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기도는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도전이요, 독립적인 삶에 대한 고발이다.
자기나름의 길을 가고있는 바쁜 사람들에게 기도는 매우 황당한 방해꾼이 아닐 수 없다.
기도는 인간의 교만한 본성과는 아주 이질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도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가장 친밀한 연합은 오로지 기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를 실천하기 보다는 기도에 대해서 많이 알고있는 수준은 아니었던가.
빌은 말한다.
자기는 기도에 관한 중요한 책을 20권 정도 읽었었지만 정작 기도를 많이 하지는 않았었다고..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이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자신의 평강을 주신다.
아무리 자급자족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하는 사람에게로 흘러간다는 사실때문에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능력은 상황과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심리적, 신체적, 결혼생활, 경제적.. 모든 문제와 필요를 해결하고 채워주실 수 있다.
우리가 일할 때는 우리가 일하는 거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임을 잊지말라.
* 두 손을 높이 들고..
출17장 8-13절, 아말렉과 이스라엘과의 싸움, 팔을 든 모세, 전장에 나간 여호수아.
모세의 팔을 든 아론과 훌.. 기도의 후방지원.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서 흘러나온다.
그 능력은 지혜라는 형태로, 용기라는 형태로 또는 자신감이나 인내 그리고 지구력, 사람에 대한 태도의 변화, 상황의 변화 또는 심지어 명백한 기적의 형태로 올 수도 있다.
어떤 형태건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하는 이들의 삶속에 충만히 부어진다.
* 항상 흐르는 하나님의 능력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킨다.
그결과 짓눌리는 느낌, 압도되는 느낌, 낙심천만, 조이는 느낌, 패배감과 같은 감정들을 자주 경험한다.
기도는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창고를 여는 열쇠다.
*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가련한 과부의 얘기.
하나님은 악한 재판관과 같지 않다.
자신의 자녀들에게 복내려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본성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 좋아하시는 좋은 아버지시다.
하나님의 귀에는 당신의 목소리보다 더 달콤한 목소리가 없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기도를 하지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효과도 없는 기도를 계속 하느니 차라리 어려운 상황을 견디며 살겠다고 생각하진 않는가.
그것은 하나님에게 그런 능력이 있음을 의심하기 때문에 생기는 생각들이다.
우린 흔히 머리로는 하나님이 전능하시다고 믿어오지만,
우리 마음에 새기지는 않고있지는 않는가.
성경을 보라.
하나님은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 물을 냈을 때 수맥이 있을만한 땅을 쳐서 물을 내신게 아니다.
바위를 쳤다. 자연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상황을 정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베드로가 쇠사슬에 갇혔을때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풀어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제자들은 막상 베드로가 풀려나오자 믿지 못했다.
그들의 불완전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응답해주신 하나님이다.
* 마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
내성적인 모세를 지도자로 만드신 능력,
완악한 바로의 마음을 누그러뜨리신 능력,
낙심한 엘리야에게 힘을 주어 일어서게 하신 능력,
광분한 박해자 사울을 사도바울로 바꾸어주신 능력,
겁쟁이 베드로를 반석같은 단단한 사도로 만들어 주신 능력..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의 이런 옛사람은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
그게 하나님의 능력이다.
*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
우리의 믿음은 교리에 동의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그 교리가 진정 내 것이 되어야 한다.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하나님이 나의 역사 속에서 전지전능하심을 보여주심을 믿어야 한다.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은 오늘 내가 살고있는 동네, 나의 관심사와 문제들 속에서도 내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불변하심(immutable)이다.
교리가 우리 것이 되기 전에는 우리 심약한 기도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기도의 용사란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아무것이나 기도할 수 있다.
빌 4:6의 말씀처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을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아뢰기만 하면 된다.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우리의 삶에서, 모든 영역에서 믿지못할 정도의 기적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주실 마음도 있고 능력도 있는 분이시며,그분이 직접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초청하셨다.
* 당신의 부름을 기다리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에 관심이 많으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당신 자체에 관심이 많으시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께도 최우선적인 관심사가 된다.
오늘 당신의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보다 하나님께 더 중요한 일은 지구상에 다시 없다.
하나님은 당신이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
* 심령을 견고케하는 기도습관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 안에 들어오라고 우리를 초청하셨다.
우리는 영혼이 건강하게 되기위해 영적인 좋은 습관을 들여야한다.
기도를 습관화하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임재에 조율되고 축복에 열려있게 된다.
첫번째 경고:
많은 신자들에게 영적인 훈련이 그만 온갖 요구사항으로 가득한 구속으로 변질되어서 삶과 신앙 속에 있는 활력, 즉흥성, 모험성을 다 쥐어짜버리게 하여서는 안된다.
종교가 무거운 짐이 되어서는 결코 안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살고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자기 의로 굳어진 나머지 남들은 그들이 실패하기를 간절히 바라게될 지경이 된다.
갈 5:1의 말씀처럼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매지 말라.
두번째 경고:
그저 영적인 흐름을 탄다고 체계나 습관 같은 것을 도외시 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자기기만이다.
체계없이는 영적인 삶에 대한 의도성 없이는 영적인 성장도 없다.
가만히 앉아서는 체지방을 줄일 수도 근육질을 만들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린 목표달성을 위해 타협할 수 없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
절대 타협불가인 것을 정해야 한다.
좋은 기도습관을 유지하는건 결코 타협할 수 없다.
물론 훈련 그 자체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엮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훈련이 없이는 보람있고 풍성한 기도생활을 계발해낼 수가 없다.
* 예수님의 기도원칙
예수님은 기도 전문가이시다.
그분의 기도원칙은 아래 네 가지이다.
규칙적으로 기도하라 - 너희가 기도할 때에라고 하셨지, 너희가 기도하게 된다면 이라고 안하셨다.
은밀하게 기도하라 - 남들에게 경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진실하게 기도하라 - 공식기도 같은 것보다는 속 마음을 원하시는 하나님.
구체적으로 기도할 - 도매급으로 하지 말라.
* 예수님처럼 기도하기 각론
* 너희는 기도할 때에 (마 6:5)-
당연히 규칙적으로 기도시간을 가지리라고 전제하고 하신 말씀이다.
규칙적인 기도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규칙성이 없이는 기도가 절대로 습과이 되지않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기도시간만큼 일정한 기도장소도 중요하다.
