄전 / 기도의 사람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의 때’에 대해 예언했다(암 8:11). 오늘 우리 시대도 말씀의 기갈, 복음의 기갈의 때를 지나고 있지는 않은가? 홍수 때에 정작 마실 물이 귀한 것처럼 목마른 우리 영혼이 마시고 해갈할 생수는, 이 설교 홍수의 시대에 희소한 것 같다. 이삭이 옛 우물을 다시 판 것처럼(창 26:18), 100여 년 전 말씀의 생수로 수많은 영혼들을 해갈시킨 스펄전의 옛 우물을 다시 파서 오늘 한국의 목마른 영혼들이 쉽게 마실 수 있도록 이 시리즈를 펴낸다. 오늘 불덩이 복음이 다 식어버려 회개와 거듭남의 역사가 가물에 콩 나듯 하는 한국 기독교에 구령(救靈)의 복음을 재점화시키기 위해 ‘C. H. 스펄전 스워드 시리즈’(C. H. Spurgeon Sword Series)를 발간한다(총 30권 출간 예정).

스펄전의 강력한 복음 메시지가 예리한 ‘성령의 검’(The sword of the Spirit)이 되어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갤 것이다

 

C.H. 스펄전
C. H.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불덩이 말씀의 사람이자 열렬한 기도의 사람이었다. 말씀의 사람은 많다. 기도의 사람도 많다. 그러나 스펄전처럼 말씀의 사람인 동시에 기도의 사람은 희소하다. 그는 말씀의 검(劍)이 좌우에 날이 서도록 기도의 불방망이로 단련(鍛鍊)하였다.

그가 이렇게 단련한 예리한 말씀의 검으로 강단에 설 때에 뭇 심령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깨어 대대적인 회개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는 말씀을 전하기 전에 뜨거운 성령의 임재를 간구하였다. 그는 성령의 임재가 없이는 말씀을 전하려 하지 않았다.

능력의 말씀을 권세 있게 전하기 위하여 하늘의 기름부음을 갈구하였다. 그리하여 오직 기도만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충만히 체험케 함을 역설하였다.

“우리는 화려한 예배당도 가질 수 있다. 값비싼 파이프오르간도, 실력 있는 찬양대도 가질 수 있다.

그런 것들은 기도하지 않아도 다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하늘의 기름부음은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 가질 수 없다.

성령의 ‘부재’를 ‘임재’로 바꿀 만한 기계적인 방법이나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기도만이 영적인 축복으로 향하는 유일한 문이다.”

스펄전은 열정 없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뜨겁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전혀 기도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라고 외친다. 그 격렬한 기도의 촉구를 들은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고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리하여 그가 시무하던 메트로폴리탄 타버너클 교회는 기도로 펄펄 끓는 교회가 되었다.

19세기 영국에서 그 교회만큼 강력한 기도회가 열리는 곳은 없었다. 목사가 기도의 사람이니 교인들도 기도의 사람이 된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에 다시 살아난 스펄전이, 기도의 불씨가 다 사위어버린 우리의 냉랭한 가슴에 기도의 뜨거운 불을 붙여줄 것이다.

기도의 영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여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도의 심령으로 바꾸어줄 것이다.

오늘 우리의 손에 하늘 문을 여는 ‘기도의 황금열쇠’를 쥐여줄 것이다.

 

 

 

지금 당장 시작하라 / 찰스 스펄전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는지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다면 지금 웃어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가 피고 가슴이 설렐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보여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나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 찰스스펄전
보십시오. 사랑하는 우리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온 땅이 화창한 날씨로 환히 빛나고 있다.

삼라만상이 우리를 겨울잠에서 일어나라고 깨우고 있는 이 때,
주님 역시 우리가 영적으로 잠자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일어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가 그 동안 세속이라는 단지 속에 너무 오랫동안 누워 있었으니
주께서 그렇게 명하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주께서 부활하시고 우리도 주님 안에서 부활했는데
왜 그 먼지 속에 착 달라붙어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열등한 사랑이나 소욕, 열등한 추구나 야심들로부터 일어나 주를 향해 갑시다.
주님은 우리 각자를 “나의 사랑”이라고 부르실 뿐 아니라 정말 어여쁜 자로 여기십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일어설 만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까?
주께서 우리를 이처럼 높이시고 어여쁘게 생각하시는데, 어떻게 게달의 장막에서 꾸물거리며 인생들 가운데서 마음에 맞는 친구를 발견하려 할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 “함께 가자”고 명하십니다.
이기적이요 야비하며 세상적이요 죄된 모든 것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렇습니다. 외관상으로는 주를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주를 모를 뿐 아니라 고상하고 신비한 삶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형식적인 종교계로부터 떠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주께서 “함께 가자”고 부르시는 소리가 전혀 거슬리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이 헛되고 죄악된 광야에 우리를 붙잡아 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 주님이시여, 저희도 주님과 함께 갈 수 있습니까?
그러나 주께서 저희를 가시들 가운데서 취하셨으니 저희가 아무리 원해도 그 가시로부터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가시로부터 도망칠 수만 있다면 저희는 죄를 보지도 듣지도 생각지도 않을 것입니다.
주님, 주님은 “함께 가자”고 말씀하시면서 저희에게 주님께 오라고 부르십니다.

주님의 그 소리는 마치 아름다운 음악소리처럼 들립니다.
주님께 가는 것은 유배지에서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요,
노도 치는 폭풍우 속을 빠져 나와 육지로 향하는 것이요,
오랫동안 수고한 후 안식을 취하러 가는 것이며, 사실 저희가 가장 소원하던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돌이 어떻게 스스로 일어설 수 있으며 진흙덩이가 어떻게 그 끔찍하고 무서운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까?

