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 내면 상처 치유, ‘아름다운 통일’의 시작”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입력 : 2013.04.02 12:43
“주체사상과 기독교가 비슷하다고요? 그런 말 들으면 정말 화가 납니다. 주체사상의 핵심은 내 운명의 주인이 나 자신이라는 것인데, 기독교의 핵심은 내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이게 어떻게 같은가요?”
평촌 새중앙교회(담임 박중식 목사) 북한선교회와 서울 화곡동 하나상담센터에서 탈북민들을 돌보고 있는, 탈북민 출신 유혜란 목사(50)는 얼마 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탈북민들을 통하여 본 북한체제-트라우마 불안’이라는 주제로 신학박사 학위(상담학전공)를 받았다. 유 목사는 북한체제 자체를 ‘수령(김일성 일가)을 위해 복무하는 것으로 그 자체가 역기능적이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통제와 감시, 정신적 충격과 물리적 수단으로 일관한 억압정치’라 보고 있다.
▲유혜란 목사는 “탈북민들끼리 함께 교회에서 모이는 것도 좋지만, 남한 분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비가 오고 눈보라가 치고 추운 날씨에도 어린이들이 교회로 찾아오는 모습들을 탈북민들이 본다면 신앙에 굉장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
‘북한체제-트라우마(North Korea System-Trauma)’는 생존을 위협하는 기근과 체제 노이로제, 즉 김일성 일가의 조건반사적 통치행태(공개처형을 비롯한 집단수용, 연좌제, 지속적인 감시와 통제로 일관한 감옥화된 체제적 재앙)로, 공포와 불안이 반복적으로 경험되는 하나의 집단증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극적으로 빠져나온 탈북자들은 누구나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고, 이것이 제대로 낫지 않으면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겨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적응할 수 없게 된다.
-북한에서 의사이셨지만, 상담을 공부하시고 학위까지 받으신 계기가 이것이었나요.
“북한은 많은 나라들과 다른 특수성이 있습니다. 3대 세습독재를 하고 있는데, 이게 사실 지구상에서 가능할 수 없는 구조잖아요. 그런데도 세습이 되는 건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것을 ‘종교의 말살’, ‘철학의 부재’ 때문이라 생각해요. 존재를 묻는 게 철학이고, 존재에 대답하는 게 종교잖아요?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도, 사람은 종교를 추구하고 뭔가 생각한다는 거잖아요. 북한은 생각하려는 의지와 종교성을 박탈해 버렸습니다. 북한의 대학에서는 그 대신 ‘김일성주의’ 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국 북한이라는 나라는, 본질 자체가 거짓 위에 세워진 역사관을 갖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감시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바깥만 잠시 봐도 거짓인 걸 아니까요. 폐쇄적인 사회로 만들어 놓고, 통제 수위를 높인 다음 감시하면서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어요.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만 봐도, 일단 생존의 욕구가 채워져야 다른 욕구도 품을 수 있습니다. 북한은 풍요를 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생존을 추구하도록 애초부터 만들어 놓았어요. 한 인간을 신격화 시켜놓은 채…. 북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그 ‘신격화된 인간’이죠.
쉽게 말하면, 무서운 아빠 엄마 밑에선 자식들이 솔직하기가 힘듭니다. 북한은 자신을 하나의 ‘사회주의 대가정’으로 이야기하는데, 3대를 세습할 정도니 이 ‘가정’에서는 얼마나 철저하게 독재를 실현하고 있습니까? 여기서는 자유의지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내 생각대로 표현할 수도 없어요. 정치적으로 뭔가를 반대하면 곧바로 수용소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주민들은 체제에 적응하게 됐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사람은 결국 순응하게 돼 있어요. 그러면서 ‘왜곡된 방어기제’가 발달했어요. 수십 년간 이것이 습관처럼 내려오니 성격에 장애가 오고, 그러면서 참 자아가 손상됐고요. 가장 무서운 것은 비정상이 오랫동안 학습돼, 정상적이라고 사고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이나 탈북민들에 대한 접근이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불안한데 어떻게 희생할 수 있겠습니까? 없어요. 북한 사람들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내가 이걸 하면 너는 뭘 주겠니’ 하는 유아적인 발상이 유치한 줄을 모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병리적인 자기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타인에 대한 사랑도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죠. 인간관계를 잘 몰라요.”