기도는 관중에게 보이기는 경기다 아니다.
옷장 속이든 빈 사무실이든.. 어디든 하나님과만 함께 있을 수 있는 은밀한 장소를 찾으라.
목소리, 음악소리, 전화벨소리. 등으로 산만해지지 않는 곳ㅇ, 은밀한 곳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느껴라.
그곳이 바로 당신의 겟세마네가 된다.
* 특별한 분위기를 조성하라.
기도가 잘 될 수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꾸며보라.
빌은, 성경책 한 권을 펴놓고,'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적핀 문구판.
고난받으신 구주를 생각나게 하는 가시 면류관, 그리고 목자의 지팡이 한 자루를 갖다 놓았다.
하나님께 요청하는 기도를 할 때는 종종 그 지팡이를 높이 쳐들곤 한다.
하루중 가장 좋은 시간에, 그곳에 가서 가장 정신이 맑을 때, 매일 규칙적으로 기도하라.
* 기도의 의미를 바로 알고 하자
진실하게 해야한다. 상투적인 표현을 조심하라. 의미없는 말을 반복하는 습관에 빠지지 말라.
거룩한 용어를 남발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그러나 실제론 틀린 말이 많다.
(하나님, 면접보러 가는데 함께 해주세요.. 실제로 함께 하고계시는 하나님임을 모르는 기도)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이미 함께 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해달라고, 그리고 그 사실때문에 마음이 든든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질나쁜 음식을 앞에 두고 이것으로 힘과 영양을 얻게 해달라는 식의 기도는 하지 말라.
그것은 마치 지리시험을 엉망으로 친 후에, 마치 한국의 수도가 부산이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다.
*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도
하나님은 우리가 감동적인 표현들을 남발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저 친구나 아버지에게 말하듯 그렇게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바라신다.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인격적으로 절실하게 말이다.
하나님은 정형화된 표현들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주님, 요즘 제 마음은 이렇습니다. 이런게 좀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좀 우울합니다. 이런 것때문에 제가 기쁩니다..' 이렇게 진실하게 기도하라.
* 구체적인 기도를 하라.
하나님은 어떤 일도 하실 수있는 능력있는 분이시며,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시다.
산타에게 드리는 편지가 아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찬양하고 경배하라.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최우선에 두어라.
즉, 당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라.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두고 하라.
필요한 양식을 위한 기도를 하라.
영적인, 육적인 양식을 위해 모두 기도할 수 있다.
당신 자신이 방해물이 되지않게 하라.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주지 못해서,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실 수 없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하라.
악에서 보호해주시고, 지켜달라고 기도하며,
마지막으로 권세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마감기도를 하라.
주기도문은 결코 마법같은 주문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암송하고 읊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기도를 그렇게 하라는 모본으로 주신 것임을 잊지 말자.
*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반추해보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의 생활을 반추해보는 삶이다.
지난 삶을 반추하여 평가해보는 삶이다.
그러지 않으면 똑같은 죄를 계속 지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어쨌든 간에 기도하라.
예수님의 방법대로 기도하는 훈련을 하라.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서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잊지말라.
기도에 대해서 아무리 많이 알아도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 기도하는 방법에 관하여
빌은 말한다.
ACTS로 기도하라고..
Adoration (찬미)-
기도를 찬미 혹은 경배로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찬미는 기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찬미는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 상기시켜주며, 기도하는 사람을 깨끗하게 한다.
하나님은 찬미받으실만한 충분한 분이시다.
급한 마음에 기도가 그만 소원목록표로 전락해버리지 않도록 하라.
죄책감에 시달릴 때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찬미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를 찬미하고,
내게 뭔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미하라.
환경이 허락한다면 찬양의 노래를 해도 좋다.
찬미없이는 기도생활을 잘 해 나갈 수가 없다.( 이경욱 선교사, 키타..)
Confession(고백)- 죄의 고백
모든 죄를 한 덩어리로 뭉쳐서 하지 말라.
이런 것은 엄청난 회피다.
죄를 하나씩 꺼내어 죄명을 달면서 기도하라, 그러면 완전히 다른 기도가 된다.
Thanksgiving(감사)-
고맙게 느끼는 것과 감사를 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누가복음 17:11-19 , 열명의 문둥병 환자들 예..
예수님은 감사하는 한 명의 문둥환자에게 감동하셨다.
기도에 응답하심에 감사, 영적인 축복에 감사, 인간관계에서의 축복 그리고 물질적인 축복에 감사..
Supplication(간구)- 도우심을 구함
너무 큰일이어서 하나님이 다루실 수 없거나, 너무 작은 일이어서 하나님이 신경쓰실 수없는 일은 없다.
야고보는 말한다(약1:5),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받을 것이라'라고..
간구의 영역들은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역, 사람, 가족 그리고 나 개인적인 부분..
나이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 기도할 때는 성품의 변화까지도 기도한다.
빌은 말한다.
그는 적는 기도를 좋아한다고.. 경험상 그게 아주 효과적이더라고..
* 산을 옮기는 기도
마 21:21-22에 보면 산을 옮기는 기도가 나온다.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하는 기도는 산을 옮긴다고 하신다.
여기서 산이란 비유적인 표현이다.
우리의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면 무엇이든지 산이 될 수 있다.
산을 옮기는 기도의 첫번째 원칙:
믿음의 기도는 시선을 산에 맞추지 않는 기도이다.
시선을 하나님께 맞추는 기도다.
믿음이란 산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볼 때 오는 것임을 잊지 말라.
믿음이란 형편없는 나 자신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산을 옮기는 기도의 두번째 원칙: 앞으로 전진하기 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다는 것이다.
여호수아 3장,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널 때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발을 디디는 순간 강이 갈라졌다.
첫발을 내디디기가 중요하다.
그들이 발을 강물에 담글 때까지는 아무 일도 보여주지 않으셨다.
헌신과 순종의 첫발을 내딛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들이 발을 담궜을 때 비로소 강물이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꿈쩍도 안하는 나의 산은 무엇인가.
엄청난 산이 있을 때, 산에 대해서 하나님께 설명해드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그 산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오히려 산을 옮기시는 그분게로 관심을 돌리라. 그분의 영광과 능력과 신실하심에 초점을 맞추라.
