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은 하늘서 승패 갈린 본격 항공戰"
국민일보
22대198.
6·25전쟁이 터졌을 때 대한민국에는 연락기와 훈련기 22대 뿐, 전투기는 한대도 없었다. 반면 북한군은 지상폭격기와 전투기 등 실전용 항공기만 198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한국군은 전쟁 발발 일주일 뒤인 7월 2일에야 미군에게서 무스탕 전투기 10대를 제공 받았다.
하지만 전쟁 후반 북한군은 제공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드라마 같은 역전극이었다. 당시 전투기조종사로 참전한 이강화(88·준장 예편)장군은 2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6·25는 항공 전력이 승패를 좌우한 최초의 본격적인 항공전이었다"고 강조했다.
6·25전쟁을 항공전으로 재조명한 책이 잇따라 출간됐다. 이 장군은 최근 자신의 전쟁 경험담을 담은 '대한민국 공군의 이름으로'(플래닛미디어)를 펴냈다. 당시 전장터에 직접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찍은 사진 200여장이 함께 수록됐다. 대한민국 공군의 탄생과 성장 기록이다.
흥미롭게도 비슷한 시점에 나온 만화책 '바우트-원'(길찾기출판사)은 이 장군이 소속됐던 대한민국 첫 항공대가 일본 규슈 북부 미 5공군 전진사령부에서 10대의 무스탕을 이끌고 현해탄을 건너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장우룡 만화가가 6·25 당시 공군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2011년부터 공군 웹진에 연재했던 걸 3권의 책으로 펴냈다. '바우트-원'은 당시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 명칭이다.
그동안 육군에 관한 책은 다수 나왔으나 상대적으로 조명 받지 못한 공군의 활약상과 공군력의 중요성을 소개하는 책이 6·25 발발 64주년을 맞아 출간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두 책을 통해 6·25전쟁 당시 공군 이야기는 생생하게 살아난다. 무스탕 전투기를 타기 위해 일본에 도착한 한국 파일럿 10명은 5일 동안 계속된 비 때문에 제대로 된 훈련 한번 받지 못했다. 겨우 이륙과 착륙을 한번씩만 해보고는 곧바로 투입, 7월 3일의 첫 출격을 했다고 '바우트-원'은 묘사한다.
개전부터 무스탕이 한반도에 오기까지 1주일동안 공군이 손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10대의 훈련기 뒷좌석에 정비사들이 폭탄 3발씩 들고 탔다. 북한 진영을 초저공 비행하면서 손으로 폭탄을 떨어뜨렸다. 불행하게도 저공비행 탓에 정비사 중 2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 장군은 "대한민국 공군의 최초 전사자는 이들"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제공권을 되찾은 것은 유엔군의 참전 이후였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 항공기가 북한군을 제압해갔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대공격을 막아낸 것도 미 제5공군 예하 무스탕 전투기가 쏟아부은 네이팜탄과 로켓탄, 적 지상군을 향한 기총 사격 덕분이었다고 '대한민국 공군의 이름으로'는 전한다.
'바우트-원'과 '대한민국 공군의 이름으로'에는 공통으로 등장하는 미군장교가 있다. 바로 딘 헤스 중령이다. 그는 함흥 철수 작전 당시 미군이 보호하던 100여명의 전쟁고아들을 우리 공군의 수송기로 제주도에 피신시키는 작전을 감행했다. 또 전쟁 중반 "한국 공군은 필요 없으니 해체하라"는 맥아더 장군의 지시를 반박하며 공군을 살려냈다.
'바우트-원'은 만화의 특성을 살려 전쟁 당시 하늘에서 본 한반도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장우룡 작가는 "국군 조종사 중에는 북한이 고향인 분들도 있었는데, 자신이 살던 동네를 폭격해야 했을 때 심한 갈등을 느꼈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이 장군도 "전쟁에서 이기는 게 군인의 사명이지만, 전쟁은 절대 다시 일어나선 안 되는 비극"이라고 강조했다. 김지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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