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사랑ㆍ감사' 메시지 남긴 강영우>
부인, 두 아들에 이별편지 "행복하게 떠납니다"
연합뉴스 성기홍 입력 2012.02.24 14:06
부인, 두 아들에 이별편지 "행복하게 떠납니다"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 "너희들과 함께 한 추억이 내 맘속에 가득하기에 난 이렇게 행복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가 있단다"
"아직도 봄날 반짝이는 햇살보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당신을 난 가슴 한 가득 품고 떠납니다"
시각장애인인 전(前) 백악관 차관보 강영우 박사는 임종을 앞두고 아내와 두 아들에 남긴 편지를 남겼다.
강 박사는 지난해 10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차분하게 세상과 이별할 준비를 해왔고 가족들에게도 마지막 편지를 써내려갔다.
23일(현지시간) 별세한 강 박사의 가족이 전한 편지는 그가 가족과 함께 하며 행복했던 순간을 회고하고 부인 석은옥 여사와 진석, 진영 두 아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빼곡히 담고 있다.
"이제 너희들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로 시작되는 두 아들에 보내는 편지는 "내가 너희들을 처음 품에 안은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너희들과 이별의 약속을 나눠야 할 때가 되었다니, 좀 더 많은 것을 나누고, 좀 더 많은 것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온다"고 두 아들과 헤어지는 아픔을 담았다.
그는 "하지만 너희들이 나에게 준 사랑이 너무나 컸기에, 그리고 너희들과 함께 한 추억이 내 맘속에 가득하기에 난 이렇게 행복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단다"라며 두 아들을 키우는 과정의 추억을 회고했다.
강 박사의 장남 진석(39. 폴 강)씨는 지난해 워싱턴포스트에 의해 `슈퍼 닥터'로 선정되기도 한 유명 안과전문의이며, 차남 진영(35. 크리스토퍼 강)씨는 백악관 선임법률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해 보기전에는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나의 말을 가슴 속깊이 새긴 채로 자라준 너희들이 고맙고, 너희들의 아버지로 반평생을 살아왔다는게 나에게는 축복이었다"며 특히 지난해 연말 췌장암 판정을 받은 후 손자들까지 모든 가족이 함께 했던 크리스마스가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었다"고 아들들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강 박사는 "내가 떠나더라도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기에 너희들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항상 함께 할 것이기에 아버지는 슬픔도, 걱정도 없다"며 "나의 아들 진석, 진영이를 나는 넘치도록 사랑했고 사랑한다"고 편지를 맺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라는 제목이 붙은 부인에 보내는 편지는 젊은 시절 첫 만남부터 회상하며 시작했다.
"당신을 처음 만난게 벌써 50년전입니다. 햇살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 예쁜 여대생 누나의 모습을 난 아직도 기억합니다. 손을 번쩍 들고 나를 바래다 주겠다고 나서던 당돌한 여대생, 당신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날개없는 천사였습니다"
1962년 서울맹학교 학생이던 강 박사는 맹학교 자원봉사를 나왔던 당시 숙명여대 1학년이던 부인 석은옥 여사를 처음 만났다. 강 박사는 `대학생 누나'였던 석 여사의 도움으로 대학 진학의 꿈을 키웠고 1972년 두 사람은 결혼했다.
강 박사는 "앞으로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에 나의 가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당신을 향한 감사함과 미안함"이라며 시각장애인인 자신과 결혼하고 보살펴준 부인의 헌신적인 삶을 떠올렸다.
미국 유학,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회상하며 "시각장애인의 아내로 살아온 그 세월이 어찌 편했겠느냐"며 "항상 주기만 한 당신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 좀 더 배려하지 못해서, 너무 많이 고생시킨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회한도 담았다.
"지난 40년간 늘 나를 위로해주던 당신에게 난 오늘도 이렇게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더 오래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내가 떠난 후 당신의 외로움과 슬픔을 함께 해주지 못할 것이라서..."
강 박사가 "나의 어둠을 밝혀주는 촛불"이라고 지칭한 부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는 말로 맺었다.
1944년 경기도 문호리에서 태어난 강 박사는 13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듬해 축구공에 눈을 맞아 망막박리로 시력을 잃었고 같은 해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 10대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불우한 청소년기를 겪었다.
역경과 고난을 딛고 연세대를 졸업한 뒤 1972년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피츠버그대에서 교육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강 박사가 미국 유학을 떠날 당시 문교부(옛 교육과학기술부)는 장애를 해외 유학의 결격사유로 규정했지만 강 박사의 유학으로 이 조항이 폐지되면서 그는 한국 장애인 최초의 정규 유학생이 되는 기록도 세웠다.
그는 박사학위 취득후 일리노이대 교수와 일리노이주 특수교육국장 등을 역임하다 지난 2001년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로 발탁됐다.
당시 강 박사의 백악관 차관보 발탁은 미국 이민 1백년 한인 역사상 최고위 공직이었다.