그때 산이 옆으로 비켜서는 것을 보게될 것이다.
**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
요청이 잘못된 것이라면, 하나님은 '안돼'라고 하신다.-
동기가 중요하다. 저 사람을 변화하게 해달라는게 상대방을 향한 진정한 관심인가,
아니면 나를 위함인가.
간절히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인가, 나의 영광을 위함인가.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겠는가,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겠는가..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겠는가..를 생각하라.
아직 적기가 아니라면, 하나님은 '천천히'라고 하신다.-
언제가 적기인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이사야 55:8-9 ' 내 길, 내 생각은 너희와 다르고 너희보다 높다'
당신이 틀렸다면, 하나님은 '성장하라'고 하신다-
때로는 우리 성품을 만들어 가시느라 응답을 지체.
많은 영적인 소득들은 고통, 상처, 갈등, 혼동 그리고 실망을 통해서 얻어진다.
하지만,
요청도 올바르고 시기도 적절하며 당신도 올바르다면, 하나님은 '좋아'하신다.
내가 가장 큰 문제다.
응답되지 않는 마지막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세우고 있으면 응답받지 못한다.
우린 우리속에 있는 기도의 방해물, 기도훼방꾼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기도 훼방꾼
첫번째: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기도만 빼고 다하는 경우가 있다.
야고보 4:2,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
문제가 생기면 상담가를 찾아간다.
그리고 관련된 책을 읽는다.
자기훈련을 한다.
친구에게 털어놓는다. 자기개선 방식을 찾아본다.. 기도에 관한 책을 읽어본다..
그러다간 안되면.. 기도한다는 식이진 않은가.
두번째: 죄로 오염된 기도를 하기 때문이다.
고백하지 않은 죄가 하나님과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경우이다.
이사야 59:2,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의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때문에 주님께서 너희에게서 얼굴을 돌려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라고 하셨다.
오토바이는 대체로 함부로 다루어도 되지만, 연료만큼은 아주 순도가 높아야 한다.
불순물이 있으면 안된다, 아주 작은 먼지 하나라도 들어가면 힘을 낼 수가 없다.
아주 작은 죄라도 이와 같은 효과를 가진다.
지금, 당신이 삶속에서 용인하고있는 죄는 무엇인가.
그 죄를 고백하지 않는한 기도하느라고 헛수고하지 말아라.
먼저 주님의 용서하심부터 받으라.
그러고 나면 당신이 주님께 마음을 쏟아놓을 때 당신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세번째 : 깨어진 관계
해결되지 않은 갈등관계가 훼방꾼이 된다.
마5:23-24, 먼저 가서 화해하고 와서 제물을 드려라는 말씀을 기억하라.
남편, 아내, 자식,직장.. 사람과의 관계를 해결하라.
하지만,
당신이 정말 성심성의를 다 했고 솔직했다면, 하나님은 그 깨어진 관계가 당신의 기도에 장애물이 되지 않게하실 것이다.
네번째 : 이기심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약4:3)
현수막에 걸어놔도 부끄럽지 않은 것들을 구하라.
다섯번째: 남을 돌아보지 않는 태도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 아무도(하나님도) 대답하지 않는다.(잠21:13)
당신이 고통받는 자에게 귀를 열고있다면, 하나님도 당신에게 계속 귀를 열고계실 것이다.
여섯번째 : 부적절한 믿음
의심하는 마음이다.
의심하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서 출렁이는 바다물결과 같다. 그런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라.(약1:5-7)
이런 기도훼방꾼들만 제대로 처리하고 나면 하나님은 오케이 사인을 해주신다.
*** 기도가 냉랭해질 때
잘 하던 기도, 열심있던 기도가 갑자기 냉랭해질 때는 .. 우리가 너무 편안하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바람이 사납게 불어대는 날엔 모두 기도로 울부짖게 마련이다.
그러다가 상황이 좋아지면 언제 그랬느냐는듯 기도도 상당히 식기 시작한다.
구약에도 그런 슬픈 주제가 있다.
하나님은 자기자녀들을 사랑하여 복을 주시는데, 그 자녀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상황이 생기면 또 도움을 애걸하고, 도움을 주면 또 잊어버리고..
어쩔 수없는 인간의 한계라 할까..
냉랭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를 일상의 일정 속에 꼭 집어넣어야 한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매일의 삶에서 기도를 위한 시간과 장소를 꼭 정해놓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시간과 장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고싶지 않은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게 문제다.
어떤 사소한 문제가 원인이 되어서 점점 기도를 멀리하다 보면 그게 일상화되어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과의 간격은 더 크게 벌어지고 만다.
말라기 서에 그 죄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가나한 자들을 속여 먹는 것..
자기가족도 속여먹은 것 - 이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장벽이 생기면 우린 기도가 식어진다.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내 속에 있는 자그마한 죄라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기도가 냉랭해지지 않는다.
때론 우리 눈에 현저한 차도나 회복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은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기도가 냉랭해지지 않는다.
* 삶의 속도 늦추기
너무 바빠서 기도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면 영적 건강을 잃는다.
그건 마치 너무 바빠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육체의 건강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 진정한 그리스도인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 심지어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서조차 초연하다.
마치 남들과는 다른 북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같다.
그들의 영혼은 더 부드럽고, 용기는 더 크며, 지도력은 더 강해지고, 관심사는 더 폭넓다.
긍휼의 마음은 더 진실하고 확신은 더 구체적이다.
그들에겐 깜짝 놀랄 요소들로 가득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그들이 참으로 신뢰할만한 사람들인 것을 알게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님과 긴밀한 관계르 ㄹ맺고있기 때문이다.
분주함이야 말로 영적인 진정함의 적수이며, 이것은 성경이 세상적인 것(하나님과의 동행은 무시한채 이 사회의 현안과 목표와 활동에 휩쓸리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과 밀착되어 있다.
거두절미하고, 기독교의 핵심요소는 바로 시간이다.
쓰다남은 시간이 아니라, 내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질적인 시간, 명상과 묵상과 반추를 위한 시간..
서두르지 않고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바로 기독교의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 일기쓰기를 하라. 매일 쓰라.
삶을 점검하지 않고, 반추해보지 않고 살아가면 결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가 없다.
