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지 1순위의 강원도의 바다 곳곳에서 다채로운 테마의 여름 축제가 열린다. 가장 먼저 7월 12일에는 ‘망상해변축제’가 그 포문을 연다. 해수욕장 개장식을 시작으로 지역 문화예술 동아리들의 축하공연과 포크송 콘서트, 동춘서커스단의공연, 불꽃페스티벌을 비롯한 무대가 펼쳐지고 관광객이 참여하는 다양한 이벤트가 한 달간 계속된다.
7월 26일부터 4일간 경포해수욕장에서 열리는 ‘제 12회 강릉국제청소년 예술축전’에는 8개국 13개 팀, 400여 명의 단체가 참여하는 음악, 무용, 민속공연 등이 소개되고, 7월 27일부터 일주일간 속초시 장사항에서는 전통의 ‘오징어맨손잡기축제’가 열린다. 울진에서는 7월 28일부터 9일간 온천욕, 해수욕, 산림욕 이 어우러진 ‘울진 워터피아페스티벌’이 개최된다.
밤새 베갯머리까지 찾아든 파도 소리에 마음이 설레어 잠을 설쳤던 것 같다. 초록의 너른 잔디밭 너머로 파란 바다 펼쳐진 아담한 호텔방. 커다란 창을 활짝 열고 신선한 바다의 냄새를 찾아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상쾌한 마음으로 7번국도의 여행을 시작한다. 강릉에서 기분 좋은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들러야 할 첫 행선지, 그곳은 신선한 커피 향 가득한 카페다.
영진해변 언덕에 들어앉은 박이추 선생의 ‘보헤미안’이나 어단리의 ‘테라로사’는 커피의 도시 강릉을 대표하는 로스터리 카페들이다. 인구 15만 명의 작은 도시에 250여 개의 카페가 있고 매년 10월 떠들썩한 커피축제가 열리는 곳이 바로 강릉이다. 특히 경포대에서 시작해 안목항에 이르는 해안도로를 달리면 바람에 묻어온 커피 볶는 냄새에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다. 경포해변 아래 사천해변의 기차게 멋진 소나무 숲에 숨은 테라로사 포레스트에 들러 상쾌한 산미가 살아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강릉 인근의 해변이 더 좋은 건 솔숲 때문이다. 신선한 솔바람 이는 소나무들은 차분하게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며 바다를 향해 섰다. 문득 김홍도나 신윤복, 장승업 등의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이 바닷가가 가슴을 두드리는 모티브가 되었던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포대의 송림을 뒤로 하고 닿은 곳은 하슬라아트월드. 신라시대 때부터 부르던 강릉의 옛 지명인 ‘하슬라’를 이름에 붙인 이곳은 자연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자연이 되는 공간이다. 잔뜩 녹슨 오각형의 철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숲은 거대한 캔버스로 변신한다. 우거진 풀숲 속 보일 듯 말 듯 숨은 새와 개, 물고기, 사람, 의자 등 다양한 설치작품을 찾아내며 걷는 길이 즐겁다. 다소 괴이한 분위기의 피노키오 등 마리오네트 전시관과 동해바다를 마당삼은 정원, 감각적인 디자인의 호텔까지 이곳에 모여 있다.
익숙한 곳이지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정동진의 바다는 여전하다.
500원 하는 입장권을 끊고는 손바닥만 한 대합실을 지나 역 안으로 들어간다. 정오 무렵 정동진역에 닿은 무궁화호 열차는 여남은 여행자들을 부려놓고 강릉을 향해 떠났다. 그 열차를 향해 환호를 보낸 건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인 관광객들이다. 여행이 평범한 것들을 특별하게 바라보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은 국적불문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인가 보다. 기차가 들고 나는 일상의 풍경에 열광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그들의 모습이 꽤 순진해 보여 웃음이 났다. 정동진을 지난 7번국도는 바닷길과 나란히 요동친다. 많은 구간이 철책에 가로막혀 있으나 심곡항과 금진항을 잇는 6km 남짓의 헌화로에서 바다의 민낯을 볼 수 있었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기암괴석 늘어선 이 길을 달리며 푸른 바다의 요염함에 넋을 잃을 것만 같았다.
