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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진리를 소개합니다

김기동 계열의 귀신론과 질병관의 문제점을 기독교 관점에서 말한다

by 서귀포강변교회 2015. 10. 30.

김기동 계열의 귀신론과 질병관 

교회와 신앙 webmaster@amennews.com


1995년, 숭실대 한국기독교 문화연구소가 '한국기독교와 사이비 이단 운동'을 주제로 개최한 제9회 기독교 문화 및 신학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 중 목창균 교수(서울신대)가 '김기동 계열의 귀신론과 질병관'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한 것을 전량 게재한다. <편집자 주>


목창균 교수(서울신대)

한국인의 의식과 행동에 큰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민간 신앙이 무속 신앙 또는 무교(Shamanism)이다. 이는 "신령과의 접촉을 통해 복을 빌고 재앙을 물리침으로써 인간의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주술적인 종교현상'이다. 귀신의 존재가 무속신앙의 중심을 이룬다. 귀신은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의 영혼으로 인간의 길흉을 좌우한다.


무속신앙은 한국인이 기독교의 하나님과 영적 세계를 쉽게 이해하고 이질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무속신앙과 기독교는 유사한 신관을 가지고 있다. 무속신앙은 많은 귀신과 함께 하느님을 최고의 신으로 믿는다. 

물론 이 하나님은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이 유일한 인격신도 절대적인 존재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속신앙의 하느님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외관상으로 유사한 기독교의 하나님에 친근감을 가질 수 있었다.

한국교회의 경이적인 양적 성장은 이러한 요인에 힘입은 바 없지 않다.


무속신앙은 한국 기독교인의 신앙 형태와 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무속신앙을 가졌던 사람들이나 그런 토양에서 성장했던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함에 따라 일종의 혼합주의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기존의 무속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채 기독교를 수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현실주의적 기복신앙이나 개인 위주의 즉흥적인 신앙, 입신, 진동, 투시 등 개인적인 신비 체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광신주의 현상, 질병에 거리는 것을 귀신의 소행으로 간주하거나 병 고치는 것을 기독교의 주된 임무로 생각하는 것 등은 기독교에 침투된 무속신앙의 요소들이다. 특히 귀신과 질병에 대한 무속 신앙적 이해가 교회를 혼란시키며 신자들을 미혹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성락침례교회의 김기동 목사다.


김기동은 한국 무속 신앙의 귀신론과 성서의 귀신론을 혼합하여 독자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그의 마귀론은 한국 전래의 무속신앙과 기독교 신앙의 혼합 산물이다. 물론 그가 자신의 해석을 혼합주의의 결과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서적인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김기동의 마귀론과 귀신을 쫓아내는 현상은 1978년 설립된 '베뢰아 아카데미' 통해 확산되었으며 1980년대 들어 한국교회에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김기동을 비롯하여 서울대 교수이자 부활의 교회의 목사인 한만영, 한국예루살렘교회의 이초석, 레마선교회의 이명범 등이 이 흐름을 주도했다.


대한 예수교 장로교와 기독교대한 성결교회를 비롯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 총회는 김기동, 이초석, 이명범 등 베뢰아 아카데미 계열에 속한 집단을 사이비 이단으로 규정했다.


필자는 베뢰아 아카데미 계열에 속한 김기동, 이초석, 한만영, 이명범 등의 관계성을 규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귀신론, 특히 귀신의 본질과 사역에 대한 견해를 무속신앙과 전통 기독교의 입장과 비교함으로써 그것이 성서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한국 전래의 무속신앙에 기초한 것임을 밝히려고 한다.



김기동과 베뢰아 아카데미 계열

김기동 목사는 대한신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서울 신길동에 성락침례교회를 창립한 이래,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 존재이며 모든 질병의 원인이라는 것으로 요약되는 마귀론을 주장하는 한편, 공개적으로 직접 귀신을 쫓아내는 것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1973년 초부터 자기의 신앙과 신학을 토요일마다 정기적으로 가르치다가 1976년 그 모임을 베로아라 불렀다. 1978년 그는 2년 과정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베뢰아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그는 베뢰아 아카데미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주장했으며, 1980년대 들어서는 도서출판 베뢰아를 통해 이에 관한 많은 책들을 출판했다.


김기동 목사와 성락침례교회는 1985년 이단시비로 침례회 총회를 탈퇴하여 "기독교 남침례회"라는 독립교단을 만들었으며 서울 침례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김기동 목사는 「마귀론」상, 중, 하 세권과 「성서적 신학적 현상적 마귀론」을 저술하는 동시에, 1988년까지 약 40만명의 귀신을 쫓아냈다고 주장할 정도로 이 분야의 이론과 실제 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성락침례교회는 김기동의 귀신 쫓아내는 치유활동에 힘입어 한국침례교 중 가장 큰 교회로 발전했으며 세계 20대 교회 안에 들 만큼 급성장했다.


