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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랑

서귀포에서도 논농사를 합니다

by 서귀포강변교회 2008. 6. 26.

 

 서귀포시 '하 논' 에서는 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5만년 전 한반도 비밀 간직한 제주 하논 분화구 
제주는 섬 전체가 화산밭이다. 120만 년 전부터 시뻘건 불덩이가 제주섬의 탄생을 재촉했다. 자그만치 80여 차례의 화산 폭발이 이 작은 섬을 만드는 데 동원됐다.
그래서 제주에는 곳곳에 화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돌담길에도, 들녘의 바위에도, 오름의 분화구에도 마그마가 솟아오르면서 만들어진 용암의 배설물과 화산 쇄설물이 태초의 제주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5만여 년 전 형성된 마르형 분화구


    ▲ 5만 년 전 화산의 역사를 간직한 제주 하논분화구 전경. 알오름인 '보롬이'를 품고 있다.  
    ⓒ 김동식
하논분화구를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국도 12호선을 따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동쪽으로 약 4km를 가면 하논이 보인다. 서귀포시 호근동과 서홍동 경계 지역에 있으며, 걸매생태공원과 천지연폭포, 외돌개를 연결하는 심장부이기도 하다.
가을걷이를 끝낸 하논분화구는 드넓은 대지를 드러내고 있다. 거대한 원형 경기장을 많이 닮았다. 보는 느낌대로라면 평화로운 세상의 잠자리다. 이곳은 500여 년 전부터 논농사를 지어 왔다. 밭농사가 대부분인 제주도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24만㎡에 이르는 논농사가 가능했던 것도 화산 활동이 가져다 준 1만 년 전의 천연 습지 덕분이다.  

 

 

 

이상  박건국(2008.10.3) 촬영


    ▲ 벼가 자랄 때의 하논분화구 전경(2005년 7월 촬영)      ⓒ 김동식


    ▲ 하논분화구에서는 500여 년 전부터 논농사를 지어왔다. 화산 활동이 가져다 준 천연 습지 덕분이다.  
    ⓒ 김동식

하논 지역에서 화산 활동이 시작된 것은 약 5만여 년 전 일이다. 이 때 마르(maar)형 분화구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하논분화구는 용암이 흘러나와 생긴 화산이 아니다. 지하에 있는 화산가스가 지각의 틈을 따라 한 군데로 모여 폭발하면서 뻥 뚫린 분화구가 됐다. 마치 납작한 깔때기처럼 보인다. 폭발 후에도 화산 쇄설물의 분출이 적은 게 특징이다. 그래서 하논분화구 주위에는 낮고 밋밋한 언덕이 형성돼 있다. 그러나 분화구 바닥은 지표면보다 상당히 깊다.

하논분화구는 서귀포 시내에 있는 360여 개 제주 오름의 하나다. '큰 논(大畓)'이란 뜻으로 하논이란 이름이 붙었다. 오름 면적은 126만6825㎡에 이르며 오름 자체의 높이(비고)는 88m다. 분화구 직경은 1km가 넘으며, 둘레는 3.8km나 된다.
하논 화산체는 너비가 동서로 약 1.8km, 남북으로 약 1.3km인 타원형이다. 화산체 말단부를 이루는 응회암층이 침식되기 전인 화산 분출 당시에는 지금 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화산의 흔적, 알오름과 하논응회암 그리고 이탄습지


    ▲ 하논분화구에는 화산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 김동식

하논분화구는 알오름을 품고 있는 이중 화산체다. 분화구 안에 스코리아(Scoria)로 이루어진 작은 분석구로 '보롬이'가 있다. 마르형이면서 이중 화산을 갖고 있는 분화구로서는 한반도 최대 규모이다.
이곳에는 화산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분화구 북쪽 및 서북쪽 도로 절개지에는 하논 응회암이 화산의 비밀을 품고 있다. 하논에서 관찰되는 천지연조면안산암과 각수바위조면안산암은 하논 화산 활동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서 하논이 탄생하는 과정을 제대로 지켜본 화산암들이다.


    ▲ 하논분화구를 구성하는 주요 지층은 천지연조면안산암과 각수바위조면안산암이며, 하논 화산 활동 때 형성된 응회암층과 용암류 및 분석(스코리아) 등이다.      ⓒ 김동식
화산 분출이 끝난 후 하논에는 최대 10m 이상의 깊이를 갖는 화구호(Crater lake)가 만들어졌다. 그후 생물의 기원이 된 퇴적물(유기물)과 바람에 실려온 화산 쇄설성 퇴적물이 화구호 주변에 끊임없이 쌓이면서 두꺼운 토양이 형성됐다.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로 들어가는 1만2천 년 전부터는 화구호에 퇴적물이 두텁게 쌓여 수심이 2m 이하로 급격히 낮아졌다. 기후가 따뜻하다 보니 식물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광활한 습지 세상을 이룬 것은 이 때부터다. 대략 1만 년 전후의 일이다.