그러니 저희를 일으켜 끌어내 주십시오.
주님의 은혜로는 그것이 가능하오니 주의 성령을 보내시어 저희 마음속에 거룩한 사랑의 불을 붙여 주십시오.

그러면 저희가 이생과 시간을 뒤로 한 채 정말 주님과 함께 가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일어나겠습니다.


 

최고의 치료제 / 스펄전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것에는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치유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명상에는

모든 슬픔을 근절시켜 주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감화력 안에는

모든 아픈 곳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슬픔을 잊고자 하십니까?
여러분의 염려들을 잊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신성의 깊고 깊은 바다에 잠겨 보십시오.
하나님의 광대함에 몰두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안식처에서 나오는 것처럼

기운을 차리고 생기가 돌아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저는 신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열심히 묵상하는 것보다

더 영혼에 위로를 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슬픔과 비탄의 굽이치는 파도를 그처럼 진정시키며,

시련의 바람들을 평온하게 해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교만에 관하여 / 스펄전    

교만이란 가장 미친 짓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마치 제 살을 파듯이 깎아 먹으며 삽니다.

교만은 자기 생명을 빼앗으며, 자신의 피로 자기 어깨에 걸칠 옷을 물들이는 일입니다. 교만은 자기 집을 파서 기초석을 꺼내다가 자기의 뾰족탑을 좀 더 높이 세우려고 합니다만 그러자마자 전체 건물은 무너져 내립니다.

어떤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증명하는 데는 교만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교만 때문에 사람들은 휴식이나 편안함이나 잠자는 일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자리와 권력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교만 때문에 사람들은 감히 구원의 소망도 버리고, 예수께서 주시는 가벼운 멍에도 벗어버리고, 인생길을 자기 힘으로 피곤하고 어렵게 헤쳐 나가며,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절망의 진흙 구덩이에 빠져서 비틀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 여러분이여, 교만을 미워하십시오. 교만으로부터 멀리 도망치십시오. 교만을 증오하십시오. 교만이 여러분과 같이 살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의 마음에 미친 놈이 들어와 살기 원한다면 마음에 '교만'을 받아들이십시오. 교만보다 더 미친 놈은 결코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택하는 그 어떤 차림에서도 교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자가 입는 옷뿐 아니라 거지가 입는 옷에서도 교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만은 부자와 함께 살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과도 함께 삽니다.

현재 발에 신을 신발조차 없는 사람도 자신이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교만할 수 있습니다.

 

교만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사회 모든 계층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알미니안 주의자에게 나타나서 한갓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능력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그 다음에는 곧바로 칼빈주의자에게 나타나서 그들의 믿음을 생생하게 유지시켜주는 유일한 분이신 그들의 창조주를 배제하면서 자신들이 상상하는 구원의 확신을 스스로 자랑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또 교만은 휘황찬란한 성당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자랑하는 교인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교만은 분리주의자, 독립교회 교인, 보통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개신교회의 예배당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기도 합니다. 교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만이라는 놈은 모든 교단들의 예배당이나 성당을 제집 다니듯이 출입합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보거나 교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교만은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집으로 가기도 하고, 우리 자신의 집으로 가기도 합니다. 시장이나 사업장이나 길거리나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 교만이 있습니다.

 

교만은 죄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심령에도 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떠나서 독립하여 스스로 만족하고 자기 자신으로 만족하라는 의미의 '자만'이라는 이름으로 번져가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부자이며, 잔뜩 쌓아두었으니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가르칩니다.

교만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날마다 필요한 은혜가 더 이상은 필요 없으며, 과거의 영적 체험이 미래에도 계속 효과를 발휘할 것이며, 지금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으며, 충분히 노력하고 있고, 기도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말해줍니다.

 

교만은 그리스도인에게 그가 아직 잡지 못했다는(빌3:13) 사실은 잊어버리라고 말합니다. 교만은 그리스도인이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힘써서 앞으로 달려나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교만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그에게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기 힘으로 독립적인 일을 세워 나가보라고 부추깁니다.

교만은 그 그리스도인의 인생에 영적 파산 상태가 임할 때까지도 그가 절대로 하나님께 나가지 못하도록 붙들어둘 것입니다.

 

교만은 오만 가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언제나 빳빳하게 풀칠해서 다림질한 옷을 입은 듯한 신사의 모습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만은 사악하고 보이지 않게 땅에 붙어서 움직이는 뱀처럼 몸을 뒤틀며 몰래 우리 마음으로 찾아옵니다. 교만은 겸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티끌과 재같이 낮아지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나는, 때로는 자기들의 죄와 부패에 대해서 가장 엄청난 이야기를 고백하며 자기가 가장 겸손한 척하지만, 사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열할 정도로 교만한 사람도 알고 있습니다.

 

오 형제들이여, 교만은 얼마나 많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자신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교만에게 속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천사들을 영접하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어느덧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마음비움(규장 출판)>

 

 

 

스펄전의 침묵  

기독교 역사에 있어 기억될만한 훌륭한 목회자들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설교가로서 명성을 남긴 19세기의 목회자로 영국인 찰스 스펄젼(Charles Haddon Spurgeon ; 1834~1892)을 제일 먼저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불타는 진실성과 굽힐 줄 모르는 신학적 신념, 열정을 가진 '복음의 전파자'였습니다.

그의 설교는 명료하고, 단순한 문장으로 사람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사회 문제 역시 외면하지 않고 미국의 노예제도에 대해서 비난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여러 개의 학교와 고아원, 그리고 요양원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사회의 존경을 받던 스펄전 목사이었지만 주변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계란을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펄전과 그의 아내는 여러 마리의 닭을 직접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부부는 자신들이 기르는 닭이 낳은 달걀을 그냥 나누어주는 법이 없었습니다. 반드시 돈을 받고야 계란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스펄전 목사 부부는 구두쇠라든가 돈만 아는 욕심쟁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스펄전 목사 부부는 그런 비난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스펄전의 부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에 비로소 스펄전 목사 부부가 왜 그렇게 돈을 받았는지 알려졌습니다. 계란을 판 대금이 두 명의 늙은 과부들의 생활비를 대는데 고스란히 사용된 것이 밝혀졌습니다.

