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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진리를 소개합니다

성막과 성전의 역사 - 모세- 테플린(갈보리 성막수양관에서)

by 서귀포강변교회 2005. 5. 17.



성막과 성전의 역사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성전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구약의 성막과 성전]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19:5-6)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25:2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찌라. 내가 그 회막과 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29:42-46)


[신약에서의 성전]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1:23)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사도행전 17:24-25)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3: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한복음2:19)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성전은 참으로 중요한 개념이다.

앞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종합하고 이를 근거로 현대적 의미의 참 성전이 무엇인지를 다시한 번 살펴 보도록 한다. 아직도 대부분의 성도들, 그 중에서도 신앙이 독실한 분들 가운데도 역시 많은 분들이 건물을 성전으로 오인하고 있는데 이는 목회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기인한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하였듯이 인간은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고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고 하는 내면적 죄의 굴레 속에서 하나님의 본 뜻을 끝없이 왜곡하고 있는 슬픈 현실을 우리는 지금도 목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마치 성경에 통달하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잘지켜 하나님을 잘 섬기려던 예수님 당시 제사장들과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는 모습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현상이다.

예수님께서 성전모독죄는 사형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아시고도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고 대답하시면서 당시 정상인으로서는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청천벽력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성전을 헐라는 말씀은 단지 대적자들의 말에 대꾸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나가는 임기응변적 발언이 아니라 진실로 이제는 건물성전의 시대는 지났고 건물은 더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단호한 의지가 들어 있는 계산된 발언이었던 것이다.

, 하나님께서도 이제는 건물에 더이상 관심이 없으시다는 강력한 암시가 들어 있는 것이다. 지금도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에 이방종교 이슬람의 황금돔 사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세계의 경찰 국가인 미국에 실질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들 조차 감히 이곳을 공격하여 탈환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중요한 교훈인 동시에 참으로 상징하는 바가 크다고 할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하여 거리로 내 몰리고, 가정이 파괴되며, 때때로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가 하면,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이웃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수많은 영세민들이 굶주리며 차마 죽지못해 모진 목숨을 하루하루 이어가는 이 시대.... 차가운 지하철 역사공간에서 새우잠을 자고 한끼 식사를 걱정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나는 이 시대... 참 사랑으로 돌보아야 할 이런 이웃들을 외면한체 성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베인 헌금을 과감히 투자하여 수백억짜리 건물을 짓는 교회가 있는 이 시대....호화로운 교회의 분위기 속에서 수억짜리 파이프 오르겐의 반주 소리에 맞추어 "내게 강 같은 평화..." 를 부르는 찬송소리를 듣고 거리의 노숙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것은 분명 죄악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빗나간 행태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하실까?

성막과 성전에 관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성막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성막이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백성중에 임재하여 계심, 또는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신 곳을 상징하는 처소였다. 따라서 그것은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되고 하나님께서는 늘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언약의 구체적인 증거이고 상징물이었다. 한편 성막은 전반적으로 성소뜰, 성소와 지성소 순으로 구분되어 거기 접근하는 자의 자격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일반 백성들은 오직 자신의 죄를 대속할 희생제물을 가지고 성막뜰 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그 희생제사도 일반 백성과 똑같은 죄인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특별히 당신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로 허락한 제사장들에 의해서만 집전되었다.

 

이러한 성막(tabernacle)의 구조와 거기서 집전된 제사의식은 죄인된 백성과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는 엄연한 단절이 있으며 이는 오직 인간의 죄 고백과 희생대속의 피로만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성막의 구조와 각종 의식은 죄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단 절 및 그 단절을 연결하기 위한 구속의 법의 엄정함을 보여 주며 동시에 비록 그런 제한이 있음에도 성막이 주어진 것 자체에는 인간의 죄를 해결해 주시고 관계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준다 하겠다.


또한 이러한 성막은 예표론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과

· 죄인의 사죄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의 유일한 길인 희생제물의 대속의 피가 요청되는 원리에 의해 집전되는 성막에서의 제사의식과

· 그 의식에 사용되는 그 안의 모든 기구들은
모두 자신의 구속사역을 통하여 죄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회복시켜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과 관련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8:5,6)

 

또한 성막제도를 통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의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으며 인간의 지혜나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고전2:4,5,1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루어 바치고자 하는 업적이나 실적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지성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거하실 믿음의 성전이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임재하시고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는 도구로 우리를 쓰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본질은 행위(doing:공로)가 아니라 상태(being:인간 됨됨이)인 것이다.