한편, 1980년대 들어 성락침례교회, 베뢰아 아카데미 혹은 부흥회를 통해 김기동 목사의 주장을 배우고 이를 추종하는 자들이 한국교계에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한만영, 이초석, 이태화, 이명범 등이다. 한만영과 이명범은 1980년 5월 제1기생으로 베뢰아 아카데리를 수료했다.


서울대학교 국악과 교수인 한만영은 국립 국악원장을 역임했으며 「국악개론」, 「한국 불교음악 연구」, 「동양 음악」 등을 저술한 한국국악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국악인으로보다 오히려 '귀신론의 거두' 혹은 귀신 잘쫓는 장로로 더 유명하다. 그는 오랫 동안 김기동과 함께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귀신론은 김기동의 귀신론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베뢰아 아카데미에서 김기동은 본 연구와 학생들을 가르쳤던 반면, 한만영은 일반 연구와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후 한만영은 독립하여 그레이스 아카데미를 설립, 운영하고 있으며 부활의 교회 담임 목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레이스 아카데미는 베뢰아 아카데미와 쌍벽을 이루며 지금까지 30여 기에 거쳐 수천명의 수료자를 배출했다. 한만영의 대표적인 제자가 이초석과 이태화다.


한국 예루살렘 교회 이초석 목사는 한만영의 그레이스 아카데미 8기 출신이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정통신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 S측 총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가 1984년에 개척한 예루살렘 교회는 교인수 1만여명이 넘는 대형 교회로 급성장했다. 그는 땅끝예수전도단을 조직하여 자신의 활동 전위대로 활용하고 있으며, 튼튼한 재력을 바탕으로 인복유치원, 인복 여자실업학교 등 교육사업과 전남 장성에 위치한 시온산 기도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초석은 1987년 소속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고 축출되었다. 그것은 김기동의 귀신론을 추종하기 때문이었다. 귀신 쫓는 전문가로서이 그의 명성과 저서가 그것을 입증한다. 특히 그의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는 그의 귀신론이 주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는 독자들이 귀신을 쫓고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기록했다고 밝히고 있다.


마산 산해원 부활의 교회 이태화 목사는 한만영의 그레이스 아카데미 5기 출신이다 그는 1980년 총신대학을 졸업하고 부활의 교회를 설립하여 담임 전도사로 활동했다. 1983년 그가 속한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측)는 베뢰아의 귀신론을 추정한다 하여 그를 제명, 출교시켰다. 그러자 이태화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정통)에 가입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합동 정통 총회도 그의 귀신론을 문제시하여 제명하려 하자, 1987년 이태화는 그 교단을 탈퇴했다. 그는 「조직신학」을 저술하고 G.M.A.(Gospel Missionary Alliance)신학교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그 후 1992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측) 경남노회가 그를 영입하자, 마산시 기독교 연합회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강력한 반대와 비판이 일어나기도 했다.


레마선교회 이명범은 연세대 도서관학과와 이화여대 대학원 기독교학과를 나온 인텔리 여성이다. 그는 1981년 레마선교회를 창설,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레마선교회는 깨닫게 되는 체험, 즉 레마를 체험하는 것이 신앙의 정수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로고스는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로고스의 말씀이 내게 들어와 나를 감동시키고 살아 역사하는 말씀으로 체험될 때, 그것을 레마라고 한다는 것이다.

레마선교회는 1983년에 중급 성경공부반을, 1988년에 레마 엘리트 성경 공부반을 개설하고 선교회 명칭도 「레마 복음선교회」로 바꾸었다. 이명범은 트레스디아스, 비더뉴바, 렘과 같은 다양한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조직을 강화하고 「레마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이명범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제 77회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김기동과 같이 축사행위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과 별 차이가 없는 극단적인 신비주의 형태의 이단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오히려 김기동의 귀신론이 비성서적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성락침례교회를 떠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명범이 김기동의 베뢰아 사상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녀는 베뢰아 아카데미 1기 출신이며 성락침례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바도 있다. 베뢰아 아카데미에서 직접 성경을 가르친 적이 있으며 레마선교회 창립 초기에는 주로 「베뢰아 아카데미」의 성경공부 테입을 보급시켰다.


