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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진리를 소개합니다

예수님처럼 효도하라

by 서귀포강변교회 2008. 5. 9.

예수님처럼 효도하라

요한복음 19:25-27

 

 

□ 기독교에 대한 오해

 

많은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독교는 부모도 모르고 조상도 모르는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기독교는 부모도 모르고 조상도 모르는 그런 종교일까요? 예수님은 부모도 모르고 형제도 모르고 자신만을 위해 인생을 살았던 불효자였을까요?

 

아닙니다. 기독교만큼 부모 공경을 강조하고 가르치는 종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십계명을 보십시오. 십계명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제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관한 계명이고 제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사람에 관한 계명입니다. 사람에 관한 계명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 입니다. 인륜의 첫 번째 계명이 바로 부모공경입니다. 그리고 십계명 중 부모 공경에 대한 계명에만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는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출21:15절에 보면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는 사형에 처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12살 어린 시절에도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눅2:51절)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마지막 죽음의 현장에서도 어머니를 기억하시며 효도를 다 하셨습니다.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26절)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고통과 타는 듯한 목마름의 고통 속에서도 자기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습니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26절)

여기에 사용된 “여자여 보소서”라는 말은 무례한 호칭이 아닙니다. 여자여!라는 말은 헬라어로 “귀나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어떤 여인을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부를 때 사용되는 호칭입니다. 고대 문서를 보면 왕후에게 사용했던 존칭어가 바로 이 ''''''''귀나이''''''''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리고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할 때 아들은 예수님 자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곁에 서 있던 제자 요한을 말합니다. 즉, 이 말은“나는 지금 죽지만 이제부터는 요한이 나를 대신하여 아들 노릇을 하게 될 것입니다.”라는 뜻입니다.

 

□ 왜 예수님은 여자여 라는 호칭을 사용하셨는가?

그러면 예수님은 어머니!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시고 여자여!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을까요?
그것은 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시는 어머니의 아픔을 반감시켜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 심을 다시 한번 확인 시켜 줌으로써 어머니의 생각을 변화시켜 고통을 덜어드리고자 하심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메테르’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귀나이’ ‘여자여’라고 부르신 것은 자신이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하여 어머니의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반감시켜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 효도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죽음 가운데서도 “나의 죽음을 바라보고 계시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효도는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 효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효도는 부모의 마음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무리 부모에게 잘 해 드려도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그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자녀는 내 부모가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를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의 방법으로 열심히 효도를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효도는 부모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부모의 마음을 알고 계십니까? 지금 부모님이 무엇으로 인하여 주름살이 깊어지고 밤잠을 설치고 계시는지 아십니까? 무엇으로 인하여 마음이 울적하신지 아십니까? 부모는 자식이 마음을 몰라 줄 때 힘이 듭니다.

 

 

□ “보라 네 어머니라”

27절을 보면 드디어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합니다. 예수님은 제자인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시면서 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모실 것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요한은 그때부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친어머니처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어머니를 다른 제자들이나 동생들에게 부탁하지 않고 요한에게 부탁하셨을까요? 그것은 다른 제자들은 일찍 순교를 당할 것이고, 요한만이 가장 오래 살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참된 신앙을 가진 자 만이 참 효도를 할 수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육신의 동생들이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산 믿음의 자리에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참된 효는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믿는 신자가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면서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요한아! 비록 내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땅에 온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네 곁에 서 있는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오늘 이 자리에 있었겠느냐? 지금 네 곁에 계신 어머니 마리아는 율법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동정녀 처녀의 몸으로 나를 잉태하셨고 그 해산의 고통을 통해 나를 낳아 주신 분이시다. 만일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희생과 수고가 없었다면 어찌 내가 그리스도로서 구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겠느냐? 그러므로 나의 육신의 어머니를 잘 모셔다오. 이 땅에서 어머니의 인생 여정을 네가 책임져 다오…….” 그런 의미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효도는 부모님을 인정하고 부모님에 대하여 긍지를 갖는 것입니다.

 

□ 사역과 사명 때문에 부모 공경의 도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는 그 순간에도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홀로되신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합니까? 사역과 사명 때문에 부모 공경의 도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교훈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육신의 아들로서 부모공경의 도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구세주로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시면서도 한 어머니의 아들로서 어머니를 책임지는 일을 소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사역과 사명 때문에 부모공경의 도리를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바쁘다는 이유 때문에 부모공경의 도리를 다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효도는 십자가의 효도입니다. 고통 속에서 하는 효도를 말합니다. 자신의 한 몸 유지하기도 어려운 힘든 상황 속에서 하는 효도가 바로 십자가의 효도입니다. 그러므로 상황이 나아지고 여건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의 어려운 상황과 조건 속에서 십자가의 효도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