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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주의의 재발견

by 서귀포강변교회 2013. 11. 1.

비관주의의 재발견

삼성스포츠 | 입력 2013.07.24 10:17

 

[강북삼성병원] 월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K씨는 출근길에 올랐다. 출근 시간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았지만, 벌써부터 길은 차들로 꽉 차 있었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지각은 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앞차의 뒤꽁무니만 따라가다보니 어이쿠, 미처 보지 못한 빨간 신호등 때문에 횡단보도 중간에 엉거주춤 차가 서버렸다. 지나가는 사람들 눈길이 나를 매섭게 노려보는 것 같다. K씨는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아.. 난 왜 이 모양 일까. 안 그래도 이번 프로젝트가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은데 이제 지각까지 하게 되면, 이러다가 승진도 못하고 결국 해고당하는 건 아닐까. 정말 난 왜 이렇게 쓸모가 없을까.'

요즘의 세상은 낙관주의가 대세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더 건강해지고, 학생이라면 높은 학업 성적을 낼 수 있고, 직장에서라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윈스턴 처칠은 "비관주의자들은 기회 속에서도 어려움만 보려 하고, 낙관주의자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기회를 잡으려 한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아무리 부정적인 일이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면 좀 더 편안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정말 세상은 낙관주의자들의 성공담 만으로 이루어져 왔던 걸까 ? K씨 같은 비관주의자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낙관론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비관주의와 낙관주의는 똑같은 신호등을 바라볼 때 비관주의는 빨간색 신호등을, 낙관주의는 초록색 신호등을 보는 것과 같다. 국어사전을 꺼내어보면 비관주의란 인생을 어둡게만 보아 슬퍼하거나 절망스럽게 여기는 태도라 한다. 비관주의적 인생을 사는 이들은 남들과 똑같은 일을 겪어도 부정적인 일은 더 부정적으로, 긍정적인 일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러한 비관주의나 낙관주의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어떻게 선택하느냐의 문제이다.

비관주의를 다시 한번 찬찬히 뜯어보기로 하자.
비관주의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냉철히 응시하는 태도이다.  동물로 말하자면, 비관주의는 사파리 안에 살고 있는 사슴이 사자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늘 귀를 쫑긋 세우고 숨죽이는 것과 같다. 나는 괜찮을거야 라고 마음껏 풀 숲을 뛰놀다가는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렇기에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도망갈 준비가 되어있는 사슴이 훨씬 더 살아남기가 쉽다.

그렇다면, 사파리가 아닌 21세기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비관주의는 과연 어떤 효용을 가져다 줄까?


비관주의자라고 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기대 수준이 작을 뿐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온갖 영화제를 휩쓸며 극찬을 받았던 영화에 실망하고 오히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심심풀이로 시간이나 때우기 위해 봤던 이름 모를 영화에 큰 감동을 받은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영화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감동을 더욱 예민하게, 기쁨을 두 배로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관주의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작고 사소한 것에 '놀라는 능력'이 더욱 뛰어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비관주의는 최악의 결과를 예상하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게끔 해준다. 다시 말해 실패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고려해보고 미리 준비할 수 있게 해주는 셈이다. 최악의 상황을 눈 앞에 두고 보면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실패는 사소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한번도 실패해보지 않은 사람들보다 숱한 실패를 딛고 이겨낸 사람들이 더 성공에 가까울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경험해본 최악의 상황이 있었기에 다가올 실패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한번쯤은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의 큰 시련에 대해 비관주의는 그 시련의 충격을 최소화시켜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는 힘을 주지만, 낙관주의는 이러한 큰 시련 앞에서는 오히려 속수무책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게 된다.

환경운동가인 길 스턴은 이렇게 말한다.
"낙관주의자나 비관주의자나 모두 우리 사회에 공헌한다. 낙관주의자는 비행기를, 비관주의자는 낙하산을 발명한다."

칼럼니스트 : 최지혜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