▲하나상담센터 모습. 집단상담을 할 수 있도록 빙 둘러앉는 형태로 소파가 놓여 있다. ⓒ이대웅 기자 |
-주체사상 때문인가요.
“탈북자들에게 물어봐도, 사실 주체사상을 잘 모릅니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지만, 주체사상의 심오한 원리에 심취돼서 공경하는 건 아니에요. 단지 두려워서, 안 따르면 수용소를 가야 하니까, 몰라도 아는 척을 할 뿐이죠.
북한은 철저히 계급 사회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 탈북자의 증언을 듣고, 이것을 북한의 전반적인 실상으로 일반화해선 안 되는 것이죠.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대로 사물을 보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북한 사회가 변화되려면 엘리트들이 변해야 해요. 그들은 고등교육을 받고 평양에 있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라우마 속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나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죠.
저도 그랬어요. 북한에서 불붙은 병실에 뛰어들어가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꺼내왔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을 때도, ‘죽은 다음에 영웅 칭호 받으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전에 누려야 하는데,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체사상이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 사상으로 내 삶이 변하지도 않으며, 생활총화 때 필요하니 단지 학습에 따라간 것 뿐이에요. 관심 없는 과목 공부하듯이, 수박 겉핥기로 했을 뿐이죠(웃음).”
-주체사상이 기독교랑 비슷하다는 말에 반대하시죠.
“성경에 하나님 대신 김일성을 넣으면 주체사상이라는데, 전 그것도 조금 다르게 봅니다. 하나님 위치에 스스로 올라간 것 뿐, 하나님 모습을 따라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아들을 희생하셨는데, 김일성은 독재를 세습하기 위해 백성들을 가차없이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이게 같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3대 세습 때문에 죽어갔는데…. 그저 신적인 존재로 군림해 자신에 대해 말도 못하게 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지요. 제가 목회자라 그런 게 아니라, 성경을 읽을 때마다 무엇을 느끼냐면 창조주이신데, 저를 만드신 분이신데 당신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자유의지)’조차 우리에게 내어주실 정도로 저를 사랑하십니다. 물론 그 자유의지를 인간이 잘못 사용하긴 했죠. 그러나 북한에는 자유의지라는 게 없습니다. 박탈당했어요.”
-이렇게 센터까지 마련해 놓으신 이유도 궁금하네요.
“2010년에 통일부에서 ‘하나센터’를 전국 16곳으로 확대해 시범 설치했는데, 그때 서부하나센터에서 파트타임 심리상담사로 근무했어요. 그런데 복지사들은 행정업무가 60-70%에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해야 하는데, 시간을 다 빼앗겨요. 상담실도 열악했고,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심지어 상담실을 자원봉사자들 사무실로 썼다니까요. 상담은 비밀도 보장돼야 하고 쾌적하고 안정된 공간에서 진행돼야 하는데, 이건 아니다 싶어서 2011년 8월 이곳에 센터를 열게 됐어요.”
▲유 목사는 “사실 저도 치유받고 있는 중이라 생각하고, 논문을 쓰면서 ‘내게 이런 상처가 있구나’ 하는 부분들을 많이 깨달았다”며 “탈북자들을 상담하다 보면 에너지가 상당히 많이 소진되지만 배우는 부분도 적지 않고, ‘이 많은 상처를 안고도 지금까지 이렇게 견뎌내고 있는 모습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전했다. ⓒ이대웅 기자 |
-상담해 보시니 어떤가요.