복합문화 예술공원 하슬라아트월드. 바닷가 절벽 위의 레고 블록 같은 건물이 이채롭다. 숲이 거대한 캔버스로 변한 야외 조각공원에선 바다와 함께 다양한 설치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달빛 쏟아지는 바다를 곁에 두고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낭만의 밤을 보낼 수 있는 망상오토캠핑장을 지나면 제철 맞은 오징어잡이 어선 바지런히 들고나는 묵호항이다. 항구 내의 어시장은 요즘 싱싱한 오징어를 사러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오징어뿐만이 아니다. 수십 미터 심해에서 작업을 하는 머구리(해남)가 잡아 올린 문어도 조연 자리를 꿰찼다. 이 날 시장에는 어른 머리통만 한 크기의 대왕문어가 등장했는데, 조금만 더 컸으면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문어괴물’ 쯤으로 보였을 테다. 네댓 마리에 1만원 하는 산 오징어를 들고 어시장 입구로 나오면 아주머니들이 횟감을 썰어주고 200~300원을 받는데 그 솜씨가 귀신같다. 칼의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눈을 크게 뜨고 봐야한다. 비릿한 바다냄새 정겨운 바다를 앞에 두고 맛보는 싱싱한 오징어 회 맛은 꿀보다 달다.
동해항과 촛대바위 품은 추암해변을 지나면 삼척이다. 맹방해변을 지나면 7번국도는 잠깐 바다와 거리를 두게 되고 강원도와 경상북도를 가르는 고포를 지나면서 다시 바다 곁으로 돌아온다. 울진이다. 거리 곳곳에 대게 모양을 한 조형물이 섰다. 대게잡이 철이 지난 죽변항 횟집들 수족관에는 홍게들이 주인 노릇을 한다. 울진에는 민물고기 생태체험관이나 성류굴 등 아이들과 함께 가볼만한 곳들이 여럿 있다. 송강 정철이 ‘신선의 비경’이라 극찬한 망양정 해변과 삼한시대 실직국의 설화가 깃든 ‘왕피천’의 절경도 놓칠 수 없다. 동해안을 대표하는 온천으로 꼽히는 백암온천도 울진에 있다. 너울대는 파도 때문인지 끝없이 몰아치는 길 때문인지 잠시 현기증이 날 즈음 영덕에 도착했다. 마음이 급해진 것은 영덕해맞이공원 인근의 풍력발전단지 위로 내려앉는 노을 때문이다. 높고 낮은 산과 언덕 위에 선 십 수 기의 거대한 풍력발전기 너머로 밀려온 저녁은 찰나의 순간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삽시간에 떠나버린 붉은 해가 서운치 않도록 아주 예쁜, 바다를 닮은 색의 밤이 찾아왔다. 꼬물만큼의 아쉬움은 게 찌는 냄새 가득한 강구항에서 달래야겠지 싶었다.
좌) 영덕해맞이공원에 내려앉은 저녁은 찰나의 순간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삽시간에 떠나버린 붉은 해가 서운치 않도록 아주 예쁜, 바다를 닮은 밤이 찾아왔다. 우) 묵호항의 어시장. 입구로 나오면 아주머니들이 친절하게 횟감을 썰어주신다. 칼의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눈을 크게 뜨고 봐야한다.
상) 정동진에서 심곡항 가는 길 위에서 만난 너른 감자꽃밭. 강원도의 여름날 아무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하) 울진 ‘왕피천’은 ‘왕 의 피란처’란 뜻의 오지로 발길 닿는 곳마다 절경이다. 강줄기가 태백산맥을 따라 울진을 지나 망양정 해안에서 바다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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