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역사의 중심지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아브라함 당시부터 이미 한개의 성읍으로 있었던(창14:18) 고대도시이다.
BC 13세기경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당시 여부스 족이 살았으나 정복하지 못하다가(수15:63)
BC 1000년경 다윗에 의해 시온산성인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다윗성이라 하였다.(삼하5:7)
그후 예루살렘은 다윗왕이 수도를 헤브론에서 옮긴 후부터 크게 번성하기 시작했다.
솔로몬 때는 다윗 당시보다 두배 이상 북쪽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BC 587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성이 철저하게 파괴된 후
귀환때까지 예루살렘은 피폐된 채로 남아 있었고 귀환자들에 의해 성전이 재건되었어도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초라한 성이었다.
BC 63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BC 37년 로마의 도움을 받은 헤롯왕에 의해 예루살렘은 솔로몬 당시보다 세배가 넘는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은 또 한번 철저한 파괴를 당했다.
이때 서쪽벽 중 일부가 파괴되지 않았는데 오늘날 이곳을 통곡의 벽이라 하여 많은 유대인과 순례객들이 찾고 있다.
이후 예루살렘은 콘스탄틴 황제 때 기독교 건물이 세워지다가
638년 회교국의 오마르 왕이 점령한 후부터 회교 사원이 들어섰다.
그리고 1099년 십자군에 의해 다시 기독교 건물이 들어섰고, 1187년에는 다시 회교국에 넘어갔다.
1516년 터키에 의해 점령된 후 슐라이만 대제에 의해 성벽과 성문이 건축되었다.
그후 1917년 영국군에 의해 점령 당한 후 많은 유대인들이 세계 각처에서 이곳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고
마침내 1948년 5월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를 이루고 1961년 6일 전쟁때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발 800m의 유대 산악지대의 중심도시, 국제 통상로의 요충지,
고대 이스라엘 및 유대왕국의 도읍지, 이스라엘의 현재 수도.
예루살렘의 고도 : 모리아산 740m, 기드론 골짜기 620m, 감람산 830m
다윗이 수도로 삼은 세가지 이유 : 남북 통합 기능, 물이 있음, 골짜기로 인한 외침 방지.
예루살렘은 유대인, 회교도, 기독교인 모두에게 성스러운 도시가 되었다.
"예루살렘"의 의미는 "평화의 도시"이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곳의 건축물은 영국의 위임통치시대 이래로 특유의 베이지색 돌만을 사용하여 건축함.
"팔레스틴" 이름의 유래
블레셋과는 무관하고, 주후 13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바르 코흐바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고
유대인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한 뒤 유대 땅을 Capitolina Palestina 로 부름.
주전 4-5세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넓은 의미에서 Syria Palestina 라고 처음으로 명명함.
KJV의 한구절에서 필리스티나로 혼동.
성경역사의 중심지 예루살렘,
이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의 길,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고
그곳에서 피 한방울, 물 한방울까지 쏟아부어주시며 나를 살리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원해 주셨다.
신구약 성경 역사를 품고 있는 예루살렘 성벽이 세월의 유구함을 잘 드러내 주고 있고
주변에는 감람나무라고 알려진 올리브 나무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그 역사를 지켜보고 있다.
동편의 스데반 문
유대인에게는 세겜문으로, 아랍인에게는 나불루스문이라고도 불리우는 스데반문
스데반이 이 문을 통해 끌려나와 돌에 맞아 순교했다(행7:60)고 알려진 문이라 스데반 문이라 부른다.
스데반 문 위에 새겨진 사자상.
이 사자상으로 인해 사자의 문이라고도 불리우며
예루살렘 성의 여러문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다운 문이다.
유대인은 이 문을 통해서 세겜으로 가는 길과 연결되기에 세겜문이라 불렀다.
예루살렘 성에서 가장 취약한 곳에 세워진 문으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가장 견고하게 축조되었으며 한때는 다메섹 문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지금은 이 문에 들어서면 아랍의 시장 상인들로 가득찬 시장 골목길로 연결된다.
또한 이 문에 들어서면 예수님이 십자가 형을 선고받은 빌라도 법정과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오르신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성 안나기념교회 옆 마당의 울창한 종려나무 숲
성 안나 기념교회는 스데반 문(사자문)에서 성 안쪽으로 100m 정도 들어가면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 여선지 안나는 사랑하는 남편과 7년을 살고 과부가 된 후
84세가 되기까지 이곳에서 하나님을 섬겼다.(눅2:36~38)
이 교회 건물은 십자군 시대의 유적이라고 한다.
과부가 된 안나는 84세가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다가
구원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선포하게 된다.
하나님을 향한 안나의 신앙과 헌신을 마음에 새기면서
베데스다 연못의 평면도(요 5:2~9)
스데반 문에서 성 안쪽으로 100m 정도 들어가면 나타나는 성 안나 교회에 옆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의 평면도.
베데스다 남쪽 연못의 입구
남쪽의 저수조
베데스다 연못은 원래 빗물을 저장하여 제물로 사용될 양을 씻었던 일종의 빗물 저수조였다.
예수님 당시 양문 곁에 이쓴 못으로 다섯 행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원래 못의 길이는 120m로 좌우 두곳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메워져 왼쪽 못 부분에서 약간의 물만 보인다.
본래 주전 2세기 시몬이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 세워진 쌍둥이 연못으로
수백년 동안 흙에 묻혀 있던 곳을 1888년 쉬크(K. Schick)가 발굴했다.
예수님께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 곳.(요5:2~9)
저수조와 연결된 비잔틴 시대의 교회의 흔적이 보인다.
요한복음 5장의 내용을 기록한 현판
프로바틱 집사 무덤의 돌비 안내문
프로바틱 집사 무덤의 돌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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