스펄전 목사 부부는 자신들의 선행이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았고 또 늙은 과부들을 도와야 했기 때문에 그 많은 비난을 침묵으로 감수해 왔던 것입니다.

그의 위대한 설교는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는 성경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좋은 생각들이 남의 눈치나 남의 비난 때문에 실행되지 못하거나 중단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합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린도후서 12:9)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의 일을 잘 해내기 위한 필수 요건 중 하나는 바로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사가 자기 힘만 믿고 전쟁터로 행진해 간다면,
“나는 내가 이길 거라는 사실을 안다. 나의 이 오른팔과 손에 든 검이 내게 승리를 안겨줄 것이다”라고 자랑하며 나간다면, 그는 틀림없이 패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힘만 믿고 행진하는 사람과 함께 가시지 않습니다.
이처럼 승리할 것으로 자만하는 사람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용맹을 자랑하며 싸우러 나간 사람은 반드시 패하여 치욕으로 얼룩진 갑옷을 입은 채 화려했던 깃발을 질질 끌며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힘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봉사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한 것은 어떤 것도 취하지 않으십니다.
이 땅의 열매에 불과한 것들은 모두 다 내치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천국에서 뿌린 씨로 은혜의 단비를 맞고 그의 사랑의 태양을 받아 익은 곡식만 거두어 들이십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비우신 후에야 비로소 그 안을 그의 것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의 창고를 깨끗이 청소한 다음에야 비로소 가장 좋은 밀로 그 곳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은 물이 차고 넘치지만 그 안에 이 땅에서 솟아나는 물은 한 방울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전쟁터에서 그가 친히 부여하신 힘 이외의 다른 어떤 힘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지금 자신의 연약함에 대해 애통하고 계십니까?
담대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승리를 안겨 주시기 전에 먼저 자신의 약함을 의식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비우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지기 위한 준비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는 것은 곧 되살아나기 위한 준비에 불과합니다.

“나는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합니다. 은혜가 나의 방패요 그리스도가 나의 찬양이십니다.”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예수를 바라보고 우리의 연약함을 보지 말자
우리의 연약함을 한탄함으로써 우리가 강해질 수 있을까?
오직 예수를 바라볼 때 그의 능력이 우리 속에 역사하여
그의 찬송이 우리의 입술에서 터져 나오게 된다.


예수를 바라보고 우리의 죄를 보지 말자 죄의 생각은 사망을 가져올 뿐이요, 예수를 사모함만이 생명에 이르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낫게한 것은 그의 상처를 들여다 보는 일이 아니었고
다만 구리뱀을 쳐다 보는 일이었다.
예수를 바라보고 우리의 공로를 보지 말자 눈앞의 세상 일에 너무 정신을 기울임으로써 주님의 의를 망각하지 말자.

손은 항상 바쁘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비어두자. 때를 따라 주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도록." 

 

 

펄전의 ‘야베스의 기도’ 설교

크리스 암스트롱 / Christian History 책임편집자 

야베스에 대한 이야기로 베스트셀러가 된 브루스 윌킨스의 책을 통해 최근에 우리가 알게 되었듯이, 성경에서 단 한 번밖에 언급되지 않는 사람인 베스는“자신의 영토를 확장시켜” 주실 것을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의 그러한 요청에 응답해 주셨다.

WTM선교회(Walk Thru the Bible Ministries)의 설립자이자 이전 회장인 윌킨스는 영토를 ‘복음전도 사역의 기회’로 해석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교회사에서 19세기의 영국 설교자 찰스 해돈 스펄전보다 더 넓은 ‘영토’를 보유한 사람은 확실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최초의 대형 교회가 출현하기 아주 오래 전에 스펄전은 6천 명 이상의 청중들을 상대로 규칙적으로 설교했다

(일주일에 10회 이상일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는 한때 확성기의 도움없이 23,654명의 청중들에게 말씀을 전한 적도 있었다. 그는 1854년 232명이던 뉴파크 스트릿 교회의 회중을 1892년 5,311명으로 성장시켰고, 세계에서 가장 큰 독립 교회를 만들었다. 수상, 대통령, 그 이외 다른 유명한 인사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몰려들기도 했다. 교회 역사상, 그만큼 두각을 드러낸 목회자는 없었다.

수집된 그의 설교만 해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9판의 27권에 해당하는 분량인 이천만 이상의 단어에 육박한다.

그의 저술과 설교 모음집의 일부는 백만 부 이상이 팔렸고 그의 설교는 오늘날까지 설교의 모본으로서 여전히 읽히고 있다.

 

스펄전이 ‘야베스의 기도’에 대해 생각한 내용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면 흥미롭지 않을까?

그런데 그가 실제로 야베스의 기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1871년, 런던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니클교회의 회중들 앞에 선 스펄전은 역대상 4장 10절을 설교 본문으로 택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윌킨슨과 다른 맥락

 스펄전의 설교와 브루스 윌킨스의 최근 대형 베스트셀러를 대조해 보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고 유익할 것 같습니다.

먼저 윌킨스의 책부터 시작하자. 이 책 뒤표지에 쓰인 내용은 수백만 부가 팔린 성공의 비결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한다.

