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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 14강

by 서귀포강변교회 2010. 10. 11.

목적이 이끄는 삶 시리즈 (14)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 (When God Seems Distant)

(사 8:17)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야곱 집이라고 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집에 대해서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다! 하나님은 마치 숨박꼭질 하시는 같습니다. 자기 자신의 얼굴을 숨기시는 것 같은 그러한 상황이지만 그 다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기다리며 바라보리라!’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 속 깊이 각인되기를 바랍니다.

(서론) 우리가 어떻게 느끼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실제로 존재하신다. 모든 것이 좋을 때 하나님을 예배하기는 쉽다. 그러나 너무 힘들고 절망적일 때, 하나님이 구만리 장천에 계신 것 같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깊은 경지의 예배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시험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삶을 내어드리며,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적인 영적인 체험을 할 때에 또 성령세례 받을 때에도 정말 하나님께서 바로 옆에서 역사하시고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완전히 주장하시는 듯한 때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멀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너무 문제와 시련과 고난이 특심한데 하나님께서 도대체 도와주시는 것 같지 않고 멀리 느껴질 때, 그때가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가장 깊은 경지의 예배’라고 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하고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시험 당할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여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삶을 내어드리고’,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관계는 얼마든지 유동적일 수 있다

필립얀시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소설도 쓰고 수필도 쓰는 아주 위대한 저술가입니다. 그분의 책이 얼마나 많이 팔리는지~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1) “모든 관계에 가까워지는 시기와 멀어지는 시기가 있듯이,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추는 항상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움직인다” (Philip Yancey)

우리가 연애할 때나 부부관계나 친구나 모든 관계에서 그렇습니다. 굉장히 가까워 질 때도 있지만 상당히 소홀해 질때도 있습니다. 관계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럴 수 있다. 라고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성령 받을 때, 결정적인 문제가 해결될 때, 질병이 치유되고, 엄청난 은혜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다윗의 시편을 읽어보면~

2) 다윗도 하나님의 부재 때문에 고통을 당했다

(시 10: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환란 때라면 가장 하나님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마치 숨어계신 것같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하나님은 마치 숨박꼭질하시는 하나님인 것 같습니다.

(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심지어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같은 느낌. 이 말씀은 메시야 예언의 시편으로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은 말씀.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께서 그 사건을 당하시기 천년 전에 다윗이 그것을 미리보고 자기 심정과 동일한 모습을 고백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사건을 미리 예시하신 말씀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내 고백과 동일한 상황에 계신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마치 내가 버림을 받은 것같은 그러한 느낌이 듭니다. 하나님이 멀리하셔서 나를 돕지 아니하시고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고 무정하고 매정하신 하나님처럼 여러분이 느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느낌일 뿐입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할 뿐입니다.

느낌과 사실은 다릅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지만,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것이라고는 약속하지 않으셨다

다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우리가 항상 느낄 수 있다고는 얘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때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내가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그것이지 하나님이 어디 도망다니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다윗 못지않게 하나님께 신임받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욥’입니다.

4) 욥은 영적인 슬럼프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았다

(욥 23:8-10)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의 기막힌 모습. 내가 앞으로 가도 안보이고 내가 뒤로 가도 안 보이고, 왼편에서 일하시나 만날 수 없고,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바로 절대 절망입니다. 그런데 10절에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할렐루야!

여기서 사방을 살펴도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테스트 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단련하신다. 훈련시키신다. 욥이 욥된 것은? 아주 무서울 정도로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렵다고 한다고 할지라도 욥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말도 안되는 고난을 당하게 하신 것은 이 지구상에 사는 어떠한 사람의 고난도 욥을 보면서 할 말 없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데 욥은 ‘나의 가는 길을 하나님은 아신다. 하나님이 나를 단련하시는 중이다. 단련의 기간이 끝나면 나는 정금같이 쓰이리라’라고 고백합니다.