이런 외형적인면 뿐만 아니라, 그의 가르침이나 저술의 여러 곳에서 그가 김기동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이 입증된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과 삼위일체 하나님은 예수라는 하나님 따로, 여호와라는 하나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 등이 그 단적인 예다. 따라서 이명범이 김기동이나 한만영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그가 김기동의 주장중 귀신론을 비롯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을 공개적으로는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요약하면, 김기동, 한만영, 이초석, 이태화, 이명범은 직, 간접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한국교회 내에 신비주의적 또는 신령주의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마귀와 귀신

김기동의 베뢰아 계열에 속하는 이들의 주장 가운데 교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들은 삼위일체론, 기독론, 인간론, 창조론 등과 같은 중요한 교리에서 전통적인 기독교와 입장을 달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마귀와 귀신론이다. 김기동 계열의 귀신론에 대한 논쟁의 중심을 이루는 문제는 그것이 무속 신앙과 기독교 신앙의 혼합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필자는 김기동의 귀신론이 한국 전래의 무속신앙에 근거한 것임을 밝히려고 한다.


김기동 계열

김기동은 한국 무속신앙의 귀신론과 성서의 귀신론을 혼합하여 독자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물론 그가 자신의 해석을 혼합주의의 결과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서적인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마귀는 본래 천사였으나 타락하여 마귀 또는 사단이 되었다는 기독교 전통적인 입장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마귀와 사단이란 명칭을 구분하여 사용했다. 사단은 "우주를 창조하기 전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할 때"의 명칭인 반면, 마귀는 우주 창조 이후 인간을 대적할 때의 명칭이라는 것이다.


한편, 김기동은 귀신 역시 타락한 천사라는 기독교 전통적인 입장을 부정했다. 그는 천사를 세 종류로 구분했다. 그는 천사를 세 종류로 구분했다. 불변적인 천사, 가변적인 천사, 타락한 천사가 그것이다. 불변적인 천사는 천사장 미가엘과 가브리엘을 말하며, 가변적인 천사는 옳는 일을 하고 있으나 불의한 천사로 변할 수 있는 것을 말하며 미혹의 영이 여기에 속한다. 타락한 천사는 마귀와 함께 타락한 천사의 무리,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을 말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적 그리스도로 만드는 일을 한다.

김기동은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그의 귀신론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그는 성서적 측면과 실험적 측면에서 이에 대한 증거를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성서적인 증거는 세 가지이다.

첫째, 점과 귀신에 관한 증거이다. 그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점하는 귀신(16:16)을 이사야 8장 19절의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서 구하겠느냐"는 구절에 근거하여 죽은자로 해석했다.


둘째, 제사와 귀신에 대한 증거이다.

그는 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는 바울의 증거(고전 10:20~22)와 시편의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106:28~29)이라는 구절에 근거하여, 이방인의 제사를 받는자를 귀신 곧 죽은자라고 주장했다.


셋째, 복음서에 나타난 증거이다. 그는 헤롯왕이나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은 세례요한 또는 엘리야가 살아난 것으로 말한 것(마 16:13~14, 막 6:14~16)을 죽은자가 산 사람에게 들어 올 수 있다는 것, 즉 불신자의 사후 영혼이 귀신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김기동이 보다 역점을 두는 것은 실험적 증거다. 귀신들린자 8,000명을 조사한 결과 7,995명이 죽은 불신자의 영혼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귀신이 죽은 불신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의 생전 주소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사후 구별이 뚜렸하다는 것, 모두가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는 것을 고백 한다는 것 등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는 증거로 30여 가지를 제시했다. 그에 있어서 귀신은 육체를 가지지 않는 사람이다.


김기동은 귀신은 영적 존재이나 수명이 제한된 존재라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이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었을 때, 그 사후 존재는 귀신이 되어 본래의 수명이 차기까지 활동한다. 그 후에는 무저갱에 들어가 활동을 그친다.


김기동은 귀신의 활동범위 역시 제한적이라고 주장했다. 귀신이 활동하는 처소는 주로 자기 집안 식구들이다. 즉 귀신과 귀신들린 자는 대부분 가족, 친척, 친지의 관계에 있다.