“2년간 상담하면서 느낀 점은 탈북민들의 근본적 문제를 치유하려면, 체제의 상처라 이름붙일 정도인 탈북민들의 상처를 먼저 치료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통한 집단치료와 함께, 개인상담도 이뤄져야 합니다.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이유는, 탈북민들은 먹고 살기 바쁘기 때문에 상담을 사치라고 생각하기 쉬워서에요.
하지만 탈북민들도 느낍니다. 무턱대고 나가서 부딪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걸요.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부분도 필요하지만, 상처로 얼룩진 내면이 치유돼야 대인관계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 사람에게 상처만 받고 회사를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회사생활이 어렵구나 해서 막노동 같은 일당벌이로만 나돌게 됩니다.
그래서야 탈북민들이 ‘통일의 자원’이 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하는데, 제가 혼자 할 수는 없으니 일단 시작이라도 해 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일은 이후에 많은 교회들이 협력하고, 더 활성화돼서 나중에는 범국민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저는 ‘아름다운 통일’이라 비유해요. 동서독 통일 이후도 그 정도로 힘들었는데, 남북한은 어떻겠습니까.”
-그런 탈북민들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북한체제 자체가 트라우마임을 국민들이 인식한다면, 탈북민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좀더 생겨나지 않을까요? ‘저 사람들이 저런 체제에서 수십 년을 살았구나, 불안이 심하게 내재돼 있구나’…, 탈북민들에 대한 이해는 북한체제의 본질을 바로 이해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물론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고, 남한 사람들도 나름의 상처가 있기 때문에 마냥 기대하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탈북민들 숫자가 더 적으니, 이들이 내면의 상처를 잘 회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상처가 적을수록 상처를 덜 받게 되고, 민감한 반응도 없어져요. 궁극적인 문제는 탈북민들의 내면이 치유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중에 북한의 문이 열렸을 때 탈북민들에 대한 이러한 임상적 부분들이 그대로 북한체제의 상처를 치유할 자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한에서 탈북민들이 건강하게 지내야 북한 주민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지 않겠어요? 특히 엘리트들에게 말입니다. 그들에게 ‘통일이 돼야 하는구나’ 하는 희망을 줄 수 있는 이들이 바로 탈북민입니다. 이들이 제대로 서지 못하거나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한다면, 그들에게 ‘통일이 돼선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만 굳혀줄 뿐이에요.”
-한국교회는 어떤 도움을 주는 게 좋을까요.
“무턱대고 지원해 주는 것보단… 장학금 지급 같은 부분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독신으로 온 아이들이 많고, 혼자가 아니라도 부모가 실질적인 도움이나 역할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심지어는 나라에서 장학금을 주겠다는데도 부모가 돈 벌어야 한다고 자식 공부를 반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에요. 교회에서 형편이 된다면 장학금을 지원해 주는 게 참 좋습니다. 어른보다 청소년들에게 미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센터 한쪽 방에 마련된 개인상담실 모습. 누구라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꾸며놓았다. ⓒ이대웅 기자 |
그리고, 무엇보다 탈북민들에게 하나님 사랑을 제대로 깨닫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발적으로 교회를 찾아옵니다. 하지만 탈북민들이 조직 생활에 진저리가 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사역에서는 기독교 영화를 많이 틀어주는 편입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영향으로, 문화예술을 통해 감동을 주는 문화가 정착돼 있기 때문이에요. 추상적인 하나님을 내면화하는 데는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는 게 좋습니다. 전설에서나 나오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분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조급증을 버리는 일도 필요합니다. 신앙이 성장할 때까지 너무 규율에 얽매이게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철저히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그 결과를 지켜보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는데, 우리가 너무 통제하려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죠. 저도 어려워요. 그래서 인간은 죄인인 것 같아요(웃음). 통제받고 살아왔기 때문에 통제하고 싶어하고, 타인을 조종하려 하고… 이 모든 것들은 치유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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