그곳에 실린 추천 문구가 우리의 눈길을 딴 곳으로 돌리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베풀기를 갈망하고 계시는 그 풍성한 축복을 하나님께 주시도록 요청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야베스의 단순한 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 보호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그 문구는 약속하고, 담대한 그리스도인들이“살기로 의도했던 그 삶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호소는 책을 팔리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사실 그것은 영적인 오만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 속에는 감탄할 만한 내용이 많다. 윌킨스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단순히 우주의 창조주께 충분할 정도로 기대감을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독자들이 “기적을 베푸시는 특별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에 근거해 발걸음을 내디디라”고 격려한다. 그는 이 확신이 우리 자신의 어떤 능력에 대한 믿음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존에 뿌리를 내린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하나님이 ‘평범한 사람들’을 사용하신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의 타고난 능력과 재능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30년 전 스펄전의 야베스 해석이 교훈적이기 때문에 윌킨슨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일방적인 묘사가 야베스의 “축복에 축복을 더하사”와 맥락이 같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책표지의 과대광고에서 결코 한발자국도 멀리 나가지 못하고 있다.

윌킨슨은 책 전체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대담하게 발을 내디뎌 그것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가져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잊혀진 이야기의 돈처럼‘소유되지 않은 축복들’의 관점에서 이야기해 나간다.

 

지경의 확장이 고통을 배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은 최근 수십 년 동안 풍미했던 번영 신학에서 비롯된 복음은 아니다.

윌킨슨은 ‘진정한 축복’을 복음의 더 높은 유효성과 연관시키고 있다. 핵심은 이것이다.

즉‘여러분이 하나님께“당신의 삶을 확장시켜 주시도록” 기도함으로써 여러분이 그 대가로 “그분을 위해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목회] 기회가 확장될 때 여러분의 능력과 자원 역시 초자연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윌킨슨은 그의 독자들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기로 결정하시든 당신의 삶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수용하라,”

그러면 “그것이 항상 당신의 최선으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격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 ‘최선’이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는 때로 축복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암시가 전혀 없다.

우리는 범죄하지 않고‘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은 이상 나의 인생에 대해 순조로운 항해를 기대한다.

 

하지만 정직하게 말해 이것은 우리의 감정에 아부하는 메시지다. 윌킨슨은 자신의 독자들에게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당신이 야베스의 기도를 활용한다면 . . .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다는 느낌으로 가득 차서 적어도 잠시 동안은 더 많은 것을 구하는 기도를 멈추는 때가 당신의 인생에 올 것이다”라는 확신을 준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가 공중에 공허하게 흩어지는 것처럼 보이거나, 우리가 고통과 낙심 혹은 비통함으로 고투를 벌이고 있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어떻게 대해야 하겠는가?

우리는 이 책에서 이 담대한 야베스의 기도를 ‘활용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때가 찾아온다는 암시를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스펄전은 그들에게 그러한 때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엄청난 ‘영토의 확장’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또한 동시에 엄청난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펄전은 일생 동안 많은 낙심을 경험했다. 그는 또한 만성적 통풍과 신장염, 그리고 한번 시작되면 수주일 동안 혹은 심지어 몇 달 동안 지속되는 극심한 통증으로 꼼짝할 수 없는 질병이 있었다.

그래서 야베스가 출생 때 그의 어머니가 겪었던 엄청난 고통 때문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대상 4:9)을 묵상하게 되었을 때, 스펄전은 “우리가 기쁨으로 추수할 수 있기 위해서는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 . . 당신이 많은 낙심을 견디며 인내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축복을 기대해도 좋다”라는 조언을 하게 된 것이다.

 

고통이 그리스도와 더 깊은 교제로 나아가게 할 수도 

‘윌킨슨식’ 복음주의적 행동주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실용주의적이고 상업적인 접근 태도를 암시하고 유도한다.

그것은 기도 응답의 지연과 고통 혹은 좌절을 수용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게 한다.

실제로 윌킨슨은 이렇게 쓰고 있다.“초자연적인 하나님이 당신을 악에서 지켜 주기 위해 나타날 것을 믿습니까? 야베스는 실제로 믿었고 그의 믿음에 근거해 행동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의 삶은 악으로 인해 생기는 슬픔과 고통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스펄전의 접근은 고통과 그리고 그것이 즉각 해결되지 않은 채 지속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다.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대해 초점을 맞추면서 스펄전은 고통을 인내할 수 있었고 심지어 환영할 수조차 있었다.

야베스가 “복에 복을 더하사”라고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그는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때로 내가 병으로 앓아누워 있던 방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이켜 생각해 본다. 그 고통의 침상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과 비교해서 결코 절반도 은혜 속에서 성장하지 못하였으리라고 확신한다.”

고난을 통한 성장이라는 그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스펄전은 고통이 가장 큰 축복, 즉 사랑하는 그리스도와 영원한 교제를 누리는 삶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스펄전은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우리 모두 고통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의미는 분명 아니라고 부언했다.

모든 사람이 다 이런 종류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모두 반드시 고통을 필요로 한다고 할 수는 없다. “기쁨에 가득한 자비로운 마음이 우리의 영혼을 비옥하게 하는 위대한 자양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죄의 계속 되는 영향을 감안한다면,“때로 기쁨보다는 슬픔이 우리에게 더 유익합니다. 불필요한 가지들을 잘라내는 가위가 우리 가운데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이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가치가 있는 영광을 여러분이 맺도록 할 것입니다.”

그것은 “복에 복인 것입니다.”

 

고난은 ‘목회자의 서고에 있는 최고의 책’이 될 수 있다.

 윌킨슨에게 죄는 축복의 즐거운 물줄기가 계속 흐르게 하기 위해 서둘러 해결해야 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요구되지 않는 일시적인 방해물에 불과하다.