성막과 성전의 역사

성경은 성막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주지 않는다. 이는 성경이 자료집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사건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막의 건립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한 언급이 주어진 것은 이것이 갖는 구속사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반면 성막 건립 후 성전으로 대체될 때 까지의 역사가 모호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에 대한 규례를 철저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모세시대의 성막이 솔로몬 성전으로 대체될 때 까지의 성막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본다.

성막의 역사

1. 성막의 건립
성막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대로 만들어 졌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한 때가 3월이며(19:1) 성막의 봉헌이 그 이듬해 11일에 있었다.(40:2) 이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보여 주심으로(40:34) 당신이 성막에 임재하심을 나타내셨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를 보호하셨을 뿐만 아니라 성막의 이동 시점을 계시하셨다(40:37-38)

2. 광야의 성막
이스라엘은 성막 봉헌 후 50일간을 시내산에서 더 머물렀으며 그 해 220일에 이동을 시작했다(10:11). 이 때 레위인은 법궤등 성막의 기구들을 어깨에 메고 옮겼으며(4:5) 성막 본체는 해체하여 주로 수레에 실어 이동했다(7:1-11). 광야 여행 도중 그들의 이동경로는 부분적으로 확인되나(33:16-49) 성막을 세운 장소는 불명확하다. 이는 항상 전쟁을 염두에 두며 행군을 준비하는 가운데 정규적으로 희생제사를 드리거나(5:25) 정상적으러 성막을 세우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3. 길갈의 성막
오단강을 건넌 후 가나안 정복이 진행되는 동안 성막이 임시로 안치된 장소는 여리고 근처의 길갈이었다(4:16; 5:10; 9:6).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았고 땅이 무덤으로 더렵혀 지지도 않았으므로 적당한 장소로 여겨졌을 것이다.

4. 실로의 성막
가나안 정복이 일단락된 후 성막은 에브라임 지파의 성읍인 실로로 옮겨졌다(18:1). 여기서 성막은 '여호와의 전'으로도 불리워 지는데(삼상1:9) 이는 이곳이 고정된 장소였음을 암시한다. 한편 사사 시대에는 성막이 실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에 다른 예배처소를 만들었으며(18:31) 실로에서의 제사 역시 형식에 그친 정도였다(삼상2:14). 이러한 배교로 인해 법궤는 블레셋에게 빼았겼으며(삼상4:11) 실로도 함락되었다(78:60, 7:12). 그러나 성막을 블레셋에게 빼앗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5. 모호한 시기
실로 함락 후 성막은 다시 길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사무엘과 사울이 길갈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는 기록에서 암시받을 수 있다(삼상10:8). 그러나 이와 별도로 성막의 주요 성물의 하나인 법궤는 블레셋사람의 손에서 반환되어 벧세메스에 잠시 머물렀으며(삼상6:19) 기럇여아림에 20년 동안 있었다(삼상7:1-2).

6. 놉의 성막
놉땅에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었으며 그에게 여호와께 드렸던 거룩한 진설병이 있었다는 기록(삼상21:1-6)을 볼 때 사울 시대에 성막이 놉땅에 있은 적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7. 기브온의 성막
옛적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다윗 당시 기브온 산당에 있었다(대상21:29).

8. 성막의 병존(竝存)시기
다윗은 기럇여아림에 있는 법궤를 두기 위해(삼하6:11) 시온에 성막을 새로 만들었다(삼하6:17). 따라서 당시는 제단이 있는 기브온의 원래 성막과 법궤가 있는 예루살렘의 새로운 성막이 병존했을 것으로 추측된다(왕상3:1-3).

9. 성전의 건립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립함으로써 성막의 기능은 성전으로 옮겨졌다. 따라서 B.C.1445년에 만들어진 성막은 B.C.959년까지, 487년간 예배의 처소로 존속했다. 그 이후에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종교적 유물로 보관되었으나(왕상8:4)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에 의한 성전 파괴시(B.C.586)없어진 듯하다.