일기쓰기는 그런 점에서 크게 유익이 있다.
또한 기도를 글로 쓰는 것도 유익하다.
바쁘게 뛰어다니며 그 와중에 기도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다.
그리고,
조용한 가운데 듣기를 연습하라.
왕상 19:12처럼, 하나님의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 , 세미한 음성을 듣는 훈련을 하라.
기도는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능력은 침묵의 시간을 통해서 온다.
서두르지 않고 고요하게 하나님의 영과 교통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크게 느끼게 된다.
* 듣는 기도
그렇다.
우린 내 할 말만 다하고 일방적으로 기도를 끊지 말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나도 말 좀 하자 !' 기도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하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성령의 직접적인 인도를 통해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부활후 40 일만에 짐을 꾸려 하늘나라로 올라가신후 이제껏 아무 소식이 없는 분이 결코 아니시다. 매일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직간접적으로 말씀하셨던 사건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따라 매일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다.
* 잘못된 접근 방법 두 가지
첫번째 : 두뇌제거 수술받은 사람들처럼,
아침엔 어떤 양말을 신을 것인지, 점심엔 어떤 식당에서 먹을 것인지까지 성령님이 전부 결정해주시기를 기대하는 사람들.
이들은 하늘에만 신경을 쓰지 자신에게 주신 모든 것들은 사용할 이유를 모르고 있다.
기도도, 설교도 그렇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두번째: 극단적인 이성주의자들은 성령의 인도도 논리적이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측량가능하고, 설명가능하며 손에 잡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러지 않으면 설령 인도가 있다해도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고난 후에도 하나님은 계속 우리를 끌어당겨주심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때 순종하면 풍성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된다.
* 성령님과 그리스도인의 성장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당신의 성장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느냐에 달려있다.
요16;13에 보면, 진리의 영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빌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렇게 설명한다.
처음에 성령님은 그에게 교리를 가르쳐주셨다.
그다음엔 성품에 촛점을 두게 하셨고, 그 후엔 기도에 관해 연구하게 하셨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는 자신이 한 단계씩 성장해왔음을 간증하고 있다.
*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듣는 법
고요함을 훈련하라.
예수님께서는 새벽 한적한 시간에 고요히 하나님을 만나셨다.
베드로는 점심시간에 지붕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성경은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들려주셔야 할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 고요한 침묵 속에서 오는 능력
고요한 가운데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그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모아진다.
능력은 고요함 속에서 온다.
능력은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통해서 온다.
당신 인생의 전 궤도를 바꾸는 결정들은 고요한 지성소, 하나님 앞에서 보내는 고요한 시간에서 나온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하나님이 아무 말씀도 안하실 때가 있다.
그때는 특별히 하실 말씀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 듣고 순종하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신비의 연속이다.
고요한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그곳이 곧 지성소가 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즉각적으로 순종하라.
왜요? 왜 굳이 접니까 라고 물을 필요가 없다. 그냥 순종만 하라.
인도하심은 상당히 사적, 개인적이다.
우리는 수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놓친다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하나님이 주시기로 하셨던 것을 모두 잃게되는 안타까움에 빠지는 것이다.
* 인도하심의 구분하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1)하나님에게서 오는 인도하심은 모두 성경과 일관성이 있다.
성경에 위배된다면, 그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고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사탄도 인도함이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2)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대체로 하나님이 만드신 그 사람의 됨됨이와 일관성이 있다.
전혀 은사가 없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 그 은사가 있는 쪽으로 쓰실 생각을 갖고 지으셨다.
그래서 전혀 은사가 없는 곳으로의 인도는 일단 의심을 하라.
3)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종됨의 차원이다.
돈과 명예와 뽐낼만한 것들과 시시한 물질들을 약속한다면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는 종됨의 차원임을 잊지 말라.
종됨과 역경보다는 번영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파괴시켜왔다.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는 우리를 겸손히 섬기는 곳으로 인도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왕관이 아니라 가시 면류관으로 인도하셨음을 상기하라.
** 주의해야 할 인도하심
어떤 인도하심이 당신의 인생전체를 바꾸어 놓을 수있는 중대한 사안을 단시간 내에 결정하라고 요구하면 의문을 제기하라.
어떤 인도하심이 당신으로 하여금 꽤 큰 빚을 지게 하든지,다른 사람을 곤란하게 하거나 타협해야 하는 입장, 혹은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면 의문을 제기하라.
어떤 인도하심이 당신의 가족관계나 여타 중요한 친구관계를 뒤흔든다면 의문을 제기하라.
당신이 그 인도하심을 성숙한 그리스도인 친구나 상담자에게 이야기했을 때 그들이 불안해한다면 의문을 제기하라.
이것들을 무조건 거부하라는 말이 아니다.
심사숙고해야 한다.
하나님으로 부터 온 인도는 환상적이리만큼 뿌듯한 기독교적 모험으로의 문을 열어주지만,
거짓 인도는 어마어마한 혼동과 고생, 고통과 충격적인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잊지 말라.
* 하나님의 임재 연습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삶속에서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십자가에 달려죽기만 하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지금 나와 함께 점심식사도 하시고, 얘기도 나누고 계신 분이시다.
그것이 임재다. 하나님의 임재를 그렇게 느끼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다.
요한복음 15:15에서는 그런 예수님을 친구라고 표현했다.
내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내 친구되는 예수님의 임재를 매순간 확인하고 다지는 연습을 해가면 많은 유이이 있다.
자기도 모르게 긍휼이 많아진다, 긍휼의 사람이 되어져 간다.
그리스도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행동하게 된다.
포악했던 사울이 대사도 바울이 되었고,
우뢰의 아들 요한이 불같은 성격으로 마을전체를 뒤엎어버리려고 까지 했었으나, 그가 그리스도의 임재후에 사랑의 사도로 불리게 까지 되었다.
율법적이고 즉흥적이었던 베드로가 또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어떻게 변해갔는지 우린 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우리의 인생은 모험의 연속이며,
이 모든 것은 기도로 시작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하자.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살전 5:16-18)
바로 지금,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풍성한 삶으로 초대하고 계시고 있다.
기도는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도전이요, 독립적인 삶에 대한 고발이다.
자기나름의 길을 가고있는 바쁜 사람들에게 기도는 매우 황당한 방해꾼이 아닐 수 없다.