   ▲ 하논분화구에는 이탄습지가 형성돼 있다.     ⓒ 김동식
하논분화구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마르형 분화구에 형성된 이탄습지(泥炭濕地, Peatlands) 때문이다. 이탄습지는 자연 상태에서 생물체를 부패 시키지 않고 장기간 동안 보존할 수 있는 습지를 말한다. 최고의 자연 박물관이자 타임캡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탄습지 자체가 드물며 분화구 안에 형성된 경우는 더욱 드물다. 이탄습지로서의 면적도 하논이 국내 최대이다. 이 습지에는 물질을 썩게 하는 미생물이 부족해 꽃가루 등 식물들이 시대별로 퇴적돼 있다.


   ▲ 습지에는 이 땅에 살았던 생물의 생생한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 김동식
하논 습지는 아주 오래된 옛날 이 땅에 살았던 생물의 생생한 정보를 고스란히 저장하고 있다. 하논에 묻혀 있는 꽃가루, 홀씨, 열매, 씨앗 등을 조사하면 각 시대의 식물정보를 알 수 있다.

이탄습지는 환경적 폐쇄성이 높다. 그래서 북방계 식물을 포함한 희귀 및 멸종 위기식물의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 물 속에서 자라는 수생식물과 습기를 필요로 하는 다양한 다년생초본식물에게는 그야말로 자연의 보금자리다. 하논습지에 얼마나 많은 고생물과 희귀 광물질이 묻혀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B>하논분화구가 가르쳐 준 비밀 정보?</B>


   ▲ 골풀과 송이고랭이 등 물풀들이 아직도 하논에 남아 습지의 생명을 지키고 있다.     ⓒ 김동식
하논분화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놀라운 비밀들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전남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정철환 교수가 2003년 11월 습지퇴적층에서 시추된 50여 개의 시료를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보존 상태가 양호한 홀씨와 꽃가루 등이 풍부하게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2m 상부의 시료들에서는 고란초과, 낙우송과-측백과-주목과 및 일부 낙엽성 활엽수가 많이 나왔다. 이는 빙하기에서 홀로세로 넘어가는 동안 기후 변동이 나타났음을 뜻한다. 2m 하부의 시료들에서는 고란초과 등이 현저히 감소한 반면 쑥속(屬)으로 대표되는 초본류의 화분이 뚜렷하게 관찰됐다. 이는 1만 년 전 빙하기와 관련된 기후의 한랭화를 말해 준다.

일본 도쿄도립대 후쿠자와 히토시 교수도 지난 1998년부터 제주대학교와 공동으로 하논분화구 퇴적물을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분화구 습지를 9.5m까지 시추한 결과 6천 년 이후 현재까지 지층이 경작 등으로 훼손됐으나 3만 년 전 지층까지는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특히 6천 년 전에는 지금의 서귀포 지역 기후와 비슷하지만 1만8천∼2만 년 전에는 연평균 기온이 0∼3℃로 매우 추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와 함께 따뜻한 쿠류시오 해류의 영향으로 제주도가 다른 대륙에 비해 2천∼3천 년 빨리 빙하 시대가 끝났다는 새로운 사실을 하논분화구에서 찾아내기도 했다. 이 쿠류시오 해류는 극동아시아 지역의 기후 변동에 매우 큰 영향을 주는 해류로 알려져 있다.

후쿠자와 교수는 제주가 다른 곳보다 빨리 온난화가 진행된 이유로 필리핀 부근 바다의 온난화가 진행되고, 그 영향이 해류를 따라 제주도에 가장 먼저 전해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B>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자연 박물관


    ▲ 뿌리가 드러나도 그 아픔을 우리는 잊고 있다.      ⓒ 김동식
하논분화구는 동아시아의 고기후와 환경 변화, 식생 변천 과정 등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자연의 보고다. 즉 하논분화구의 습지 퇴적물에는 동아시아에 언제 비가 많이 왔는지, 무슨 식물이 살았는지, 지진이나 화산이 있었는지 등의 정보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흥미로운 일이다. 최근에는 미기록 광물인 '남철석'이 국내 최초로 발견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자연 박물관이다.

하논분화구의 가치는 그야말로 소중하다. 제주의 귀중한 자원이 더 이상 방치되거나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가치있는 보존과 복원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후대에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할 화산박물관의 꿈이 지구와 생명, 환경의 소중함과 함께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겨울 해그림자가 등을 떠밀고 있다. 몇 번을 찾아갔을 때마다 가슴에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 안타까움 그리고 서글픔 같은 것이다. 사람이 이 땅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화산의 흔적이 많이 지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습지가 파괴되고 화산 퇴적물이 파헤쳐지고 있다. 그 많던 나무며 들풀·물풀들도 인간의 손길에는 속수무책이다. 잘려 나가고 불에 태워지고…. 수만 년을 이어온 이 아름다운 자연이 불과 500년 만에 제 속살마저 내놓아야 할 지경이다.  쓸쓸한 여행길에 까치가 날아들고 있다...


 

 <찾아가는 길>
제주시→중문관광단지→(국도12호선)→제주월드컵경기장→서귀포여고→외돌개입구→하논길

<주변 가볼만한 곳>
제주월드컵경기장, 걸매생태공원, 삼매봉, 외돌개, 황우지해안, 천지연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