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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베이징올림픽 출전태극전사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by 서귀포강변교회 2008. 8. 11.
 

베이징올림픽 무대에 나서는 태극전사들 중 누가 기도 세리머니를 하게 될까?

2008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의 기독 선수들이 저마다 기도하면서 결전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8일 개막되는 대회를 앞두고 마지막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이들은 복음의 불모지 중국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 위해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쏟아낼 각오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기독 선수는 모두 60여명. 평소 태릉선수촌 교회에 출석해온 40여명에 단체경기인 구기종목 선수가 20여명에 이른다. 이들 중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5명에서 10명이 꼽힌다. 색깔에 관계없이 메달권에 들 선수까지 포함하면 15∼20명이 될 전망이다.

역시 가장 기대를 모으는 선수는 여자 역도의 장미란과 남자 체조의 양태영. 4년 전 아테네올림픽에서 아깝게 금메달을 놓치고도 두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두 선수는 객관적인 전력상 단연 우승 후보다. 모태 신앙인인 두 선수는 신앙심에서도 금메달감이다. 평소 열심히 기도해온 장미란은 대회에 앞서 주위의 많은 지인들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장미란의 부모는 고향인 강원도 원주에서 기도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최근 집과 가까운 세계로교회로 옮겼다. 가족과 함께 서울 대흥동 염리교회를 20년 넘게 섬겨온 양태영은 4년 전 아테네올림픽에서 불공정한 채점으로 금메달을 놓친 아픔을 하나님의 담금질로 여기고 밤낮으로 무릎을 꿇어왔다.

남자 체조의 또 다른 기대주 김대은도 금메달 후보다. 지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그는 고향인 전북 정읍의 한빛교회에서 기도에 매달리고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열심히 훈련과 기도에 매달려왔다.

2회 연속 올림픽 2관왕을 노리는 여자 양궁의 박성현도 단연 주목 대상이다. 지난 올림픽에서 갓 예수를 영접하고 단체전과 개인전 등 2관왕에 오른 뒤 더욱 믿음이 좋아진 그는 누구보다 선수촌교회에 열심히 출석해왔다. 이와 함께 여자 양궁 대표로 새로 뽑힌 주현정도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뒤 선수촌교회에 등록하고 열심히 기도해왔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두 명의 월드스타가 하나님께 영광의 기도를 올려드릴지 여부가 관심을 끈다. 남자 수영의 박태환과 남자 탁구의 유승민이다. 한국 수영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되는 박태환은 최근까지 선수촌교회에 출석했다. 또 지난 올림픽에 이어 탁구 남자 개인전서 잇따라 중국의 아성을 무너뜨리고자 벼르는 유승민도 우회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해왔다.

여자 사격의 이보나도 금메달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것이 유력시된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는 이보나는 전남 신안군 당사교회에서 온 종일 무릎 꿇고 있는 어머니의 중보기도에 꼭 보답하겠다는 각오를 밝혀왔다.

남자 유도의 몇몇 선수들도 매트에서 두 손을 모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대회 은메달리스트 장성호(소망교회)를 비롯해 왕기춘(서울 중계동반석교회) 최민호(선수촌교회) 김재범(명성교회) 등이다. 이들은 4년 전 이원희가 펼쳤던 멋진 기도 세리머니를 기필코 재연하겠다는 각오다.

이밖에 신실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여자 탁구의 김경아(인천원당교회), 레슬링의 조병관(분당비전교회) 등도 메달권의 전력을 갖추고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릴 것을 소원하고 있다.

 

또 남녀 핸드볼과 하키, 남자 축구와 야구, 여자 농구 등 단체경기에 출전하는 기독 선수들은 성적에 관계없이 경기 때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축구의 박주영과 김동진 선수 등은 골을 통해 중국 하늘에 하나님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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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기억나는 인물

 

에릭 리들


 

- 1924년 파리 올림픽 400미터 경주에서 우승 테이프를 끊는 에릭의 모습 -

         

- 중국에서 선교 활동 당시 에릭의 모습 -

 

에릭 리들 1902년 중국 천진에서 스코틀랜드 선교사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중국 선교사의 자제로서 먼 거리를 걷고 달리던 습관이 있어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육상 재능보이면서 스코틀랜드에서 교육을 받았다.

에딘버러 대학에 입학한 뒤 본격적인 육상선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그는 당시 수년간에 걸쳐 스코틀랜드는 물론이거니와 전 영국 단거리 육상대회를 모조리 휩쓸었으며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럭비팀에서 활약하기도 하였다.

 

에릭 리들은 영국대표로서 1924년 제 8회 파리 올림픽 경기의 금매달 후보였다.

그러나 100 m 경기 일정이 발표되었는데  첫 예선일자가 7월 6일 주일 오후 3시와 5시였다.

 

그는 그 일정표를 보자마자 "저는 주일에는 안뜁니다." 라고 단호한 결정을 알렸다.