“야베스의 축복을 경험한 후죄를 짓게 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존전으로 다시 지체지 말고 달려가서 문제들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시작하신 기적을 일초라도 낭비하지 마십시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좋은 것이 여전히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들을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면 스펄전은 죄가, 한 번의 형식적인 화해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개인적인 유혹과 행동과는 차원이 다른, 너무나도 심층적이고 끈질긴 것임을 알았다. 깊이 곪아있는 상처는 대수술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는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격려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윌킨슨의 신학에서는 절대 수용되지 않는 종류의 사람들일 것이다.

“당신의 영혼에 대한 써레질이 계속 된다 하더라도, 당신의 심장까지 쟁기가 파고 든다 하더라도, 당신이 불구가 되고

상처를 입어 죽은 것처럼 버려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성령이 그 일을 하신 것이라면 그것은 복에 복인 것입니다.”

 

이것은 현란한 광고 문구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수백만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는 아니라 하더라도 깊이가 있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메시지이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 진리에 대한 온전한 가르침이다.

슬픔은 영혼을 튼튼하게 할 수 있다.스펄전이 다른 곳에서 표현했듯이 고난은 ‘목회자의 서고에 있는 최고의 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산층이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130년’ 후의 이 시대에 수백만이 넘는 미국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영적 슬픔을 무시하는 책을 구매하는 편을 선택하고 있다. 그래서 영혼에 슬픔이 가시지 않는다.

 

<향기로운 오늘>

 

 

 

             

 

  스펄전의 회심  

찰스 해돈 스펄전((C. H. Spurgeon, 1834-1892)은 영국 에섹스 켈비던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온하고 독실한 목회자 가정에서 신앙 생활을 하던 스펄전은 사춘기를 구원을 향한 회의의 시기로 보내게 되었다.
그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어온 일상이었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삶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 날 설교를 하기로 되어 있던 목사님이 눈보라 때문에 나타나지 않아서, 회중에 있던 한 성도가 설교를 하게 되었다.
그 성도의 설교는 간단했다. 구원을 위해서는 다만 그리스도만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죄의식으로 지치고 낙담한 스펄전을 가리키며 "단지 주만 바라보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다. 그 순간 스펄전은극적인 회심을 하게 됐다.
구원이 오로지 주님만 주실 수 있는 은혜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스펄전의 삶은 주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의 삶이었다.

1851년 그는 17세의 나이로 정식 목사 직분을 얻었다.
그후 일생 동안 그가 설교하는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의 힘차고, 신학적이며, 감미로운 설교는 그로 하여금 "설교의 황제"라고 불리게 만들었다.
 

1861년 3월 31일 스펄전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나클에서 최초의 주일 예배가 드려졌다.

스펄전의 설교를 들으려 오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이 교회 건물은 6천석을 가지고 있었지만 몰려오는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었다.
그의 설교는 매번 서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까지 1만명을 넘었다.
그러고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항상 되돌아가야만 했다.
그는 매 번의 설교를 위해 수 시간을 기도했다.
그는 결코 제목 설교를 한 적이 없었으며 항상 성경 본문으로 강해 설교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용이 다른 설교 3,500여 편을 중복해서 설교한 적이 없었다.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은 그가 그토록 많은 설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을 개인 전도하는데 보낸 것을 보고 알 수가 있다.
그는 바쁜 일정 중에도 매주 화요일은 구원의 확신을 위한 개별적인 면담을 위해, 토요일은 복음을 위한 개별 방문을 정기적으로 행하기 의해 남겨두었다.
그는 "내가 소유한 것 중에서 받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자기가 꼭 명심하도록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이런 겸손은 처음에는 비우호적이었던 사람들까지도 "그의 고조되어 가는 명성에 따라 자만심이 커져가기는 커녕, 그가 우리의 눈을 깜짝 놀라게 했던 처음보다도 오히려 더욱 겸손하고, 더욱 자기를 부정하게 된 것 같다." 고 말하게 만들었다.
1891년 그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그는 불타는 진실성과 굽힐 줄 모르는 신학적 신념과 열정을 가진 '복음의 전파자'였다

 

스펄전은 이렇게 구원을 받았다(회심 고백)

 제가 젊었을 때, 약 5년간이나 심히 괴로운 마음의 암흑기를 격은 일이 있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의 두려움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하면 저는 그와 동감인 동시에, 그를 깊히 동정하고 싶습니다.
그 당시 내 마음의 하늘에서는 태양이 지워지고, 내가 지은 죄는 일체 소망이 없는 자리에 나를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아십니다.
그러나 나는 마음 속에 이렇다 할 응답의 흔적조차 찾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성경 말씀을 두루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약속들은 더 심히 내 마음을 부담스럽게 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선민의 특권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이론을 꾸며 설명을 해 보아도, 그 특권이 내 것이 될 듯 하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제 낙망의 원인은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깨닫지 못했다!
나는 기독교국에서 태어났었고, 나의 양친도 기독교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까지 기독교 복음의 자유성과 단순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던 거리의 예배당을 두루 헤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어느 곳에서도 복음이 온전히 설교되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그 교역자들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들 중 어떤 한 분은 하나님의 절대의 통치권에 대하여 잘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의 설교를 유쾌하게 듣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 어찌하면 구원을 얻을까 하는 문제에 얽매어 있던 불쌍한 죄인인 나에게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또 한 분은 항상 율법에 대하여 설교하였는데, 땅을 갈기만 하고 씨가 떨어지지 않으니 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수없이 읽고 들었으나 나는 여전히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합니다만, 만약 하나님이 은혜롭게도 어느 일요일 아침 대단히 심한 눈보라로 나의 예배당 가는 길을 막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까지도 암흑 속에 있지나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날 아침 나는 눈에 길이 막혀서, 우리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조그만 한 교회에 불가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회중은 모두 열 두 서넛밖에 없었으며 목회자도 안 나왔습니다.
아마 눈에 길이 막혔던 모양이었습니다.
 