그의 자서전 `빛은 내 가슴에'는 7개 국어로 번역 출간됐고, 국회 도서관에 음성도서(talking book)로 소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장애인 인권을 제도적으로 증진시키기 위해 강 박사는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을 창설했으며 유엔 세계 장애위원회의 부의장을 역임하며 루스벨트 장애인상 제정을 제안하고 창설하기도 했다.
sgh@yna.co.kr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 "너희들과 함께 한 추억이 내 맘속에 가득하기에 난 이렇게 행복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가 있단다"
"아직도 봄날 반짝이는 햇살보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당신을 난 가슴 한 가득 품고 떠납니다"
시각장애인인 전(前) 백악관 차관보 강영우 박사는 임종을 앞두고 아내와 두 아들에 남긴 편지를 남겼다.
23일(현지시간) 별세한 강 박사의 가족이 전한 편지는 그가 가족과 함께 하며 행복했던 순간을 회고하고 부인 석은옥 여사와 진석, 진영 두 아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빼곡히 담고 있다.
"이제 너희들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로 시작되는 두 아들에 보내는 편지는 "내가 너희들을 처음 품에 안은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너희들과 이별의 약속을 나눠야 할 때가 되었다니, 좀 더 많은 것을 나누고, 좀 더 많은 것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온다"고 두 아들과 헤어지는 아픔을 담았다.
그는 "하지만 너희들이 나에게 준 사랑이 너무나 컸기에, 그리고 너희들과 함께 한 추억이 내 맘속에 가득하기에 난 이렇게 행복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단다"라며 두 아들을 키우는 과정의 추억을 회고했다.
강 박사의 장남 진석(39. 폴 강)씨는 지난해 워싱턴포스트에 의해 `슈퍼 닥터'로 선정되기도 한 유명 안과전문의이며, 차남 진영(35. 크리스토퍼 강)씨는 백악관 선임법률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해 보기전에는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나의 말을 가슴 속깊이 새긴 채로 자라준 너희들이 고맙고, 너희들의 아버지로 반평생을 살아왔다는게 나에게는 축복이었다"며 특히 지난해 연말 췌장암 판정을 받은 후 손자들까지 모든 가족이 함께 했던 크리스마스가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었다"고 아들들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강 박사는 "내가 떠나더라도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기에 너희들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항상 함께 할 것이기에 아버지는 슬픔도, 걱정도 없다"며 "나의 아들 진석, 진영이를 나는 넘치도록 사랑했고 사랑한다"고 편지를 맺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라는 제목이 붙은 부인에 보내는 편지는 젊은 시절 첫 만남부터 회상하며 시작했다.
"당신을 처음 만난게 벌써 50년전입니다. 햇살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 예쁜 여대생 누나의 모습을 난 아직도 기억합니다. 손을 번쩍 들고 나를 바래다 주겠다고 나서던 당돌한 여대생, 당신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날개없는 천사였습니다"
1962년 서울맹학교 학생이던 강 박사는 맹학교 자원봉사를 나왔던 당시 숙명여대 1학년이던 부인 석은옥 여사를 처음 만났다. 강 박사는 `대학생 누나'였던 석 여사의 도움으로 대학 진학의 꿈을 키웠고 1972년 두 사람은 결혼했다.
강 박사는 "앞으로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에 나의 가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당신을 향한 감사함과 미안함"이라며 시각장애인인 자신과 결혼하고 보살펴준 부인의 헌신적인 삶을 떠올렸다.
미국 유학,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회상하며 "시각장애인의 아내로 살아온 그 세월이 어찌 편했겠느냐"며 "항상 주기만 한 당신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 좀 더 배려하지 못해서, 너무 많이 고생시킨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회한도 담았다.
"지난 40년간 늘 나를 위로해주던 당신에게 난 오늘도 이렇게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더 오래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내가 떠난 후 당신의 외로움과 슬픔을 함께 해주지 못할 것이라서..."
강 박사가 "나의 어둠을 밝혀주는 촛불"이라고 지칭한 부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는 말로 맺었다.
1944년 경기도 문호리에서 태어난 강 박사는 13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듬해 축구공에 눈을 맞아 망막박리로 시력을 잃었고 같은 해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 10대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불우한 청소년기를 겪었다.
역경과 고난을 딛고 연세대를 졸업한 뒤 1972년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피츠버그대에서 교육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강 박사가 미국 유학을 떠날 당시 문교부(옛 교육과학기술부)는 장애를 해외 유학의 결격사유로 규정했지만 강 박사의 유학으로 이 조항이 폐지되면서 그는 한국 장애인 최초의 정규 유학생이 되는 기록도 세웠다.
그는 박사학위 취득후 일리노이대 교수와 일리노이주 특수교육국장 등을 역임하다 지난 2001년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로 발탁됐다.
당시 강 박사의 백악관 차관보 발탁은 미국 이민 1백년 한인 역사상 최고위 공직이었다.
그의 자서전 `빛은 내 가슴에'는 7개 국어로 번역 출간됐고, 국회 도서관에 음성도서(talking book)로 소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장애인 인권을 제도적으로 증진시키기 위해 강 박사는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을 창설했으며 유엔 세계 장애위원회의 부의장을 역임하며 루스벨트 장애인상 제정을 제안하고 창설하기도 했다.
sg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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