그의 그런 결정은 그의 주일 성수를 위한 자기 희생적 결정이었으며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에릭 리들의 100 m 출전 포기를 들은 영국 전체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그를 가리켜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신앙을 소매 끝에 달고 다니는 신앙심 깊은척 하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 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에릭 리들은 100 m 예선 경기를 하던 7월 6일 주일에는 스콧츠 커크(Scats kirk) 장로교회에서 간증 설교를 하였다.  그 날 에릭 리들은 경기장에 나가 동료 선수들을 격려하는 일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주일을 교회에서, 성도들을 위해서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다. 

 

100m 경기에서는 영국의 헤롤드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기록은 에릭 리들보다 약간 뒤졌었다.

에릭 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헤롤드의 우승을 축하해 주었다.

하나님은 에릭 리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에릭 리들은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 200 m에서 동메달을 땄고, 400 m 에도 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400 m 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들러리였다. 예선에서만도 스위스의 '임바흐', 미국의 '피치' 같은선수들은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후보로 각광을 받았었다. 

 

드디어 결승의 날이 왔다.

에릭 리들은 신들린 사람처럼 첫 코너를 돌았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에릭이 저런 속도를 유지하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 고 불안함을 표현하였다.

 

에릭 리들은 임바흐, 피치 등 우승후보를 제치고 47초 6이라는 세계신기록까지 세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결승전에 출전할 때 담당 안마사가 쥐어준 쪽지가 응답되었던 것이다.

 

the old book it says, "He who honours me-I will honour" Best wishes always>

<구약 삼상2:4에 이런 글이 있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나도 존중하리라", 최선의 영광이 있기를 빌면서>

 

그는 처음 400 m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처음 200 m 는 제 힘으로 최선을 다했고, 나머지 200 m 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일은 자기를 위한 날이 아니고 주님을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삶으로 설교한 위대한 신앙인이었다.

 

올림픽 경기로 국가적 영웅이 되었지만, 에릭 리들은 하나님과의 헌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영광을 버리고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갔다. 그 이듬해 그는 영웅으로서의 모든 영광을 내던진 채 그는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어 24세의 젊은 나이로 중국 선교사로 떠났다.

 

그는 운동선수의 화려한 명성이 중국의 무지한 농부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에 비할 것이 못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리들은 처음 12년 간 톈진에서 교사로 봉사하며 아이들에게 스포츠를 통한 복음을 전했고, 1932년에는 목사로 안수를 받고 플로렌스 맥킨지라는 여인과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2차대전중인1941년 중국내부의 혼란이 극에 달하자 영국정부는 중국내 영국민들을 대피시키도록 하였고 에릭은 아내와 아이들을 캐나다의 처가로 보냈지만 그 자신은 산둥 반도의 소창이라는 곳의 남아 선교본부를 중심으로 곳곳을 다니며 농촌 지역에서 전도하며 또한 어려움에 처해있던 중국인 지역민들을 도왔다.

 

그러던 중 소창이 일본군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그는 수 년 간 1,800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일본군 치하 웨이시엔의 수용소에 갇혀 지내며 식량과 의료지원을 도왔다. 그는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유머를 잊지 않고 언제나 따뜻한 사랑으로 아이들을 감싸며 생활을 하였는데 그의 활동은 수용소 생존자의 증언에 의해 전후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1945년 종전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과로와 영양실조에 의한 뇌종양에 걸려 세상을 떠나 현재 중국 웅방시의 작은 묘지에 잠들어 있습니다.

 

뒤늦게 그의 부음을 들은 영국 국민들은 크게 애도했으며 다시 한 번 그들의 영웅을 기억하고 칭송하였다. 2005년에는 수용소 해방 60주년을 기념하여 그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었으며 그의 모교인 에덴버그대학에서도 그를 기리는 기념물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그의 일대기를 책으로 쓴 러셀 렘지의 말처럼 과연 그의 삶의 목적은 운동경기의 우승이 목표가 아니라,'썩지 않는 면류관을 얻는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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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보이' 박태환(19·단국대) 선수의 기도 제목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그는 한국 수영사상 첫 금메달에 이어 12일 자유형 200m에서 은메달까지 추가로 획득하면서 대한민국, 아니 아시아 수영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다.

박태환은 초신자다. 지난해 4월 원더걸스 그룹 리더 선예의 전도로 교회에 처음 나와 새신자반을 수료한, 이제 갓 걸음마를 걷기 시작한 하나님의 자녀다. 둘은 2006년 5월 MBC '만원의 행복'에 출연하면서 알게 됐고 그 후 화보 촬영을 함께하면서 우정을 쌓았고 교회에도 같이 다니게 됐다.

그가 출석하는 교회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광림교회. 태릉선수촌에 입소하기 전까지 그는 특별한 훈련이나 경기가 있는 날을 제외하곤 주일을 성수했다. 오전 2부 예배를 드리고 나면 10여명의 또래와 함께 성경공부 모임을 가졌다. 처음 4주간은 새신자 교육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