이윽고 한 초라한 사람 ― 양복직공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구두 깁는 사람같아 보이는 이가 강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 사람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본문을 외어대는 것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딴 소리는 할 재능이 없어 보였던 것입니다.
본문은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는 이사야 45장 22절이었는데 이 사람은 본문을 온전히 읽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성경 봉독을 들었을 때 제 생각에 그 말씀에는 제게 대한 어떤 소망이 감취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였습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이 본문은 매우 간단한 말입니다.
여기에는 '앙망하라' 하였습니다.
바라보는 것은 뭐 힘이 드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볼려고 다리를 들거나 손가락을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보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보는 법을 배우러 대학에 가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아기도 봅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은 바로 이와같이 그저 바라보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나를 바라보라'하였습니다.
아,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자기를 바라봅니다.
그건 봐야 소용없습니다.
여러분을 바라봤댓자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을 바라봤댓자 시원한 일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안됩니다. 예수를 자주 바라보십시오.
예수는 '나를 바라보라'하셨습니다.
또 어떤 이는 '나는 성령이 역사할 때까지 기다리지'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나를 바라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선량한 직공은 다음과 같이 소리쳤습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큰 핏방울을 떨어뜨리고 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십자가에 매달렸다.
보라, 나는 죽어 장사되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다시 살아났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승천했다!
나는 아버지 오른 편에 앉았다!

오오, 나를 바라보라! 나를 바라보라!"

 

여기까지에 겨우 한 십 분 동안을 소비하고 나서 이 설교자는 밑천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강단 바로 밑에 앉았던 나에게 시선을 던졌습니다.
아마 사람들이 그렇게 조금 모였기 때문에 그는 내가 처음 나온 사람인 줄을 알아 차렸던 모양입니다. 
 

그는 나를 향해 입을 열어 "청년, 당신은 왜 그리 가련한 모양을 하고 있소?"

하고 물었습니다.
물론, 나는 가련했지만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 강단 위로부터 내 개인의 모습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 한 마디는 내 마음을 쳐 올렸습니다. 그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청년이 이 성경 본문을 순종하지 않으면 언제나 가련할 것이고 죽어서도 가련할 것이요.
그러나 이제, 이 시간에 이 성경을 순종하면 당신은 구원을 받소"

그는 한층 소리를 높였습니다.

 

"청년이여, 예수를 바라보라! 지금 바라보라!"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리에서 놀라 일어났으나, 그러나 그 때 나는 예수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 순간 구름은 걷히고, 나는 태양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감격에 넘쳐 구주의 귀하신 보혈과 단순 명확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찬송하고 싶었습니다.
아아, 그 누가 이 진리를 좀 더 일찍이 나에게 깨우쳐 주었더면...
"나를 앙망하라, 그러면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단순한 믿음, 구원 얻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 밖엔 없다는 이 위대한 진리를! 

 

...................................................

 

「찰스 스펄죤」의 이생에서의 마지막 설교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오늘날까지 주님을 섬긴지 사십년하고 조금 더 됩니다. 단지 주님의 이름 찬송할 뿐이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주님의 사랑만 받아왔습니다. 주님이 기쁘게 허락하신다면, 이곳 세상에서 다시 사십 년간을 기쁘게 계속하여 봉사할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나의 생활은, 시종일관 생명의 약동과 평안과 기쁨의 충만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지금이라도 곧장 이 생활로 들어오시기를 나는 진심으로 희구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오늘이라도 여러분이 예수의 기치 아래 모여들기를 기도하여 마지 않습니다. 』

 

 

<원문>

 

 A VISIT TO ARTILLERY STREET CHAPEL IN COLCHESTER

 

At first we couldn’t find it. We walked a long way down Artillery Street in a less than thriving area of Colchester,

England. I was the guest of Graham Stevens and Abbeyfield Community Church, where he is the senior pastor.

I had spoken there on Saturday night and Sunday morning (February 23-24, 2008 ) and we took the opportunity

that afternoon to go in search of the tiny chapel where Charles Spurgeon was converted.

Graham insisted he knew where it was, having been there before. But it had been a while and there was

nothing in the area that alert!!ed us to its presence. We passed several taverns where local soccer fans were

overheard debating the matches of the previous day.

Finally, Graham remembered! It was easy to miss. Set back from the street amidst rows of attached homes,

there was nothing to alert!! you to anything special other than a few small signs announcing that it was here

that Charles Haddon Spurgeon was saved.

In one of the many magazines to which I subscribe there was recently an article describing, together with

colour photos, several of the larger and more innovative church buildings here in the U.S. Trust me, Artillery

Street Chapel in Colchester would never have qualified, then or now. There is still a very small congregation

meeting there.

Before Pastor Derek Hale arrived in 1991 it had three members. When he died of cancer in October of 1999

the church had grown to eight. By 2006 the membership had grown to fourteen.

The chapel is quite small, perhaps capable of holding seventy-five people. There is nothing to distinguish it

physically, but spiritually, well, that’s another matter. As I walked in, I immediately noticed a large bronze plague

on the wall which indicated that it was supposedly near that very spot where young Spurgeon sat on January 6,

1850, although he never planned on being there.

Spurgeon lived a few miles away in the village of Hythe. on that Sunday morning he was intent on attending

another service, desperate as he was to be rid of the guilt of sin that burdened his soul. ‘I sometimes think’,

wrote Spurgeon, ‘that I might have been in darkness and despair until now had it not been for the goodness of

God in sending a snowstorm.’ The unexpected shift in weather forced him to seek shelter in what was then

a nondescript Primitive Methodist chapel where no more than a dozen people were in attendance.

Said Spurgeon, ‘I had heard of the Primitive Methodists, how they sang so loudly that they made people’s heads

ache; but that did not matter to me. I wanted to know how I might be saved, and if they could tell me that, I did not

care how much they made my head ache.’