김기동은 음부를 이 세상으로 해석하고 귀신이 떠돌아다니는 장소라고 주장했다. 그는 음부를 마귀가 존재하는 곳과 아직 마귀의 권세가 있는 곳으로 정의하고, 공중과 세상, 무저갱과 지옥이 모두 음부라고 주장했다. 그의 강조점은 이 세상이 음부라는 데 있다. 그가 음부를 세상으로 해석한 것은 불신자의 사후 영혼이 귀신이 되어 이 세상을 떠돌아 다닌다는 주장을 합리화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한편, 이초석의 귀신론은 김기동의 귀신론의 복사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귀는 타락한 천사지만,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는 것, 귀신은 영적 존재이기는 하나 수명, 처소, 활동영역, 지식 등에서 제한된 존재라는 것, 음부를 이 세상으로 해석하는 것 모두가 김기동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한국 무속신앙

무속신앙은 정확한 기원과 역사적 발전과정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종교현상으로 아프리카와 유럽을 제외한 거의 전 세계에 퍼져있다. 무속신앙은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나는 원시적 자연종교 현상으로 영매, 주술적 치료, 예언, 점복, 강신술, 노래, 춤 등을 그 기능으로 한다.


학자들은 시베리아의 퉁그스족에서 그 전형적인 것을 찾으며 한국의 것을 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간주한다.

한국 무속신앙은 민간신앙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다. 이는 선사시대부터 한 민족의 정신생활을 지배했으며 불교와 유교 같은 외래 종교가 전래된 후에도 다른 종교의 저변에 서식하거나 혹은 민간신앙의 형태로 존속하여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중의 각계 각층에 깊숙이 스며들어 기복종교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 무속신앙의 가장 큰 특징은 현세주의이다. 

타계와 내세가 아닌 현실과 현세가 신앙과 삶의 중심이 된다. 현세의 삶을 가치의 기준으로 삼고 복을 빌고 재앙을 쫓아내는 기복과 양재를 그 근본적 복으로 한다.

무속신앙은 무당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영계와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사람이 무당이다.


무당에는 세 종류가 있다. 

신이 내린 강신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세습무, 무당일을 배운 학습무가 그것이다.


무당의 기능은 기복, 양재, 점복 및 오락이다. 

기복은 사제적 기능을 신령에게 제사하고 복을 비는 것이다. 

양재는 무의(巫醫)적 기능을 악령을 쫓아냄으로 병을 고치고 재앙을 물리치는 것이다. 

점복은 예언적 기능으로 길흉을 점치는 것이다. 오락은 한국 무당 특유의 기능으로 가무를 통해 신령과 인간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무속 신앙은 모든 물체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 아니미즘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이 세상은 신령들과 혼귀들로 가득차 있다고 주장한다. 이 신령들이 한국 무속의 신앙 대상이다. 


신령들은 천신, 지신, 인신 잡귀 등으로 분류된다. 

천신(天神)은 곧 하느님이다. 전체를 지배하는 최고의 신이며 우주와 운명의 창조자요 주재자이다. 산에 강림하여 은거하는 이는 하느님의 아들인 산신(山神)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선령이나 악령이 되며, 이것이 인신(人神)이다. 선령을 신명(神明)이라 하고 악령을 귀신이라 한다.

선령은 현세에서 자녀를 두고 장수하다 수가 다하여 자택에서 자연스럽게 사망한 사람의 영혼을 말한다. 


반면 악령, 곧 귀신은 수를 다하지 못하고 요절, 횡사, 객사한 사람, 악행을 하거나 억울하게 죽어 원한을 지닌 사람의 영혼은 말한다. 

악령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에서 방황하며 원한이 풀릴 때까지 인간을 괴롭힌다. 가축도 오래 기르면 악귀가 되어 주인을 해친다. 


이러한 귀신은 형체는 없으나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이나 할 수 있으며 어느 곳이든 들어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초인적인 행위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귀신은 영속에 존재가 아닌 일시적 존재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없어져 버린다.


무속신앙에 있어서 선령과 악령사이의 구획은 분명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통칭하여 귀신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령들의 선악을 인간의 대접에 따라 복을 베풀기도 하고 재앙을 내리기도 한다.



전통 기독교

마귀는 타락한 천사의 우두머리에 붙여진 이름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을 유혹하는 악한 영적 존재의 우두머리를 마귀, 또는 사단이라 부른다. 그것은 대적자, 비방자, 유혹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마귀나 귀신론은 기독교에서 인기 있는 주제는 아니었다. 학문적으로 연구된 적이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구약성경은 마귀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원과 정체에 대해 거의 침묵하고 있다. 단지 세 곳만이 마귀에 대해 직접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대상 21:1, 욥 1:~2:, 슥 3:1~2).


구약성서에서 마귀와 귀신의 기원과 관련된 것으로 지적되는 본문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성적인 타락사건을 다루고 있는 창세기 6장 1~4절, 두로왕과 바벨론론왕 몰락 사건을 다루고 있는 에스겔 28장 12~19절과 이사야 14장 4~21절이다. 창세기 6장에서 마귀의 기원을 찾는 일부 학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들로 해석하여 천상적 천사들과 인간의 딸들의 성적인 결합의 결과로 마귀와 귀신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음주의 주석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상적 존재가 아닌 셋 계통을 아들들로, "사람의 딸들"을 가인 계통의 딸들로 해석한다. 따라서 창세기 6장은 마귀의 기원에 대해 언급한 것이 아니다.


