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 26일, 31살의 나이였던 안중근의사는 하얼빈 역두에서 이등박문을 총살응징했다. 안중근은 오전 7시경 역으로 나가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역사안 찻집에서 이등의 도착을 기다렸고, 오전 9시경 이등을 태운 특별열차가 하얼빈역에 도착하자 러시아 코코프췌프 대장대신이 기내영접을 하였다.
약 20분뒤 이등이 수행원을 거느리고 코코프체프의 안내를 받으며 열차에서 내려 도열한 의장대를 사열하고 이어 각국 사절단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받기 시작했다.
이때 안중근의사는 9시 30분경 러시아 의장대 뒤쪽에 서 있다가 약 10여보의 거리를 두고 선 자세로 브로닝 권총을 발사하여 이등에게 3발을 명중시키고, 이등을 수행하던 하얼빈 천상 총영사, 삼 비서관, 전중 만철 이사 등에게 부상을 입혔다. 안중근은 러시아 헌병에 의해 체포되자 ‘코리아 후라(대한민국 만세)'를 3번을 외친 직후 러시아 헌병대에 체포된 안중근은 하얼빈역 헌병대 분파소에서 러시아 검찰관에게 심문을 당하다가 오후 8,9시경에 일본 영사관으로 넘겨졌다. 치명상을 입은 이등은 곧 러시아 장교들과 일본인 수행원들에 의해 열차 내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약 20분 후에 69세로 절명했다.
대한제국의 원흉인 이등박문을 제거한 안중근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오전 10시, 제6회 공판개정(최종판결)에서 일본 형법을 적용시켜 사형선도를 언도받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공판개정 중에, "3년전부터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이등을 포살코자 했으며, 이 거사는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결행한 것이다"라고 진술한바 있으며 최종판결을 선도 받은 후에는 "이보다 더 극심한 형은 없느냐"고 말하면서 시종일관 의연한 자세를 취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월 14일, 대한민국의 온 세상에는 초콜릿과 사랑이 가득하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데에는 분명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의롭게 순국한 안중근의사와 같은 이가 있었기 때문임을 상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안중근(安重根, 1879 ∼ 1910) 대한민국의 순국 의사. 아명(兒名)은 응칠(應七). "국가 존망의 위기를 보면 천명을 받은 것같이 생각하고, 이익을 보면은 먼저 정의를 생각하라.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아니하면 입 속에 가시가 생길 것이다."
미국 워싱턴 내셔널 몰 서쪽 포토맥 강변 가까이에 알링턴 국립묘지와 마주하고 그리스 건축양식의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이있다. 내부에는 링컨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 이곳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를 해방시킨 미국 16대 대통령을 기리는 곳이다. 링컨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라는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을 남겼고 생에 동안 '인간 정신이 갖고 있는 관용과 지조 및 정직의 미덕'을 몸소 보여준 위대한 정치가중 한사람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갑오농민전쟁으로도 불리는 동학농민운동은 조선 후기 봉건제도의 모순과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에 반대한 대규모의 투쟁이었으며, 봉건지배층의 지주적 입장의 근대화노선과 농민적 입장의 근대화노선의 대결이었다. 1884년 (고종 31년) 전라도 고부의 동학 접주(接主) 전봉준 등을 지도자로 동학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 운동은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와 착취에 대한 항거에서 발단하여 한때는 관군을 무찌르고 삼남 지방을 휩쓸었으나, 결국 청나라, 일본등 외세의 개입으로 인해 실패로 끝났다. 이 운동은 훗날 항일 의병 투쟁과 3·1 운동으로 계승되었다.
1876년 2월 14 빈에서 첫 연주된 이 왈츠곡은 당시 전쟁의 패배로 인하여 침체된 오스트리아의 분위기를 전환시키고자 작곡된 곡이다.
왈츠의 왕이라 불리는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의 대표작으로 19세기 음악중 가장 잘 알려진 선율중 하나이다.
1993년 2월 15일은 문화 예술 전문 공간인 예술의 전당이 10년간의 건립 공사를 마무리하고 드디어 전관 개관을 하게 된 날이다. 명실상부한 복합문화예술센터로서 모든 분야의 예술 활동을 수용할 수 있는 예술 전문 공간으로서 탄생된 예술의 전당은 문화 예술 활동을 위한 종합적 지원 공간의 조성으로 한국 전통 문화의 계승·발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기여하고 문화 복지의 기반을 구축하여 21세기 한국 문화 예술 부흥의 터전을 마련한다는 건립이념에 따라 설립되었다.
음속, 즉 소리의 속도를 말하는 것으로 인간이 하늘을 나는 꿈을 실현 시킨 뒤 남은 장벽 중에 하나는 소리보다 빨리 날수 있나 하는 것이었다. 2차 대전 후 비행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 왔지만 당시까지 가장 빨리 날 수 있는 비행기조차 소리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 과제를 풀기 위해 미국 육군과 해군은 미국항공자문위원회를 공동으로 구성하였고 1945년 벨사와 비행체 개발을 계약, 수차례 시험 끝에 드디어 1947년 켈리포니아 남부 상공에서 모선인B-29서 출발한 XS-1호기가 마하 1.06(시속 1,133km)에 도달함으로써 인류최초로 초음속 시대를 열게 되었다. 지난 2월 13일은 인류 최초로 음속의 장벽을 넘어선 미국 공군장교 이거(Charles Yeager)의 생일이다.