The minister was not present, evidently snowed in. Finally, a thin-looking man went up into the pulpit to preach.

‘Now, it is well that preachers should be instructed, but this man was really stupid.’

[Spurgeon's words, not mine!]

‘He was obliged to stick to his text, for the simple reason that he had little else to say.’ The text he selected was:

‘Look unto Me, and be ye saved, all the ends of the earth.’ ‘There was,’ Spurgeon thought, ‘a glimpse of hope for

me in that text.’ The preacher continued: ‘Now lookin’ don’t take a deal of pain. It ain’t liftin’ your foot or your finger;

it is just, “Look.” Well, a man needn’t go to College to learn to look. You may be the biggest fool, and yet you can look.

A man needn’t be worth a thousand a year to be able to look. Anyone can look; even a child can look . . . “Look

unto Me; I am sweatin’ great drops of blood. Look unto Me; I am hangin’ on the cross. Look unto Me; I am dead

and buried. Look unto Me; I rise again. Look unto Me; I ascend to Heaven. Look unto Me; I am sittin’ at the Father’s

right hand. O poor sinner, look unto Me! Look unto Me!”‘

After about ten minutes, ‘he was at the end of his tether,’ noted Spurgeon.

‘Then he looked at me under the gallery,’ [which by the way, is still there, but has long since been boarded up] ‘

and I daresay, with so few present, he knew me to be a stranger. Just fixing his eyes on me, as if he knew all my

heart, he said, “Young man, you look very miserable.” Well, I did, but I had not been accustomed to have

remarks made from the pulpit on my personal appearance before . . . He continued, “and you always will be

miserable - miserable in life, and miserable in death - if you don’t obey my text; but if you obey now, this moment,

you will be saved” . . . I saw at once the way of salvation . . .

Oh! I looked until I could almost have looked my eyes away. There and then the cloud was gone, the darkness

had rolled away, and that moment I saw the sun;

and I could have risen that instant, and sung with the most enthusiastic of them, of the precious blood of Christ,

and the simple faith which looks alone to Him. Oh, that somebody had told me this before, “Trust Christ, and you

shall be saved.” Yet it was, no doubt, all wisely ordered, and now I can say -

“E’er since by faith I saw the streamThy flowing wounds supply, Redeeming love has been my theme, And shall be

till I die.”‘
Who would have expected that life-giving, sin-cleansing, soul-redeeming grace could be found in that little

chapel? Who would have expected that God might use the solemn words of an incredibly simple and stammering

man?

Grace cares little of where it is needed. It simply goes and saves and delivers and sanctifies. God doesn’t need

a spacious sanctuary or multi-media technology or cutting-edge sound equipment. His grace is sovereign and

not the least concerned about the surroundings in which it does its work.

Make no mistake about it. on that day the breath of God blew and a blizzard turned aside a searching young soul

into an out-of-the-way chapel. That same breath confined a minister to his home and stirred an uneducated

layman to ascend a pulpit. And that same, saving breath brought life to the dead, dry bones of a fifteen year

old boy. And we are all the better for it. Spurgeon too.

 

<출처: 대한민국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열정적인 설교의 목회자 찰스 스펄전

찰스 스펄전 (Charles Spurgeon, 1834-1892)

                  / 윤진희(MIR)

 

■ 열정적인 설교의 목회자 찰스 스펄전  

기독교 역사에 있어 기억될 만한 훌륭한 목회자들중 설교가로서 명성을 남긴 19세기의 목회자를 대라면 아마 영국인 찰스 스펄젼일 것이다. 그는 불타는 진실성과 굽힐줄 모르는 신학적 신념, 열정을 가진 복음의 전파자였다.

 

1837년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면서 영국의 안정과 인구의 증가, 철도의 발달, 해외 식민지의 건설등 국가 발전의 기초를 놓았다. 또 뉴톤식 과학주의, 로크식 합리주의등 신사조가 등장하였고 다윈의 진화론과 성경의 고등비평은 하나님의 절대성을 부인하였다. 찰스 스펄젼은 이 새로운 시대의 물결에 도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하였다.

 

찰스 스펄젼은 1834년 에섹스의 지방도시인 캘버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청교도 신앙으로 무장한 복음적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성경 말씀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는 신앙심이 투철한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는 자주 무릎을 끓고 스펄젼의 품에 꼭 안아서 자주 기도했다. 아들이 늘 주님안에서만 살아갈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하는 어머니였다. 이러한 가정환경하에서 어릴때부터 성경과 많은 청교도 서적을 읽어나갔다.

1849년 여름에 찰스는 뉴마켓 마을의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결정적인 구원을 받게되었다.

그는 정직하고 곧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눈에 비쳐지는 죄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순간 자신이 너무 힘든 죄의 짐을 지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는 끝없는 율법의 요구로 죄의식은 깊어만갔으며 늘 울부짖는 생화을 하기도 했다.

번민의 밤이 지나고 아침에 깨어 나면 청교도 서적을 집어 들곤 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이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깊은 죄의식으로 차라리 개구리나 두꺼비가 되기를 원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어둠과 절망속에서, 그것도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날 시골 교회에 가게 되었다. 그곳의 찬송소리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컸으며,그날 눈 때문에 목사가 오지 않아 한 구두 수선공이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말씀은 나를 바라보라 그러면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이었다. 보는 것은 고통이 따르지 않습니다. 손과 발을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려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지금 현재 예수님은 나를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는 스펄젼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젊은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당신이 할 일은 바라보며 사는 것뿐입니다. 그는 바로 그 순간 구원받았음을 확신하였다.