전통적인 기독교는 천사의 타락에서 마귀와 귀신의 기원을 찾는다. 에스겔 28장과 이사야 14장에서 교만으로 인한 바벨론왕과 두로왕의 파멸을 천사의 타락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교만하여 하나님의 보좌에 오르려다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난 천사가 마귀다. 천사가 타락하여 마귀가 된 것이다.


구약성서에는 마귀나 귀신을 타락한 천사들로 해석할 수 있는 간접적인 표현과 암시만 있는데 비해, 신약성서에는 마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여러 곳에 있다. 특히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는 말씀(벧후2:4)이나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는 말씀(유 1:6)은 타락한 천사가 마귀라는 전통적인 해석에 성서적 근거를 제시해준다.


마귀와 귀신들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천사들이었으며 본래 선했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하여 악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런 범죄가 언제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한다.

또한 타락한 천사의 수가 전체의 삼분지 일이나 된다고 한 말씀(계 12:4)이나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 하는 자이며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겼다는 말씀(계 12:9)은 타락한 천사의 우두머리가 마귀 또는 사단이며 그 휘하에 있는 악한 천사들이 귀신들임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신약성서는 마귀와 귀신 또는 악령들 사이의 계급적 차이는 인정하지만, 존재론적 차이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본질과 본성에 있어서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 마귀는 귀신들의 우두머리이며, 귀신들은 부하다.


사도시대나 교부시대는 이러한 성경의 견해를 받아들였으며 이 문제에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반면 중세에는 신플라톤 철학의 신비주의에 영향을 받아 큰 관심을 보였으며, 마귀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대적이 될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하였다. 종교 개혁자들은 천사 중 일부가 타락하여 마귀와 귀신이 되었다는 견해를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한편, 신구약 성서는 죽은 자의 영혼이 거하는 곳을 음부라고 했다. 구약성서는 이를 히브리어로 스올(Sheol)로 표현했고, 신약성서는 헬라어로 하데스(Hades)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모두 죽은 영혼은 그 생전의 행위에 따라 다른 곳으로 간다고 믿었다. 예수의 비유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자와 나사로가 간 곳이 서로 다르다(눅 16:22~25). 특히 욥기 7장 9~10절에 따르면, 음부에 내려가는 자는 다시 이 세상으로 올라오지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한다.



요약

마귀와 귀신에 대한 김기동 계열과, 무속신앙 그리고 전통 기독교의 견해를 비교한 바에 의하면, 김기동의 귀신론은 기독교 신앙과 무속신앙을 혼합한 것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다. 마귀의 기원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천사 타락설을, 기신의 기원에 대해서는 제명대로 살지 못한 원혼이라는 무속 신앙의 귀신론을 받아들인 것이다.


첫째, 김기동의 귀신론은 성경이 아닌 귀신들의 주장에 기초한 것이다. 그가 제시한 성서적 증거들은 불신자의 사후 존재가 귀신임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는 성경을 임의적으로 해석했을 뿐이다.

오히려 그가 의존하고 있는 것은 귀신들린자 8,000명을 조샤한 실험적 증거다.


둘째,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 영혼이라는 주장은 성서가 아닌 무속신앙에 근거한 것이다. 김기동계열은 불신자의 사후 영혼설의 근거 중 하나로 그것이 문화사적으로 세계 각국에 퍼져있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귀신론이 민간신앙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반증해 준다.


셋째, 귀신을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고 보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도 맞지 않는다. 창세기 1장에 따르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되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이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10여 차례 반복, 강조하고 있다. 귀신과 사람은 종류가 다르며, 귀신과 마귀는 동질성을 지닌 같은 종류다. 따라서 귀신과 불신자의 사후 존재를 동일시하는 것은 비성서적이다. 귀신은 마귀와 함께 타락한 천사들이라고 본는 기독교 전통적인 입장이 성경의 교훈에 더 잘 부합된다(마 25:41, 벧후 2:4, 유 1:6).


넷째, 김기동은 귀신의 수명과 활동범위가 제한적이라고 주장했다. 귀신은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사후존재이며 본래의 수명까지 주로 자기 집안 식구들을 대상으로 활동한다고 한다.