이 욥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때 우리의 인생에 어떠한 문제도 저와 여러분에게 장애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사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5)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체험은 매우 정상적인 시험과 성숙을 위한 과정이다

항상 붕붕 떠 다닐수 만 없습니다. 어떤 때는 ‘나홀로’ 팽개쳐져 있는 그러한 상황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정금처럼 단련시키시는 하나님의 훈련 과정이라고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6) 예배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하나님보다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다 (예배는 감정이 아니다)

7) 감정이나 경험이 아닌 진리와 믿음이 예배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감정과 경험이 굉장히 힘이 있습니다. 특히 순복음은 경험과 감정의 체험에 관한한 세계적인 교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엄청나게 부흥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감정과 경험에만 의존하면 불안합니다. 그리고 중도 탈락자가 많고 계속 피곤합니다. 계속 그 감정이 유지가 되어야 하는데 계속 체험이 주어져야하는데, 사실은 굉장히 피곤한 것입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끊임없이 체험과 경험만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 불안하고 그리고 안정감이 없는 신앙을 가지기 쉽습니다. 예배란? 진리와 믿음입니다. 진리와 믿음이 기초가 되면 우린 상황에 관계없이 흔들림이 없는 수준 높은 초월적인 하나님의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것은 예배,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우리의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과 경험. 그것은 굉장히 existing 합니다. 부부관계에서 처음 연애시절엔 남녀간에 전기가 몇만볼트 흐릅니다. 감정과 경험이 뜨겁게 교차합니다. 그런데 계속적으로 그렇게 감정과 경험인 뜨거움으로 살아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볼트가 없습니다. 24볼트?

그래도 잘 삽니다. 서로 손을 만져도 그저 그런 정도입니다. 1.5볼트?

그렇다고 해서 부부의 관계가 망가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아니 더 깊어졌습니다. 여러분 볼트를 추구하다 보면 다른 것을 쳐다보게 됩니다. 다른 것을 추구하면 또 다른 쪽에서도 2만볼트가 생겨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며, 성공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관계나 인간의 관계나 부부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부모자식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순복음의 약점이 바로 이것인데, 뭔가 전기가 통하고 흔들고 감정과 경험이 진행되어야만 은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예배 드릴 때도 뭔가 힘차게 박수치고 울고, 웃고, 뒤집어 지거나 그러면 엄청나게 은혜받은 줄 아는데 그렇지 않고 맹맹한다고 할까? 말씀 그대로만 가면 ‘에이! 오늘 별로 은혜가 없네!’ 여러분! 이건 보통 피곤한 것이 아닙니다. 장로교가 조용조용하면서도 저력이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과 진리와 믿음에 기초를 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에는 무척 힘이듭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이 두가지가 다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욥 1:20-21) 『[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아주 처참한 상황에서도 놀라운 사실은 엎드려 경배했다. 얼굴을 쳐들고 불평하고 비난하고 저주한 것이 아니라, 경배했다. 하면서 내가 결국 받은 것도 하나님께서 받았고, 빼앗긴 것도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여러분, 우리들이 축복 받을 때만 할렐루야! 하지 말고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오히려 축복의 반대 상황이 벌어져도 저와 여러분은 끝까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평신도 성경공부반에서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랑’에 대해서 토론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자기의 재산과 소유를 잃어버렸을 경우에 어떻게 대할 것이냐?에 대해서 어떤 분이 솔직하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사람에게 잘살게 해 주신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나의 매부는 진실 되게 하나님을 섬겼지만 재산을 송두리째 잃어 버렸다오!’ 그러자 그 매부라는 사람이 나와서 ‘하나님께서는 내게 부자로 살게 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신 적이 없었오! 그러나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나와 함께 계셔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가 그 약속을 저버린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뿐만 아니라 그는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 주는 훌륭한 아내와 사랑스러운 두 딸을 주셨오! 그 딸들은 나의 보배요! 하나님께서 모든 약속을 지키셨고, 나도 그에 대한 언약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소!’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아무것이 없어도 도대체 내 원하는대로 아무것도 안 되었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아멘?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이 한가지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어마어마하게 이미 받은 줄로 믿습니다.

2.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어떻게 할 것인가?

1) 하나님께 솔직한 감정을 말하라 (Tell God exactly how you feel)

(1)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의심, 분노, 두려움, 슬픔, 혼란, 의문을 감당하신다

(2) 하나님 앞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의 표현이다

(시 116:10) 『내가 믿는고로 말하리라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

이게 굉장히 역설적인 얘기입니다. 모순된 얘기입니다. ‘내가 믿는고로 말한다’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다’내가 하나님을 믿어요! 그런데 내게 시련과 고난이 옵니다. 그것을 그대로 하나님께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받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푸념이라고 할까? 기가막힌 상황을 울면서라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저버리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아가세요! 하나님, 도대체 이게 뭡니까?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다윗도 욥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탄식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다 받으셨습니다. 다 들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초점을 맞추라 (Focus on who God is - his unchanging nature)