기도는 인간의 교만한 본성과는 아주 이질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도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가장 친밀한 연합은 오로지 기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를 실천하기 보다는 기도에 대해서 많이 알고있는 수준은 아니었던가.
빌은 말한다.
자기는 기도에 관한 중요한 책을 20권 정도 읽었었지만 정작 기도를 많이 하지는 않았었다고..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이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자신의 평강을 주신다.
아무리 자급자족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하는 사람에게로 흘러간다는 사실때문에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능력은 상황과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심리적, 신체적, 결혼생활, 경제적.. 모든 문제와 필요를 해결하고 채워주실 수 있다.
우리가 일할 때는 우리가 일하는 거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임을 잊지말라.
* 두 손을 높이 들고..
출17장 8-13절, 아말렉과 이스라엘과의 싸움, 팔을 든 모세, 전장에 나간 여호수아.
모세의 팔을 든 아론과 훌.. 기도의 후방지원.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서 흘러나온다.
그 능력은 지혜라는 형태로, 용기라는 형태로 또는 자신감이나 인내 그리고 지구력, 사람에 대한 태도의 변화, 상황의 변화 또는 심지어 명백한 기적의 형태로 올 수도 있다.
어떤 형태건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하는 이들의 삶속에 충만히 부어진다.
* 항상 흐르는 하나님의 능력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킨다.
그결과 짓눌리는 느낌, 압도되는 느낌, 낙심천만, 조이는 느낌, 패배감과 같은 감정들을 자주 경험한다.
기도는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창고를 여는 열쇠다.
*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가련한 과부의 얘기.
하나님은 악한 재판관과 같지 않다.
자신의 자녀들에게 복내려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본성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 좋아하시는 좋은 아버지시다.
하나님의 귀에는 당신의 목소리보다 더 달콤한 목소리가 없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기도를 하지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효과도 없는 기도를 계속 하느니 차라리 어려운 상황을 견디며 살겠다고 생각하진 않는가.
그것은 하나님에게 그런 능력이 있음을 의심하기 때문에 생기는 생각들이다.
우린 흔히 머리로는 하나님이 전능하시다고 믿어오지만,
우리 마음에 새기지는 않고있지는 않는가.
성경을 보라.
하나님은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 물을 냈을 때 수맥이 있을만한 땅을 쳐서 물을 내신게 아니다.
바위를 쳤다. 자연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상황을 정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베드로가 쇠사슬에 갇혔을때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풀어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제자들은 막상 베드로가 풀려나오자 믿지 못했다.
그들의 불완전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응답해주신 하나님이다.
* 마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
내성적인 모세를 지도자로 만드신 능력,
완악한 바로의 마음을 누그러뜨리신 능력,
낙심한 엘리야에게 힘을 주어 일어서게 하신 능력,
광분한 박해자 사울을 사도바울로 바꾸어주신 능력,
겁쟁이 베드로를 반석같은 단단한 사도로 만들어 주신 능력..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의 이런 옛사람은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
그게 하나님의 능력이다.
*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
우리의 믿음은 교리에 동의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그 교리가 진정 내 것이 되어야 한다.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하나님이 나의 역사 속에서 전지전능하심을 보여주심을 믿어야 한다.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은 오늘 내가 살고있는 동네, 나의 관심사와 문제들 속에서도 내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불변하심(immutable)이다.
교리가 우리 것이 되기 전에는 우리 심약한 기도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기도의 용사란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아무것이나 기도할 수 있다.
빌 4:6의 말씀처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을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아뢰기만 하면 된다.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우리의 삶에서, 모든 영역에서 믿지못할 정도의 기적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주실 마음도 있고 능력도 있는 분이시며,그분이 직접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초청하셨다.
* 당신의 부름을 기다리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에 관심이 많으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당신 자체에 관심이 많으시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께도 최우선적인 관심사가 된다.
오늘 당신의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보다 하나님께 더 중요한 일은 지구상에 다시 없다.
하나님은 당신이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
* 심령을 견고케하는 기도습관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 안에 들어오라고 우리를 초청하셨다.
우리는 영혼이 건강하게 되기위해 영적인 좋은 습관을 들여야한다.
기도를 습관화하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임재에 조율되고 축복에 열려있게 된다.
첫번째 경고:
많은 신자들에게 영적인 훈련이 그만 온갖 요구사항으로 가득한 구속으로 변질되어서 삶과 신앙 속에 있는 활력, 즉흥성, 모험성을 다 쥐어짜버리게 하여서는 안된다.
종교가 무거운 짐이 되어서는 결코 안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살고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자기 의로 굳어진 나머지 남들은 그들이 실패하기를 간절히 바라게될 지경이 된다.
갈 5:1의 말씀처럼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매지 말라.
두번째 경고:
그저 영적인 흐름을 탄다고 체계나 습관 같은 것을 도외시 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자기기만이다.
체계없이는 영적인 삶에 대한 의도성 없이는 영적인 성장도 없다.
가만히 앉아서는 체지방을 줄일 수도 근육질을 만들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린 목표달성을 위해 타협할 수 없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
절대 타협불가인 것을 정해야 한다.
좋은 기도습관을 유지하는건 결코 타협할 수 없다.
물론 훈련 그 자체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엮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훈련이 없이는 보람있고 풍성한 기도생활을 계발해낼 수가 없다.
* 예수님의 기도원칙
예수님은 기도 전문가이시다.
그분의 기도원칙은 아래 네 가지이다.
규칙적으로 기도하라 - 너희가 기도할 때에라고 하셨지, 너희가 기도하게 된다면 이라고 안하셨다.
은밀하게 기도하라 - 남들에게 경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진실하게 기도하라 - 공식기도 같은 것보다는 속 마음을 원하시는 하나님.
구체적으로 기도할 - 도매급으로 하지 말라.
* 예수님처럼 기도하기 각론
* 너희는 기도할 때에 (마 6:5)-
당연히 규칙적으로 기도시간을 가지리라고 전제하고 하신 말씀이다.
규칙적인 기도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규칙성이 없이는 기도가 절대로 습과이 되지않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기도시간만큼 일정한 기도장소도 중요하다.
기도는 관중에게 보이기는 경기다 아니다.