반면, 성경은 사탄과 그 세력들인 귀신들이 세상 끝날까지 활동하다 최후 심판시 무저갱에 갇힌다고 말하고 있다(마 25:41, 계 20:1~3, 7~10). 따라서 그의 주장은 귀신에게 수명이 있다고 보는 무속신앙과 동일하다.


다섯째, 음부는 죽은 영혼이 가는 곳이지, 살아있는 사람이 생활하는 곳이 아니다. 예수님은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를 통해 불신자의 사후 존재는 음부에 있다는 것과 이 세상을 배회하거나 이 세상으로는 올라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교훈하였다(눅 16:19~31). 이는 욥의 증거에 의해서도 입증된다(욥 7:9~10). 따라서 세상을 음부로 간주하는 김기동 계열의 주장은 불신자의 사후존재가 귀신이 되어 세상을 떠돌아다닌다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다.



질병과 치유

김기동 계열의 또 다른 특징인 동시에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질병의 원인을 귀신으로 보는 것과 병 고치는 것을 귀신 내어쫓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질병과 치유에 관한 그들의 주장을 무속신앙과 기독교 신앙의 입장을 비교함으로써 그 출처를 밝히려고 한다.


김기동 계열

김기동은 귀신이 하는 일을 다섯가지로 분류한다. 귀신은 모든 병, 사고, 중독, 범죄 및 자살의 원인이다. 특히 그는 질병을 생물학적인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영적인 것을 취급하여 그 원인을 귀신이라고 주장했다. 병에 걸리는 것은 귀신이 사람 몸에 침입하는 것이다. 병든 원인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있는 것이다. 귀신은 각색 병든 영들이다. 어떤 사람이 벙어리 되고 귀먹는 것은 그런 귀신이 그 사람안에 들어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는 유전병, 계속적인 우환, 고혈압과 저혈압, 심지어 차멀미나 배멀미도 귀신이 들렸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다.


강성진의 조사에 따르면, 김기동 목사가 쫓아낸 귀신 78건 중, 구체적인 사람의 이름이 40%, 무당귀신이 13.3%, 거지귀신이 20%, 과부귀신, 오빠귀신 등 기타 귀신이 26%였다. 이들 귀신은 모두 원한 품고 죽은 사람들의 사후 존재라는 것이다.

김기동은 병 고치는 것과 귀신 내어쫓는 것을 동일시했을 뿐만 아니라 귀신을 내쫓아 병을 고치는 것을 자신과 성락침례교회의 특징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예수께서 공생에 시작부터 귀신을 쫓았으며, 귀신추방은 그의 주된 사역 가운데 하나였다는 신념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귀신을 추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인 동시에 기독교인의 사명이라 믿는다.


김기동의 귀신 쫓는 방법은 대화법이다. 그의 축사의 기본 과정은 세 단계로 분류된다.

첫째는 귀신과의 만남이다.

둘째는 귀신과의 대화이다. 네가 누구며 어떻게 그리고 왜 이 사람에게 들어왔는가,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을 했는가, 이 사람 안에 거주하면서 만족하는가 등의 대화를 통해 귀신 스스로 정체를 밝히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귀신들을 책망하여 그 사람으로부터 떠나기를 명령한다. 귀신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이 무기이기 때문에 정체가 밝혀지면, 꾸짖음과 호통이 무서워서 나간다.


한편, 김기동은 귀신추방 방법을 다룰 때 가능한 한 귀신들린 사람에게 물리적인 힘을 가하지 말고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가라"고 명령하라 했다. 그러나 「마귀론」하권에 기록된 축사 사례 68가지를 검토해 보면, 귀신들은 그의 "가!" 또는 "나가!"라는 호통소리에 나간 것으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형식이 전혀없다.

그는 "귀신의 고찰"이란 글에서 귀신추방 방법에 적대법, 복종법, 구타법, 경압법 등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초석 역시 귀신을 모든 병의 원인으로 취급하는 점에서 김기동과 다를 바 없다. 그는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어 모든 병을 고쳤다는 이유를 들어 귀신 이외의 다른 어떤 원인으로 병이 일어날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는 예수의 근본적 사명과 공생애 동안의 주요 사역을 귀신 쫓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귀신 추방이 기독교인의 사명이자 그리스도의 명령임을 강조했다.



한국 무속신앙

무속신앙에서는 인간의 생사화 복과 흥망성쇠가 신령들의 작용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질병은 귀신의 인체 침입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간주된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혼인 잡귀들이 사람의 몸에 들어가 화풀이하는 탓으로 병이 생긴다는 것이다. 즉 질병은 악령의 탈이나 조령(祖靈)의 벌이다.