그는 자리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나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나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한량없는 은총이여! 죄인이 주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의 영혼은 쇠사슬이 끊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느꼈습니다. 나는 자유로워진 영혼이요,

천국의 상속자이며 용서받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며 더러운 진흙과 끔찍한 지옥으로부터 건져올림을 받았고 나의 발은 단단한 바위위에 서 있으며 나의 앞길도 탄탄히 다져졌다는 것을 그는 이러한 고백을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하였고, 그동안의 고통과 괴로움은 그 순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시간으로 씻기었다. 그 즉시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그가 격었던 시련은 지속적으로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 죄의 사악함에 대한 인식은 그의 마음에 깊이 아로새겨져서 그로 하여금 경건한 모든 것을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한 모습처럼 복음을 가장 진실되고 직접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줄 수 있었다.

 

그는 캠브리지에서 평신도 설교자로 13개 마을을 돌며 순회 설교를 하였다.

그는 몇명의 순진한 농장 지도자들과 그들의 아내들에게 설교하였다.

1851년 10월 스펄젼은 17세의 나이에 워터비치 마을의 침례교회에서 정식목사가 되었다.

조지 골드라는 사람이 당시 캠브리지 회합에 참가했다가 우연히 스펄젼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는 깊은 감명을 받고 런던의 뉴파크 스트릿 침례교회에 그를 추천하였다.

그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다른 동명이인을 초청한 것으로 생각하고 가지 않으려 하였다.

 

찰스 스펄젼은 1953년 12월 뉴파크 스트릿 교회의 설교를 위해 런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그 교회의 크기에 압도 당하였고 다른 목회자들에 비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그가 설교단에 섰을 때 그는 말씀을 전해야 하는 책임감을 느꼈고 그의 설교는 청중의 마음들을 사로잡기 위한 의도가 전혀 없었다. 워터비치의 시골 청중들에게 했던 설교와 똑 같았다.

그는 단지 말씀을 말씀으로 영접하고 그대로 전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단했다. 예배는 너무나 엄숙했고 그 전의 어떠한 설교가들과는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씀을 들은 기쁨을느끼기 시작하였고 아침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오후 예배에 다른 사람들을 초청하여 같이 참석하였다. 그들은 예배가 마쳤음에도 돌아가지 않고 기쁨에 넘쳐 있었다.

저녁 예배때의 회중은 더 많았다. 집사들은 그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스펄젼에게 목사가 되어 달라는 청탁을 하였다.

 

1854년 2월 19세의 젊은 시골 목사가 런던 강단에 서게 되었다.

스펄젼이 이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자 교회는 증축공사를 해야 할만큼 성도의 수가 늘었다. 2천명의 좌석을 만들었지만 군중은 더 늘었다.

이제는 더 넓은 음악회장을 구하여 설교를 하게 되었다. 설교가 있는 날은 그 곳의 교통이 마비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하는 일이 아무 의미없음을 잘 알고 있었고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전심을 쏟았다.

 

그의 설교는 이러하였다.

그는 예배가 시작되기 전 골방에서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가지며 복음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리고 단상앞에 서서는 아주 진실한 기도로 회중을 이끌었다.

"이제 당신의 종은 가장 신실한 모습으로 가장 뜨거운 가슴으로 그의 구세주에 대한 사랑과 영혼들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며 다시 한 번 축복된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음을 전파하고자 합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스펄젼에게는 설교중 회중을 웃고 울게 하는 탁월한 기질이 있었다. 그는 모노드라마의 천재처럼 자연스러운 제스츄어와 적절한 예화를 사용하여 그가 전하는 복음의 주제에 회중을 몰입하게 하였다.

 

그리고 열정과 영혼을 토하며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

죄는 장벽이 될 수 없습니다. 그대의 죄는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가 사단과 같이 검을지라도, 죄와 친구일지라도, 이 밤에 믿기만 한다면 모든 죄가 용서 받을 것이며 모든 악이 없어질 것이며, 모든 불경스러움이 씻어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는 종반부에 가서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는 목소리의 힘을 되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거의 액센트도 들리지 않았다.

설교가 끝난 뒤 그는 다시 은밀한 골방에 들어와 산고의 고통과 하나님앞에서 실패감에 한탄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성직수여식도 받지 않았고 대학도 나오지 않은 것에 주위로 부터 비판을 받았다. 특히 그가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이룩할 수 없다는 청교도 사상을 절박하게 믿었을 때 그에게 무수한 시련이 다가왔다. 각 기독교 종파들이 세상과 타협하고 그에게 압박을 가해 왔을 때도 그는 이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최후의 청교도 처럼 억척스럽게 싸워나갔다.

 

1861년 그는 10,000명 이상이 모이는 메트로폴리탄의 테버네클 교회를 세우게 된다.

또 목회자 훈련학교인 페스터즈 칼리지를 세워 순수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를 양성하였다.

스펄젼은 이 대학의 학생 전원을 1:1로 상담하면서 그들의 영적 성장을 도와주었다.

1866년 런던에서만 그의 제자들이 세운 교회가 18개나 되었다.

그는 또 The Sword and the Trowel 월간 잡지와 1,900편 이상의 설교문들과 시편 주석 등도 발간하였다.

 

찰스 스펄젼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복음의 설교자였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못박히심을 전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그의 모든 재능을 바쳤다.

그의 기쁨은 구세주에게 영광을 돌리고 그분에게 영혼들을 인도하는 데에서만 존재다. 일찍이 그는 자신을 위한 영욕을 버렸고 그의 기도는 그의 가슴의 최고의 목표를 발견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찰스 스펄젼을 쓰시고 19세기 영국에서 복음이 한낱 도덕이나 윤리 종교의 한 영역으로 추락하는 것에 맞서게 하셨다. 또 그의 순수함과 열정적인 믿음을 받으시고 그의 삶을 풍성하게 하셨으며 그를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목회자로 세우신 것이다.

 

<출처: 미라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