성전의 역사

성전은 성막(Tabernacle)의 발전 형태다. 이스라엘 역사상 성전은 세 번에 걸쳐서 세워졌다. 솔로몬 성전(B.C.959; 왕상6:1-38), 수룹바벨 성전(B.C.516; 6:15-18), 그리고 신약시대의 헤롯 성전(B.C.20-A.D.63)이 바로 그것이었다. 또한 이런 성전들은 다 무너졌다. 하나님의 상징적 임재 처소인 성전이 무너질 때마다 이스라엘은 크게 놀랐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놀랄 일이 못되었다.

왜냐하면 돌과 쇠로 만든 건물 자체가 하나님이나 아니면 하나님의 처소였던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순종할 때만 하나님이 그속을 당신의 처소로 삼아 주신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요 우리 주님의 사역의 예표이며 그 흥망의 역사가 이스라엘 신앙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이스라엘 성전의 역사를 함께 모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솔로몬 성전
출애굽한지 480년 만인 B.C.966에 착공하여 총공사기간 76개월 만인 B.C.959, 예루살렘의 모리아산(Mount Moriah)위에 이스라엘 역사상 제 1성전이었던 솔로몬 성전이 준공되었다(왕상6:1-38). 그러나 이 성전은 준공된지 373년만인 B.C.586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제3차 침공 때 남 왕국 유다의 멸망과 함께 완전히 훼파되었고, 성전의 금, , 놋 기명과 보물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졌다. 흥미로운 것은 훗날 헤롯 성전은 이 솔로몬 성전과 같은 달, 같은 날 즉 아빕월(포로 귀환후 니산월로 이름이 바뀜 : 태양력 3-4월에 해당됨) 9일에 멸망했다.

 

 


2. 스룹바벨 성전
이스라엘 역사상 제 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은 B.C.586년 솔로몬 성전이 함락된 후 B.C. 516년 건축한 것으로서 옛 성전에 비해 크게 초라했다. 또한 포로 귀환 이후 바사(persia) 식민지 상태에서 건축한 것으로서 학개서에도 언급되었듯이 그 과정에 우여 곡절이 많았다. 또한 B.C.167년 중간사 시대에 헬라인들에게 크게 모독 당하기도 했었다.

3. 헤롯 성전
이방인 이두매(Idumea) 출신인 헤롯은 유대인들에 대한 유화 정책으로 헤롯 성전을 건축하였다. 옛 성전 터전위에 B.C.20년에 착공하여 외형은 9년만에 완성되었으나 세부공사는 A.D.63년경에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한편 예수님은 이같은 헤롯 성전을 가리켜 이것을 헐면 3일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었다. 이것은 하나님 임재 처소의 상징에 불과한 건물 자체를 가리키신 것이 아니라 그 건물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자체이신 당신을 죽이면 삼 일만에 다시 사실 것을 빗대어 말씀하신 것이었다(2:19).
아무튼 근 80년이 넘게 걸려 세워진 이 헤롯 성전은 그 성전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의 결과 그저 죽은 건물로 존재하다가 완공된지 불과 수년 후인 A.D.70년에 로마군에 의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저항하던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함락되고 성전을 불타 버렸다.

그런데 성전에 있던 금들이 화재속에서 녹아 돌 사이에 스며들었고 로마 군인들이 이 금을 찾기 위해 모든 돌을 다 해쳐버려 돌 위에 돌이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헤롯 당시 성전의 바깥 벽 중 일부 약450M 정도가 아직도 아남아 있는데 이를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이는 유대인들 이 이곳에 와서 성전이 파괴된 것과 나라를 잃은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여 통곡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이다. 오스만 시대부터 이스라엘은 물론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곳에 순례차 와서 소원이 적힌 쪽지를 벽의 돌 틈새에 끼워 가며 기도를 한다. 로마 시대에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압비월 9일 하루만 이곳에서 기도하는 것을 허락 받았다고 한다.

 

 


4. 지금의 성전

예수님께서 성전의 원형이 되시며 , 감사하게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모든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이 된 것이다. 우리 속에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구약 시대의 성전중에서도 지성소에 해당한다. 따라서 지금 한 생명을 실족케 하는 것은 성전훼파의 불충한 죄가 되며, 한 생명이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영접토록 하는 것이 참된 성전 건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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