예를 들어, 마마는 호귀(胡鬼), 안질은 맹인귀(盲人鬼), 정신병은 정귀(精鬼)의 탈이다. 질병을 혼령 침입으로 보는 것은 한국 무속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질병관이다.


무속신앙은 네 가지 방법으로 병을 치료한다. 손비빔, 푸닥거리, 살풀이, 굿이다.

손비빔은 가난한 자나 가벼운 환자에 흔히 사용되는 방법으로 무당이 여러 신들에게 병을 낫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다.

푸닥거리 역시 손비빔과 비슷한 치병 방법이다.

살풀이는 급성질환을 치료할 때 사용되는 방법이다. 살은 급병을 일으키는 악령을 뜻한다.

굿은 신령과의 교섭행위이며 이를 통해 인간의 운명을 조정하는 것이다. 죽은 이의 혼을 불러내어 원한을 풀어주고 저승으로 옮겨가게하는 사령제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진오기굿 또는 씨김굿이 있다.


무속신앙에서 귀신을 퇴치하는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은 대적법, 경압법, 복종법 등이다.

대적법은 질병의 원인인 귀신에 정면으로 대항하여 그것을 격퇴하는 것이다. 환자의 신체에 고통을 주면 귀신이 참을 수 없어 나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환자를 온돌방에 가두어 놓고 2, 3일간 연속 송경을 한 뒤 뽕나무 가지나 복숭아 나무가지로 때리면 낫는다고 한다.

경압법은 소리를 질러 귀신을 놀라게하고 위협함으로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것이다. 복종법은 귀신을 달래거나 무엇을 바쳐 귀신의 재화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전통 기독교

질병에 대한 구약성서의 일반적 견해는 병은 죄에 대한 벌로서 하나님이 보낸다는 것이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라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


사람의 육체적 건강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면, 좋은 건강을 가질 것이나, 하나님의 법에 불복종하면, 건강이 좋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구약성서의 일반적 견해이기는 하지만, 결코 유일한 것은 아니다. 


욥기에서 보듯이, 질병이 마귀나 귀신 뿐만 아니라(욥 2:6~7) 질시에 의해(욥 5:2) 또는 자기 태만(잠언 3:30~31)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어떤 질병은 자연히 일어날 수 있으며(창 27:1, 48:1), 어떤 불행은 백성의 변덕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창 34:25).

신약성서 시대에도, 죄와 질병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구약적 개념이 조금 수정되었지만 아직도 일반적이었다. 


예수는 이런 일반적인 개념에 반대했다. 

누가복음 13장 1~5절에, 이 문제와 관련된 두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빌라도가 예루살렘에서 여러 명의 갈릴리인들을 살해하여 희생제물로 드린 것과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18명의 유대인이 죽은 이야기이다. 예수는 두 이야기에 대해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눅 13:2). 예수는 아니오 라고 했다.


신약성서 역시 귀신으로 인해 병에 걸릴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귀신들려 벙어리된 자로부터 귀신을 쫓아냄으로 말하게 하신 것(마 9:32~34, 막 9:17~27)이나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치신 것(마 12:22), 일곱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를 고치신 것(눅 8:2)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귀신이냐 하는 것이다.


고대 헬라세계와 유대 공동체 내에는 귀신들에 의해 병이 일어난다고 믿는 집단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에세네파이다. 그들은 병은 귀신들로부터, 치유는 천사들로부터 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신약성서 저자들은 모든 병의 원인을 귀신 들림에 돌리지 않았다. 성경은 질병이 마귀나 귀신 뿐만 아니라 죄(마 9:1~8), 불경건한 생활(고전 11:27~30), 과로나 부주의(빌 2:25~30),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요 11:4) 등으로부터 올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한편, 예수는 두 가지 형태의 치유를 구별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병을 낫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마 10:8, 막 1:34, 눅 13:32).

마태복음 17장 15~18절에서 예수는 간질하는 자로부터 귀신을 쫓아냈으나 마태복음 4장 24절에서는 간질하는 자와 귀신들린 자가 구별되고 있다.

마가복음에 기록된 첫번째 신유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낸 것(1:24)이었으나, 두번째는 귀신들림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베드로의 장모를 고친 것이다(1:31).


사복음서에 기록된 치유사례 가운데 귀신 또는 더러운 영에 대해 언급되고 있지 않은 곳이 수없이 많다. 마태복음의 경우, 백부장의 하인(8:5~13), 열두해를 혈루병 앓는 여인(9:19~20), 두 소경(9:27~30), 손 마른 사람(12:9~14), 예수의 옷가를 만진 자(14:35~36) 등의 병을 고친 것이 그러하다.


