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북측에 위치한 삼청동 일대는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 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시아 어디를 가도 비슷비슷한 도시경관에 식상한 이들에게
북촌은 자연 발생적인 좁은 길들과 그 길들을 사이에 두고 기품 있게 서 있는
한옥들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있어
한국에서만 경험 할 수 있는 독특한 매력으로 작용한다.
거기에다 전통과 현대를 기묘하게 아우른 크고 작은
카페나 갤러리들은 우선 볼 것만으로도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한 북촌은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인 내게도 사랑스러운 곳이다.
500년 도읍지 조선의 풍경과 100여년 전 한국의 근대 문화
60-70년대 나의 어린 시절 풍경이 곳곳에 숨어 있어,
역사와 문화와 추억을 발견하는 기쁨과
깊은 자긍심을 가지게 한다.
(2009 겨울, 왼쪽 가회동 길과 오른쪽 삼청동)
두 팔 넓게 벌리면 한옥 벽면들이 양쪽 손끝에 닿을 것 같은 좁은 골목길.
낮은 담벽 위로 난 사각의 작은 창문들과 검정색 기와지붕.
반쯤 열려진 나무 대문 안으로 살짝 훔쳐 볼 수 있는
집 주인의 성품을 닮은 정원의 풍경들은
새장 같은 고층빌딩 한 켠에 둥지 튼
내겐 말로 표현키 어려운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서울, 북촌에서』는 마을을 이루는 실핏줄과 같은 골목길과
그 길 위에 세워진 집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삶에 대해 대한 이야기다.
저자 김유경씨와 사진작가 하지권씨가 7년의 세월에 걸쳐 북촌이라는 지역이 가지는 객관적 사실과 기록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알고 보면 더 많은 감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케 하는 책이다.
『서울, 북촌에서』는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장에서는 한옥 동네의 삶을 북촌의 가게들과 한옥, 정원과 음식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대형화되고 통합된 편리 중심의 백화점이나 대형 슈퍼에서는 도무지 경험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다. 쌀집, 떡방앗간, 목욕탕, 철물점, 한복집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작은 가게들의 주인장 그들과의 인정어린 대화들...또한 그 곳에서 살다간 조선 양반들의 가옥들과 사람들의 이야기와 대대로 물려받은 한옥을 고스란히 유지 하고 있는 풍경들을 그리고 있다.
2 장에서는 삼청동과 성북동을 중심으로 난 산책길과 예술과 사람들, 그리고 삼청각 건축과 조선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북촌이라고 하면 한마디로 한옥이 떠오른는데, 4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기후에 따라 계절별로 다양한 풍취를 그리고 있다. 또한 길 위에 디자인 되어진 모든 것들은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그 것들이 그러한 모습으로 거기에 있게 된 연유를 소상히 다루고 있어 디자인 되어진 것들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관계에 대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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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여름, 삼청동 코리아 헬스센타와 언덕 우물길에서 내려다 본 풍경)
3 장에서는 부드러운 삶의 휴식이여라는 타이틀로 세검정, 원서동 평창동, 피맛골과 광화문 일대를 둘러싼 집들과 그 속에 담겨진, 살다간 사람들, 그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흔적들을 소상하게 다루고 있다. 이미 사라진 책 속의 피맛골의 풍경은 벌써 과거 속에 얘기가 되어 또 다른 푯말을 세워야 하고, 광화문 풍경도 이전과 많이 달라져 버렸다.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모토로 디자인 서울이라는 기치에 의문을 가지며, 빠르게 팍팍하게 변모하는 오늘날 왜 지금 북촌에 대해 얘기 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4 장에서는 서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보신각종,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 그리고 서울 도심을 둘러싼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휘도는 성벽을 둘러싼 공간과 그 속에 담겨진 역사적 사실과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의 상징, 나아가 대한민국의 상징이기도 했던 남대문의 소실은 아직도 아픔으로 남아 있다. 경제적 논리로는 도무지 해결 할 수 없는 시간이 만들어 낸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2009 가을, 인왕산 끝자락 성벽 바깥 길)
제 5장에서는 젊은 그들이라는 타이틀로 재동 백송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우정총국, 정동산책 돌담길에 새겨진 근대의 기억과 조선시대 궁궐에서 살던 여인들의 집과 그 사연들에 대해 사실적으로 기술해 놓고 있다. 격변하는 개화기에 개혁을 위한 조선의 젊은이들의 피묻은 사연을 모두 알고 있는 재동 백송이 아직도 건재함은 다행한 일이다.
제 6장에서는 서울의 제(祭)와 재(齋)다. 성균관의 석전제, 5월의 종묘 대제, 봉원사의 영산재 등의 유래와 그 법식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해 놓고 있다. 지금은 그 형식만 남아 있을 것 같은 역사적 제례의식을 새롭게 조명하고, 국가적 차원의 문화 축제로 저변을 확대 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해 겨울, 서울을 전 세계에 알린다는 검증되지 않은 효과에 눈 어두운 행정가들이 겨우 생각해 낸 것이 국제 스노보드 대회다. 이 초 현실주의적 발상을 실현 시키기 위해 대형 시설물을 수억원 들여 설치하고 장소에 걸 맞지 않는 행사로 서울에 사는 의식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쓸어 내리게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축제가 부족한 우리나라. 일년에 한 번이라도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축제가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다면, 이 보다 더 스펙터컬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적어도 서울 사람들에게는 문화적 자긍심을 부여하고 방향 잃은 광화문 광장의 명예가 조금이나마 회복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상상력을 동원하라고 말하고 싶다. 서울을 세계에 알리는 일은 부가가치로 충분하다.
(2009 겨울, 이순신 장군 동상과 광화문 광장의 밤 경관)
왜 지금 북촌인가?
유혹적인 재개발, 뉴타운과 신도시와 같은 경제적 가치는
도시의 역사와 전통적 생활양식과 우리들의 관습과 의례를 외면하고
국적 없는 고공빌딩들을 대량 생산해 내고 있다.
언젠가 서울에는 고층빌딩과 궁궐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건축물들로 분류 될 날이 머지 않을 것 같은 위기감 마저 든다.
조상들이 살아 낸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있다면
결코 쉽게 무너트리거나 거래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 북촌에서』는 선조들이 지켜 온 맥(脈)들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인가를 생각게 한다.
전통과 문화를 이어가는 주체는 정책도 아니고 정권도 아니다.
그 곳에서 삶의 뿌리 내리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좋은 정부, 좋은 정책은 이러한 도시의 맥을 잘 이어 갈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그들을 도우는 일일 것이다.
또 한 가지 욕심을 부린다면 북촌과 연결되는 수 많은 길들의 얘기에 대해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공공 시설물들로 가득 채워져서 사람 다닐 길이 없는 국적 없는 <디자인 거리>가 아니라,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삶이 만들어 낸 자연 발생적이고도 문화적인 이야기가 넘쳐나는 그런 길들...
<서울 북촌과 같은 길>들이 더 많아 졌으면 좋겠다.
지도출처: http://bukchon.seoul.go.kr/exp/rcourse01.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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