1876년 2월 14일은 벨이 전화기 특허를 신청한 날이다. 사실 벨의 발명 이전에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필립 라이스'라는 사람으로 벨보다 훨씬 앞서 전류의 변화를 소리로 바꾸는 장치를 만들었으나 학계와 업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이 발명은 라이스의 죽음과 함께 땅에 묻히고 말았다. 그 뒤 벨은 전기학자인 헨리의 도움을 받아 전화기 발명에 성공을 하였고 곧 워싱턴의 특허청에 전화기의 특허를 출원하였다. 그러나 우연하게도 이 날 또 다른 발명가인 ‘엘리사
글레인'이라는 사람 역시 전화기를 발명, 특허출원을 위해 특허청에 와 있었다. 이 사실은 곧 권리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세간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벨의 특허가 한 시간 빨리 접수되었다는 접수계의 증언에 따라 벨에게 권리를 주었고, 고학으로 전기를 공부하여 전화기를 발명한 엘리사 글레인은 어쩔 수 없이 눈물로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한 시간의 차이가 인류문화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사람의 이름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미래 자원의 보고로 각광받고 있는 남극대륙에 세계에서 17번째로 대한민국 남극과학기지가 1988년 2월 16일에 준공되었다. 기지가 건설된 곳은 남극대륙의 북서쪽 남극 반도 끝에 있는 킹조지섬이다. 기지는 420평위에 8개동으로 이루어
져 있으며 이들 건물들은 모두 지상에서 1.5미터씩 띄어 조립식으로 설치되어 있다. 남극과학기지가 건설됨으로써 우리나라는 남극자원 활용이 본격화 될 경우 석유, 크릴새우 등 남극의 무진장한 광수산자원 개발에 동참할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병에 관한 근거 없는 헛소문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흔히 문둥병, 천형병등으로 불리며 나병환자 혹은 일반인들을 비하하는 인격 모독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어왔던 것이다. 나병은 나균에 의해서 감염되는 것으로 만성 전염성 질환이다. 나병은 한센병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유례는 1871년 노르웨이의 의사 한센에 의해서 그 병원균이 발견됨으로써 당시까지의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아 공로를 인정하여 그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이다. 과거 치료가 불가능 했던 시기에는 하늘이 내린 천형이라 생각하기도 했던 한센병은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법률적 공식 명칭으로 나병으로 불려오다 2006년 나병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약사법이 개정되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한센병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2월 12일은 한센의 95주기가 되는 날이다.
우리가 흔히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마지노선'이라는 말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거나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방어선을 뜻한다. 이 말의 유래는 일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침공을 막기 위하여 프랑스가 국경지대에 설치한 방어용 장벽을 일컫는 말이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프랑스와 독일 국경에 설치된 당시 최고 기술로 축조된 이 현대식 방어선은 난공불락의 요새화된 국경선 이었으나 이를 너무 믿은 프랑스는 독일의 재무장을 근본적으로 막지 못하였고 급기야 1940년 벨기에를 침공하고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들어오는 독일군을 막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마지노선(Maginot Line)이라는 이름은 이 방어선을 제안하고 만들게 한 프랑스 육군 장관 ‘앙드레 마지노 : Andre(-Louis-Rene) Maginot'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오는 2월 17일은 ‘앙드레 마지노'의 생일이다.
해마다 2월이면 젊은 연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날이 있다. 바로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이다. 이날이면 화려한 포장의 초콜릿 바구니와 선물 꾸러미를 든 연인들이 길거리를 누빈다. 원래 발렌타인데이는 그리스도교의 성인(聖人) 발렌티누스의 축일로서 지금의 풍습과는 그 의미나 모양새가 많이 달랐다고 한다. 14세기때 부터는 연인들이 서로에게 카드를 보내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전통은 이후에도 계속되어지다, 근래에 들어서는 초콜릿이나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으로 이어졌고 이제 쵸콜렛 회사의 상술이라는 인식을 넘어선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유래가 어떻든 일년에 한번 공개적으로 남녀가 사랑을 표현하는 날로써 그 의미를 잘 살릴 수 있다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생활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2월 15일은 가곡 ‘보리밭'과 동요 과수원길로 우리에게 친숙한 아동문학가이자 시인인 박화목씨가 태어난 날이다. 1924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그는 1941년 어린이잡지 ‘아이생활'에 동시 피라미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고 2005년 숨을 거둘 때 까지 한국 아동문학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대상의 인식은 우리들의 주관 구성에 의하여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로 표현하면서 쓴 말이다. 기존의 생각이나 이론에 반하는 획기적인 주장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하며 대담한 발상, 관점의 변화로 사고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오랜 연구 끝에 지동설을 주장한 16세기 폴란드의 천문학자인 코페르니쿠스는 당시까지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며 태양과 별들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으나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며 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우주관을 주장하였다. 이는 당시 사회 분위기상 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질만큼 커다란 사건이었으나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내놓으면서부터 새로운 과학의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되어 과학의 혁명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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