한편, 바울은 질병과 치유에 대해 또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육체의 가시"로 그것을 부르고 있다(고후 12:7). 그것은 간질일 수 있으나(갈 4:15, 6:11) 확실하지는 않다. 바울은 그의 병을 귀신들림이 아니라 연약으로 말하고 있다(고후 12:7, 9, 10).



요약

질병과 치유에 대한 김기동 계열과, 무속신앙 그리고 전통 기독교의 견해를 비교한 바에 의하면, 김기동의 견해는 무속신앙이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첫째, 김기동 계열은 모든 병을 귀신의 인체 침입으로 간주한다. 성경 역시 귀신에 의해 병이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으나 모든 병이 그렇다고는 결코 보지 않았다. 이것은 예수께서 귀신 쫓는 것과 병 고치는 것을 구별한 것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따라서 김기동 계열의 질병관은 성서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질병을 혼령의 인체 침입으로 보는 무속신앙에 기초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병을 귀신적 능력에 돌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비성서적이다.


둘째, 김기동의 축사방법은 기독교 신앙과 무속신앙적 방법의 혼합이다. 김기동의 귀신 쫓는 방법은 대화법이다. 그는 귀신과의 대화를 통해 귀신 스스로 정체를 밝히게 한다. 귀신은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면, 꾸짖음과 호통에 무서워서 나간다. 김기동은 귀신들을 책망할 때, 자주 단순히 나가라고 말한다. 드물게 그는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라고 말한다. 그의 「마귀론」하권, 부록에 기록된 축사 사례를 검토해 보면, 귀신들은 김기동의 "가!" 또는 "나가!"라는 호통 소리에 나갔다.


이러한 김기동의 방법은 지나치게 기계적이다. 성령의 능력이 악한 영을 내쫓기 위하여 기계적인 힘같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 무속신앙의 대표적인 축사방법인 대적법과 복종법과 유사하다. 

복종법은 귀신을 달래거나 무엇을 바쳐 쫓아내는 것이며, 대적법은 귀신에 정면으로 대항하여 물리치는 것이다. 

대적법에는 경압법이 있다. 경압법은 놀라게하고 위협하여 나가게하는 것이다.

반면, 예수님은 말씀으로 명하여 귀신을 쫓아냈다. 그의 권위와 능력에 귀신이 복종한 것이다. 그의 제자들은 예수의 이름과 성령의 능력을 통해 귀신을 쫓아냈다.


서광선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김기동의 귀신론과 질병관은 무속적인 축사현상이나 무속적인 정령주의(animism)에 그 무의식적인 근거를 두고 있다. 그이 축사 방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전통적 무속신앙의 방법과 유사하다.


김기동 계열의 귀신론과 질병관은 한국 무속신앙에 기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귀신을 불신자의 사후존재로 보거나 모든 병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것, 귀신에게도 수명이 있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귀신을 불신자의 사후 영혼으로 간주하는 것은 임의적인 성서해석과 주관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성경해석의 원리와 토대 중에 하나가 사도적 전통, 즉 성경 해석의 역사이다. 귀신을 타락한 천사로 보는 것은 사도적 전통에 의해 증거된 해석이다. 김기동은 전통보다는 무속신앙과 주관적 체험을 토대로 귀신을 불신자의 사후 존재로 주장했다.


질병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임을 성서가 증거하고 있다. 따라서 질병은 자연적인 인과율에 의한 것이지, 마귀나 귀신때문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나 모든 질병의 원인이 마귀 또는 귀신이라고 보는 극단적인 견해는 모두 성서적이 아니다.


김기동은 귀신 쫓는 것을 그리스도의 근본적인 사명으로 보았다. 하나님의 승리는 강조되고 있으나 하나님의 정의는 강조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정의에는 관심이 없고 원수에 대한 승리에만 관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목적을 단지 사탄의 세력에 대란 승리로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이 세계와 역사의 진행과정을 하나님과 마귀세력 간의 대결장으로 이해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김기동 계열의 귀신론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전통적인 귀신관과 잘 조화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은 교리적인 면이나 신학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의 신앙생활면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것은 지나친 신비주의와 현세적이며 물질적인 축복을 강조하는 기복주의적 신앙을 심화시킨다. 또한 기독교인들을 정령신앙자로 만들 우려가 있다.


김기동 계열의 치병 방식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질병을 즉각적으로 고치는 위대한 샤머니즘적 영으로 간주하게 하며, 귀신적 능력에 대한 점증적인 두려움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2월호)

이 글은 인터넷신문 <교회와신앙>(www.amennews.com) 이 제공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