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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내적치유의 성경적 비판 (1)

by 서귀포강변교회 2010. 9. 3.

내적치유의 성경적 비판 (1)

 

1. 내적치유의 근본적 주장

1) 내적치유에서는 인간은 모두 수동적이요 피해자라고 말한다.

모두 수동적으로 고통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모두 고통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요 파생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2)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우리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짓는다는 말이다.

기독교 상담이라는 대부분의 상담이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상담에 관한 책의 최소 80-90% 이상이 이런 심리적 사상과 철학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들이다. 인간은 수동적으로 고통을 받고, 죄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보상적으로 행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적치유”의 주된 내용들이다.

 

2. 성경의 근본적 주장

1) 그러나 성경은 인간을 수동적인 존재나 희생자(= 피해자 )로 묘사하지 않았다. 또 근본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자로 묘사하지도 않았다. 성경에서는 인간을 근본적으로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존재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은 인간의 목적을 모태부터 희생자(피해자)로 묘사하고 있지 않는다.

 

2) 또한 성경은 인간을 책임을 가진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인간이 고난을 당하고 고통을 받고 살지만 인간은 무엇이냐가 문제(issue)이다. 인간은 죄인이냐 의인이냐가 문제이고 우리가 소망을 무엇에 두느냐가 문제이다.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느냐 아니면 물질에 두느냐,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아니면 쾌락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느냐가 문제점이다. 주님은 이 모든 것의 전형(paradigm-모범)이 되신다.

 

3) 이는 주님께서는 자진해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기꺼이 십자가까지 지셨다. 흥미로운 것은 십자가의 고난은 주님의 능동적 헌신이셨다. 그는 오직 인류를 구원할 목적을 위해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하시면서 자진해서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희생(= 피해 )의 행위가 아니고 헌신이다. 따라서 십자가의 주된 의미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4) 성경에서는 “왜”라는 말보다는 “무엇”이라는 말이 더 중요하다.

무엇, 즉 고통은 성경의 주요 내용(context)이다. 이 내용(context)에서 하나님의 의와 영광이 나타나고 우리의 믿음이 나타난다. 그래서 욥기에서도 욥의 고통이 주가 된 것이 아니다. 욥이 모든 것을 잃었어도 욥의 끝은 완전히 다르다.

“내가 회개하나이다”, “전에는 귀로만 들었더니 이제는 내 눈으로 하나님을 뵈웠나이다” 욥은 하나님을 알아 왔다. 그러나 욥이 당한 고난이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가까이 알게 했다. 고난과 고통에는 언제나 더 큰 뜻이 있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해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 즉 성경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뢰하라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고후 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5) 물론 인간의 삶에는 갖가지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대인 관계에서 많은 갈등을 가지며 살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다. 즉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신다. 이것은 내가 누구를 섬기느냐를 시험하시는 것이다. 불신자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할 줄 안다. 따라서 고통에는 목적이 있다.

 

(1) 고통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시험이다(= 신 8:2 ).

고통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드러낸다. 즉 우리가 누구를 섬기느냐를 드러낸다. 고통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한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2) 고통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우리를 정금보다 귀하게 만드신다. 그리고 고통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지를 알게 한다.

 

6) 결국 우리는 모두 고통을 당하지만 본질적으로 희생자(= 피해자 )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죄인이다.

문제는 우리의 책임과 고통과의 관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적치유 운동의 정체를 드러내는 핵심적 문제점의 하나이다. 즉 인간의 책임과 인간의 고난과의 관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기독교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방법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 중에 큰 유행을 타고 있는 것이 심리이설(心理異說), 심리적 신비주의로서의 내적치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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