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에서 감사로 불행의 끈을 끊다…
‘아빠의 선물’국민일보 입력 2012.10.09 17:57
아빠의 선물 / 정정숙 지음 / 시냇가에 심은 나무
이 책은 길고 긴 믿음의 여정에서 우리 모두가 한 번은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그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고난과 시련'에 대한 간증집이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삶을 사는 분들의 간증은 언제나 경이로움 그 자체다. 거기에 더하여 이 책을 쓴 정정숙 박사의 체험적 간증은 내게 한층 귀하고 특별하다.
배우자의 질병으로 내게 크나큰 고난이 덮쳤을 때 환자도 나도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한 상태였다. 때문에 나는 5년 동안 투병해온 환자를 황망하게 떠나보내면서 그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남아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나님이 기다리시다 못해 무쇠 쟁기날로 내 고집스러운 마음 밭을 난폭하게 갈아 엎으셨던 그 크나큰 은총이 마냥 고통스럽고 아프기만 했다. 뼈가 저리는 상실감 속에서 간신히 말씀에 눈떴을 때는 남편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런 점에서 정 박사의 책은 내게 간증보다는 근위축증으로 8년간 병석에 누운 남편을 간병하며 치러야 했던 눈물의 시간과 영적 성장, 더 온전한 사랑을 나누는 시간으로 알알이 바꾸어가는 그의 믿음의 행보, 그 자취에 내 마음을 포개어 뒤늦게나마 그때 알지 못해 남편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을 되짚어보는 시간으로서 의미가 더 컸다.
먼저 믿은 사람의 생의 자취를 따라 과거로 거슬러가는 그 마음의 행보에서 내가 절대로 놓치면 안 되었던 것은 어렵고 힘든 시간의 굽이굽이마다 부부의 베갯머리에서 오고간 말씀, 간절한 기도와 찬송이었다.
그렇다. 가난한 유학생 부부로서 10년이 걸려 마침내 박사 학위를 따고, 이제부터 꿈을 펼쳐보려는 참에 청천벽력처럼 덮친 불치병 진단, 그 충격과 좌절감을 무엇으로 감당한단 말인가.
'왜 하필 나란 말인가.' 믿음보다 먼저 자라나 시시각각 가슴을 헤집는 의문. 일찍부터 하나님 사역에 헌신하겠다고 서원한 자녀를 무슨 까닭에 이토록 힘들게 하시는 걸까, 하는 원망. 그때마다 부부는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말씀을 눈물과 함께 씹는다. 그러자 가슴을 헤집던 원통한 질문 하나하나가 깨달음으로 바뀌고 눈물의 기도가 기꺼운 인내의 기다림으로 바뀐다.
내가 그 자취 하나하나에 마음을 꾹꾹 눌러 포갠 까닭은 아픔과 고통이 감사로, 슬픔도 감사로 수렴되어 마침내 모든 결핍이 채워지는 이 동시적 삶의 신비가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한 스텝 한 스텝이 모두 전체를 이루어온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동시적 삶의 신비에서 솟구치는 기쁨과 환희는 그 한 스텝 한 스텝이 이루어낸 열매이기 때문이다. 가족, 친지, 공동체 전체에서 위로받던 사람이 위로하는 사람으로, 도움 받던 사람이 도움 주는 사람으로 역할이 바뀌고, 죽음의 자리가 산 자리가 된 것도 그 열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음의 열매를 맺어가는 시기는 사람마다 그 때가 다르다. 그렇다 해도 누군가 하늘을 향해 제대로 사다리를 놓는 일은 항상 중요하다.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여행길에서 곤한 잠에 든 야곱이 꿈에서 본 사닥다리. 성경은 어째서 하늘에서부터 사닥다리가 내려와 있다고 쓰지 않고, 땅에서 하늘을 향해 사닥다리가 서 있다고 표현했을까.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야곱이 하는 말.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아빠의 선물'은 나는 아직 열매 맺지 못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스텝 하나하나마다 마음을 포개어 봄으로써 온전히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사닥다리를 마음으로 걸어서 올라가본 지상의 마지막이자 하늘 앞의 문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서영은(소설가)
이 책은 길고 긴 믿음의 여정에서 우리 모두가 한 번은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그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고난과 시련'에 대한 간증집이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삶을 사는 분들의 간증은 언제나 경이로움 그 자체다. 거기에 더하여 이 책을 쓴 정정숙 박사의 체험적 간증은 내게 한층 귀하고 특별하다.
배우자의 질병으로 내게 크나큰 고난이 덮쳤을 때 환자도 나도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한 상태였다. 때문에 나는 5년 동안 투병해온 환자를 황망하게 떠나보내면서 그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남아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나님이 기다리시다 못해 무쇠 쟁기날로 내 고집스러운 마음 밭을 난폭하게 갈아 엎으셨던 그 크나큰 은총이 마냥 고통스럽고 아프기만 했다. 뼈가 저리는 상실감 속에서 간신히 말씀에 눈떴을 때는 남편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먼저 믿은 사람의 생의 자취를 따라 과거로 거슬러가는 그 마음의 행보에서 내가 절대로 놓치면 안 되었던 것은 어렵고 힘든 시간의 굽이굽이마다 부부의 베갯머리에서 오고간 말씀, 간절한 기도와 찬송이었다.
그렇다. 가난한 유학생 부부로서 10년이 걸려 마침내 박사 학위를 따고, 이제부터 꿈을 펼쳐보려는 참에 청천벽력처럼 덮친 불치병 진단, 그 충격과 좌절감을 무엇으로 감당한단 말인가.
'왜 하필 나란 말인가.' 믿음보다 먼저 자라나 시시각각 가슴을 헤집는 의문. 일찍부터 하나님 사역에 헌신하겠다고 서원한 자녀를 무슨 까닭에 이토록 힘들게 하시는 걸까, 하는 원망. 그때마다 부부는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말씀을 눈물과 함께 씹는다. 그러자 가슴을 헤집던 원통한 질문 하나하나가 깨달음으로 바뀌고 눈물의 기도가 기꺼운 인내의 기다림으로 바뀐다.
내가 그 자취 하나하나에 마음을 꾹꾹 눌러 포갠 까닭은 아픔과 고통이 감사로, 슬픔도 감사로 수렴되어 마침내 모든 결핍이 채워지는 이 동시적 삶의 신비가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한 스텝 한 스텝이 모두 전체를 이루어온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동시적 삶의 신비에서 솟구치는 기쁨과 환희는 그 한 스텝 한 스텝이 이루어낸 열매이기 때문이다. 가족, 친지, 공동체 전체에서 위로받던 사람이 위로하는 사람으로, 도움 받던 사람이 도움 주는 사람으로 역할이 바뀌고, 죽음의 자리가 산 자리가 된 것도 그 열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음의 열매를 맺어가는 시기는 사람마다 그 때가 다르다. 그렇다 해도 누군가 하늘을 향해 제대로 사다리를 놓는 일은 항상 중요하다.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여행길에서 곤한 잠에 든 야곱이 꿈에서 본 사닥다리. 성경은 어째서 하늘에서부터 사닥다리가 내려와 있다고 쓰지 않고, 땅에서 하늘을 향해 사닥다리가 서 있다고 표현했을까.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야곱이 하는 말.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아빠의 선물'은 나는 아직 열매 맺지 못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스텝 하나하나마다 마음을 포개어 봄으로써 온전히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사닥다리를 마음으로 걸어서 올라가본 지상의 마지막이자 하늘 앞의 문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서영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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