옷장 속이든 빈 사무실이든.. 어디든 하나님과만 함께 있을 수 있는 은밀한 장소를 찾으라.
목소리, 음악소리, 전화벨소리. 등으로 산만해지지 않는 곳ㅇ, 은밀한 곳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느껴라.
그곳이 바로 당신의 겟세마네가 된다.
* 특별한 분위기를 조성하라.
기도가 잘 될 수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꾸며보라.
빌은, 성경책 한 권을 펴놓고,'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적핀 문구판.
고난받으신 구주를 생각나게 하는 가시 면류관, 그리고 목자의 지팡이 한 자루를 갖다 놓았다.
하나님께 요청하는 기도를 할 때는 종종 그 지팡이를 높이 쳐들곤 한다.
하루중 가장 좋은 시간에, 그곳에 가서 가장 정신이 맑을 때, 매일 규칙적으로 기도하라.
* 기도의 의미를 바로 알고 하자
진실하게 해야한다. 상투적인 표현을 조심하라. 의미없는 말을 반복하는 습관에 빠지지 말라.
거룩한 용어를 남발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그러나 실제론 틀린 말이 많다.
(하나님, 면접보러 가는데 함께 해주세요.. 실제로 함께 하고계시는 하나님임을 모르는 기도)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이미 함께 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해달라고, 그리고 그 사실때문에 마음이 든든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질나쁜 음식을 앞에 두고 이것으로 힘과 영양을 얻게 해달라는 식의 기도는 하지 말라.
그것은 마치 지리시험을 엉망으로 친 후에, 마치 한국의 수도가 부산이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다.
*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도
하나님은 우리가 감동적인 표현들을 남발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저 친구나 아버지에게 말하듯 그렇게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바라신다.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인격적으로 절실하게 말이다.
하나님은 정형화된 표현들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주님, 요즘 제 마음은 이렇습니다. 이런게 좀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좀 우울합니다. 이런 것때문에 제가 기쁩니다..' 이렇게 진실하게 기도하라.
* 구체적인 기도를 하라.
하나님은 어떤 일도 하실 수있는 능력있는 분이시며,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시다.
산타에게 드리는 편지가 아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찬양하고 경배하라.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최우선에 두어라.
즉, 당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라.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두고 하라.
필요한 양식을 위한 기도를 하라.
영적인, 육적인 양식을 위해 모두 기도할 수 있다.
당신 자신이 방해물이 되지않게 하라.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주지 못해서,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실 수 없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하라.
악에서 보호해주시고, 지켜달라고 기도하며,
마지막으로 권세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마감기도를 하라.
주기도문은 결코 마법같은 주문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암송하고 읊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기도를 그렇게 하라는 모본으로 주신 것임을 잊지 말자.
*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반추해보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의 생활을 반추해보는 삶이다.
지난 삶을 반추하여 평가해보는 삶이다.
그러지 않으면 똑같은 죄를 계속 지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어쨌든 간에 기도하라.
예수님의 방법대로 기도하는 훈련을 하라.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서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잊지말라.
기도에 대해서 아무리 많이 알아도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 기도하는 방법에 관하여
빌은 말한다.
ACTS로 기도하라고..
Adoration (찬미)-
기도를 찬미 혹은 경배로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찬미는 기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찬미는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 상기시켜주며, 기도하는 사람을 깨끗하게 한다.
하나님은 찬미받으실만한 충분한 분이시다.
급한 마음에 기도가 그만 소원목록표로 전락해버리지 않도록 하라.
죄책감에 시달릴 때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찬미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를 찬미하고,
내게 뭔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미하라.
환경이 허락한다면 찬양의 노래를 해도 좋다.
찬미없이는 기도생활을 잘 해 나갈 수가 없다.( 이경욱 선교사, 키타..)
Confession(고백)- 죄의 고백
모든 죄를 한 덩어리로 뭉쳐서 하지 말라.
이런 것은 엄청난 회피다.
죄를 하나씩 꺼내어 죄명을 달면서 기도하라, 그러면 완전히 다른 기도가 된다.
Thanksgiving(감사)-
고맙게 느끼는 것과 감사를 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누가복음 17:11-19 , 열명의 문둥병 환자들 예..
예수님은 감사하는 한 명의 문둥환자에게 감동하셨다.
기도에 응답하심에 감사, 영적인 축복에 감사, 인간관계에서의 축복 그리고 물질적인 축복에 감사..
Supplication(간구)- 도우심을 구함
너무 큰일이어서 하나님이 다루실 수 없거나, 너무 작은 일이어서 하나님이 신경쓰실 수없는 일은 없다.
야고보는 말한다(약1:5),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받을 것이라'라고..
간구의 영역들은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역, 사람, 가족 그리고 나 개인적인 부분..
나이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 기도할 때는 성품의 변화까지도 기도한다.
빌은 말한다.
그는 적는 기도를 좋아한다고.. 경험상 그게 아주 효과적이더라고..
* 산을 옮기는 기도
마 21:21-22에 보면 산을 옮기는 기도가 나온다.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하는 기도는 산을 옮긴다고 하신다.
여기서 산이란 비유적인 표현이다.
우리의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면 무엇이든지 산이 될 수 있다.
산을 옮기는 기도의 첫번째 원칙:
믿음의 기도는 시선을 산에 맞추지 않는 기도이다.
시선을 하나님께 맞추는 기도다.
믿음이란 산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볼 때 오는 것임을 잊지 말라.
믿음이란 형편없는 나 자신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산을 옮기는 기도의 두번째 원칙: 앞으로 전진하기 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다는 것이다.
여호수아 3장,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널 때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발을 디디는 순간 강이 갈라졌다.
첫발을 내디디기가 중요하다.
그들이 발을 강물에 담글 때까지는 아무 일도 보여주지 않으셨다.
헌신과 순종의 첫발을 내딛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들이 발을 담궜을 때 비로소 강물이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꿈쩍도 안하는 나의 산은 무엇인가.
엄청난 산이 있을 때, 산에 대해서 하나님께 설명해드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그 산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오히려 산을 옮기시는 그분게로 관심을 돌리라. 그분의 영광과 능력과 신실하심에 초점을 맞추라.
그때 산이 옆으로 비켜서는 것을 보게될 것이다.