(1) 하나님의 변함없는 특성에 매달려라

하나님의 불변하신 속성, 하나님의 특성, 하나님이 영원하시다는 말은 하나님이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

(2) 하나님이 빛 가운데서 하신 말씀을 어둠 속에서 의심하지 말라

어둠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터널을 지나는동안에는 기찻간을 옮겨다니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망과 낙심과 어둠속에 눌려있는동안에는 결코 결단을 내리지 말라는 것이죠! 어두운 침묵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가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서 멀리 느껴지게 되면 어느쪽에서 움직이셨는가?를 짐작해야 합니다. 누가? 움직였겠습니까? 하나님이 가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옮겨 다닌 것입니다. 내가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닌 것입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함께 계신다는 사실. 끝까지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Trust God to keep his promises)

하나님의 약속에 목숨을 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 아니다! 느낌이(feeling)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같은 말인데 feeling이냐? face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인 fact(사실)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인 fact(사실)에 우리는 feeling이 아닌, face로 닥아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즉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라, 믿음으로 내가 의지해야 된다.

‘말씀이 그렇다면 그런거다!’

내 느낌, 내 감정에 관계 없습니다. 말씀이 그렇다면 그런 것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면 그런것입니다. 말씀을 믿으면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그런 것입니다. 그 말씀을 저와 여러분은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1) 우리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라

(욥 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욥의 승리의 비결입니다. 말씀이 그렇다면 그런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보다도 더 말씀을 귀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2)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으라

(욥 13:12)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

영어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나를 죽인다고 할찌라도 나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리라!’

여러분, 다니엘의 세 친구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던지울 때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하나님을 떠날 수는 없다. 부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4)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을 기억하라 (Remember what God has already done for you)

약속하신 말씀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 일들, 태어나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얻게 하시고, 지금까지 살게 하신 하나님. 돌이켜 볼 때 하나님이 계셨기에 우리의 현재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1) 십자가 구원만으로도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2)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 예배의 가장 큰 이유이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은총(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죄 덩어리인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 하나님 받으실 만한 그릇이 되었다! 이 하나만으로도 저와 여러분은 엄청나게 축복받은 존재인 것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결론) 내가 어떻게 느끼든 하나님은 실제로 존재하신다

(적용)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 어떻게 하면 그 분이 계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까?

목적이 이끄는 삶 시리즈 (14)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 (When God Seems Distant)

(사 8:17)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서론) 우리가 어떻게 느끼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실제로 존재하신다. 모든 것이 좋을 때 하나님을 예배하기는 쉽다. 그러나 너무 힘들고 절망적일 때, 하나님이 구만리 장천에 계신 것 같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깊은 경지의 예배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시험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삶을 내어드리며,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1. 관계는 얼마든지 유동적일 수 있다

1) “모든 관계에 가까워지는 시기와 멀어지는 시기가 있듯이,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추는 항상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움직인다” (Philip Yancey)

2) 다윗도 하나님의 부재 때문에 고통을 당했다

(시 10: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3)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지만,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것이라고는 약속하지 않으셨다

4) 욥은 영적인 슬럼프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았다

(욥 23:8-10)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5)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체험은 매우 정상적인 시험과 성숙을 위한 과정이다

6) 예배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하나님보다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다 (예배는 감정이 아니다)

7) 감정이나 경험이 아닌 진리와 믿음이 예배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욥 1:20-21) 『[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어떻게 할 것인가?

1) 하나님께 솔직한 감정을 말하라 (Tell God exactly how you feel)

(1)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의심, 분노, 두려움, 슬픔, 혼란, 의문을 감당하신다

(2) 하나님 앞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의 표현이다

(시 116:10) 『내가 믿는고로 말하리라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

2)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초점을 맞추라 (Focus on who God is - his unchanging nature)

(1) 하나님의 변함없는 특성에 매달려라

(2) 하나님이 빛 가운데서 하신 말씀을 어둠 속에서 의심하지 말라

3)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Trust God to keep his promises)

(1) 우리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라

(욥 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2)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으라

(욥 13:12)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

4)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을 기억하라 (Remember what God has already done for you)

(1) 십자가 구원만으로도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2)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 예배의 가장 큰 이유이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결론) 내가 어떻게 느끼든 하나님은 실제로 존재하신다

(적용)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 어떻게 하면 그 분이 계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까?

출처 : 예인이할배
글쓴이 : Θ의形像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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