**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
요청이 잘못된 것이라면, 하나님은 '안돼'라고 하신다.-
동기가 중요하다. 저 사람을 변화하게 해달라는게 상대방을 향한 진정한 관심인가,
아니면 나를 위함인가.
간절히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인가, 나의 영광을 위함인가.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겠는가,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겠는가..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겠는가..를 생각하라.
아직 적기가 아니라면, 하나님은 '천천히'라고 하신다.-
언제가 적기인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이사야 55:8-9 ' 내 길, 내 생각은 너희와 다르고 너희보다 높다'
당신이 틀렸다면, 하나님은 '성장하라'고 하신다-
때로는 우리 성품을 만들어 가시느라 응답을 지체.
많은 영적인 소득들은 고통, 상처, 갈등, 혼동 그리고 실망을 통해서 얻어진다.
하지만,
요청도 올바르고 시기도 적절하며 당신도 올바르다면, 하나님은 '좋아'하신다.
내가 가장 큰 문제다.
응답되지 않는 마지막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세우고 있으면 응답받지 못한다.
우린 우리속에 있는 기도의 방해물, 기도훼방꾼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기도 훼방꾼
첫번째: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기도만 빼고 다하는 경우가 있다.
야고보 4:2,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
문제가 생기면 상담가를 찾아간다.
그리고 관련된 책을 읽는다.
자기훈련을 한다.
친구에게 털어놓는다. 자기개선 방식을 찾아본다.. 기도에 관한 책을 읽어본다..
그러다간 안되면.. 기도한다는 식이진 않은가.
두번째: 죄로 오염된 기도를 하기 때문이다.
고백하지 않은 죄가 하나님과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경우이다.
이사야 59:2,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의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때문에 주님께서 너희에게서 얼굴을 돌려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라고 하셨다.
오토바이는 대체로 함부로 다루어도 되지만, 연료만큼은 아주 순도가 높아야 한다.
불순물이 있으면 안된다, 아주 작은 먼지 하나라도 들어가면 힘을 낼 수가 없다.
아주 작은 죄라도 이와 같은 효과를 가진다.
지금, 당신이 삶속에서 용인하고있는 죄는 무엇인가.
그 죄를 고백하지 않는한 기도하느라고 헛수고하지 말아라.
먼저 주님의 용서하심부터 받으라.
그러고 나면 당신이 주님께 마음을 쏟아놓을 때 당신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세번째 : 깨어진 관계
해결되지 않은 갈등관계가 훼방꾼이 된다.
마5:23-24, 먼저 가서 화해하고 와서 제물을 드려라는 말씀을 기억하라.
남편, 아내, 자식,직장.. 사람과의 관계를 해결하라.
하지만,
당신이 정말 성심성의를 다 했고 솔직했다면, 하나님은 그 깨어진 관계가 당신의 기도에 장애물이 되지 않게하실 것이다.
네번째 : 이기심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약4:3)
현수막에 걸어놔도 부끄럽지 않은 것들을 구하라.
다섯번째: 남을 돌아보지 않는 태도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 아무도(하나님도) 대답하지 않는다.(잠21:13)
당신이 고통받는 자에게 귀를 열고있다면, 하나님도 당신에게 계속 귀를 열고계실 것이다.
여섯번째 : 부적절한 믿음
의심하는 마음이다.
의심하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서 출렁이는 바다물결과 같다. 그런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라.(약1:5-7)
이런 기도훼방꾼들만 제대로 처리하고 나면 하나님은 오케이 사인을 해주신다.
*** 기도가 냉랭해질 때
잘 하던 기도, 열심있던 기도가 갑자기 냉랭해질 때는 .. 우리가 너무 편안하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바람이 사납게 불어대는 날엔 모두 기도로 울부짖게 마련이다.
그러다가 상황이 좋아지면 언제 그랬느냐는듯 기도도 상당히 식기 시작한다.
구약에도 그런 슬픈 주제가 있다.
하나님은 자기자녀들을 사랑하여 복을 주시는데, 그 자녀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상황이 생기면 또 도움을 애걸하고, 도움을 주면 또 잊어버리고..
어쩔 수없는 인간의 한계라 할까..
냉랭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를 일상의 일정 속에 꼭 집어넣어야 한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매일의 삶에서 기도를 위한 시간과 장소를 꼭 정해놓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시간과 장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고싶지 않은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게 문제다.
어떤 사소한 문제가 원인이 되어서 점점 기도를 멀리하다 보면 그게 일상화되어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과의 간격은 더 크게 벌어지고 만다.
말라기 서에 그 죄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가나한 자들을 속여 먹는 것..
자기가족도 속여먹은 것 - 이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장벽이 생기면 우린 기도가 식어진다.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내 속에 있는 자그마한 죄라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기도가 냉랭해지지 않는다.
때론 우리 눈에 현저한 차도나 회복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은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기도가 냉랭해지지 않는다.
* 삶의 속도 늦추기
너무 바빠서 기도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면 영적 건강을 잃는다.
그건 마치 너무 바빠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육체의 건강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 진정한 그리스도인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 심지어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서조차 초연하다.
마치 남들과는 다른 북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같다.
그들의 영혼은 더 부드럽고, 용기는 더 크며, 지도력은 더 강해지고, 관심사는 더 폭넓다.
긍휼의 마음은 더 진실하고 확신은 더 구체적이다.
그들에겐 깜짝 놀랄 요소들로 가득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그들이 참으로 신뢰할만한 사람들인 것을 알게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님과 긴밀한 관계르 ㄹ맺고있기 때문이다.
분주함이야 말로 영적인 진정함의 적수이며, 이것은 성경이 세상적인 것(하나님과의 동행은 무시한채 이 사회의 현안과 목표와 활동에 휩쓸리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과 밀착되어 있다.
거두절미하고, 기독교의 핵심요소는 바로 시간이다.
쓰다남은 시간이 아니라, 내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질적인 시간, 명상과 묵상과 반추를 위한 시간..
서두르지 않고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바로 기독교의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 일기쓰기를 하라. 매일 쓰라.
삶을 점검하지 않고, 반추해보지 않고 살아가면 결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가 없다.
일기쓰기는 그런 점에서 크게 유익이 있다.
또한 기도를 글로 쓰는 것도 유익하다.
바쁘게 뛰어다니며 그 와중에 기도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다.
그리고,
조용한 가운데 듣기를 연습하라.
왕상 19:12처럼, 하나님의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 , 세미한 음성을 듣는 훈련을 하라.
기도는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능력은 침묵의 시간을 통해서 온다.
서두르지 않고 고요하게 하나님의 영과 교통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크게 느끼게 된다.
* 듣는 기도
그렇다.
우린 내 할 말만 다하고 일방적으로 기도를 끊지 말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나도 말 좀 하자 !' 기도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하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성령의 직접적인 인도를 통해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부활후 40 일만에 짐을 꾸려 하늘나라로 올라가신후 이제껏 아무 소식이 없는 분이 결코 아니시다. 매일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직간접적으로 말씀하셨던 사건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따라 매일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다.
* 잘못된 접근 방법 두 가지
첫번째 : 두뇌제거 수술받은 사람들처럼,
아침엔 어떤 양말을 신을 것인지, 점심엔 어떤 식당에서 먹을 것인지까지 성령님이 전부 결정해주시기를 기대하는 사람들.
이들은 하늘에만 신경을 쓰지 자신에게 주신 모든 것들은 사용할 이유를 모르고 있다.
기도도, 설교도 그렇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두번째: 극단적인 이성주의자들은 성령의 인도도 논리적이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측량가능하고, 설명가능하며 손에 잡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러지 않으면 설령 인도가 있다해도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고난 후에도 하나님은 계속 우리를 끌어당겨주심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때 순종하면 풍성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된다.
* 성령님과 그리스도인의 성장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당신의 성장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느냐에 달려있다.
요16;13에 보면, 진리의 영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빌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렇게 설명한다.
처음에 성령님은 그에게 교리를 가르쳐주셨다.
그다음엔 성품에 촛점을 두게 하셨고, 그 후엔 기도에 관해 연구하게 하셨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는 자신이 한 단계씩 성장해왔음을 간증하고 있다.
*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듣는 법
고요함을 훈련하라.
예수님께서는 새벽 한적한 시간에 고요히 하나님을 만나셨다.
베드로는 점심시간에 지붕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성경은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들려주셔야 할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 고요한 침묵 속에서 오는 능력
고요한 가운데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그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모아진다.
능력은 고요함 속에서 온다.
능력은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통해서 온다.
당신 인생의 전 궤도를 바꾸는 결정들은 고요한 지성소, 하나님 앞에서 보내는 고요한 시간에서 나온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하나님이 아무 말씀도 안하실 때가 있다.
그때는 특별히 하실 말씀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 듣고 순종하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신비의 연속이다.
고요한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그곳이 곧 지성소가 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즉각적으로 순종하라.
왜요? 왜 굳이 접니까 라고 물을 필요가 없다. 그냥 순종만 하라.
인도하심은 상당히 사적, 개인적이다.
우리는 수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놓친다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하나님이 주시기로 하셨던 것을 모두 잃게되는 안타까움에 빠지는 것이다.
* 인도하심의 구분하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1)하나님에게서 오는 인도하심은 모두 성경과 일관성이 있다.
성경에 위배된다면, 그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고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사탄도 인도함이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2)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대체로 하나님이 만드신 그 사람의 됨됨이와 일관성이 있다.
전혀 은사가 없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 그 은사가 있는 쪽으로 쓰실 생각을 갖고 지으셨다.
그래서 전혀 은사가 없는 곳으로의 인도는 일단 의심을 하라.
3)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종됨의 차원이다.
돈과 명예와 뽐낼만한 것들과 시시한 물질들을 약속한다면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는 종됨의 차원임을 잊지 말라.
종됨과 역경보다는 번영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파괴시켜왔다.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는 우리를 겸손히 섬기는 곳으로 인도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왕관이 아니라 가시 면류관으로 인도하셨음을 상기하라.
** 주의해야 할 인도하심
어떤 인도하심이 당신의 인생전체를 바꾸어 놓을 수있는 중대한 사안을 단시간 내에 결정하라고 요구하면 의문을 제기하라.
어떤 인도하심이 당신으로 하여금 꽤 큰 빚을 지게 하든지,다른 사람을 곤란하게 하거나 타협해야 하는 입장, 혹은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면 의문을 제기하라.
어떤 인도하심이 당신의 가족관계나 여타 중요한 친구관계를 뒤흔든다면 의문을 제기하라.
당신이 그 인도하심을 성숙한 그리스도인 친구나 상담자에게 이야기했을 때 그들이 불안해한다면 의문을 제기하라.
이것들을 무조건 거부하라는 말이 아니다.
심사숙고해야 한다.
하나님으로 부터 온 인도는 환상적이리만큼 뿌듯한 기독교적 모험으로의 문을 열어주지만,
거짓 인도는 어마어마한 혼동과 고생, 고통과 충격적인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잊지 말라.
* 하나님의 임재 연습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삶속에서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십자가에 달려죽기만 하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지금 나와 함께 점심식사도 하시고, 얘기도 나누고 계신 분이시다.
그것이 임재다. 하나님의 임재를 그렇게 느끼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다.
요한복음 15:15에서는 그런 예수님을 친구라고 표현했다.
내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내 친구되는 예수님의 임재를 매순간 확인하고 다지는 연습을 해가면 많은 유이이 있다.
자기도 모르게 긍휼이 많아진다, 긍휼의 사람이 되어져 간다.
그리스도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행동하게 된다.
포악했던 사울이 대사도 바울이 되었고,
우뢰의 아들 요한이 불같은 성격으로 마을전체를 뒤엎어버리려고 까지 했었으나, 그가 그리스도의 임재후에 사랑의 사도로 불리게 까지 되었다.
율법적이고 즉흥적이었던 베드로가 또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어떻게 변해갔는지 우린 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우리의 인생은 모험의 연속이며,
이 모든 것은 기도로 시작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하자.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살전 5:16-18)
바로 지금,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풍성한 삶으로 초대하고 계시고 있다.
'기독교의 진리를 소개합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 그리스도 - 복음의 시작 (0) | 2008.08.16 |
---|---|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하나님 (0) | 2008.08.08 |
[스크랩] 성경 강해와 설교자료 (0) | 2008.05.23 |
예수님처럼 효도하라 (0) | 2008.05.09 |
자녀 양육법 (0) | 2008.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