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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단기선교 및 성지순례 여행기

[스크랩] 노아 방주 유적 탐방을 끝내고 산골 학교로

by 서귀포강변교회 2009. 6. 27.
노아 방주 유적 탐방을 끝내고 산골 학교로

  위전겔리 마을 위에 있는 노아방주 유적을 놓고 정말 진짜냐 가짜냐 하는 물음에 대해 탐방하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다르겠다.

  지금으로부터 5-6천 년 전 그 이상에 있었던 방주의 흔적을 100% 고증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오랜 세월 동안 지각의 변동 또 그 흔한 지진으로 그 형체를 정확히 알아낸다는 것이 한계에 부딪혀 있는 상태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여운을 남겨놓은 상태가 성경 고고학을 더 발전시키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어 더 여유로울 수 있다.

  방주 유적 현장에서 한 서너 시간 동안 머물면서 ‘마리아 닐 왓트’가 사비를 드려 만들어놓은 박물관 각종 발굴 전시품과 설명한 자료들을 읽으면서 마음에 이곳이 방주가 안착 유적으로 거의 맞겠다는 심증이 갔다.

  2년에 걸친 탐사 작업에 동원 된 레이저 장비 그리고 과학적인 탐사 접근이 이를 뒷받침해주었다. 발굴에 동참한 박물관 관리인 핫산씨의 증언도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성경이 사실이고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확신도 아울러 섰다.

  혹시 노아 방주를 탐방 여행객이 타고 온 차라도 있으면 덤으로 8km 쯤 떨어진 도로까지 내려갈 심산이었는데 차탈 복이 없는가. 도로가 텅 비었다. 그래 8km 산길을 걷기로 했다.

  어제 아라랏 산 등정 때 오르내린 거리에 비하면 이건 새발에 피다. 그래 오전 중에 노아 방주 유적을 이 잡듯이 다 훑어본 기억을 더듬으면서 나름대로 새로운 뭔가를 생각해보면서 내려온다. 내리막길이라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유젠겔리 산마을 한 가운데 한 학교가 있어 들어가 보았다. 만일 차를 탔더라면 이런 행운은 맞지 못했을 것이다. 전형적인 시골학교이다. 초, 중학교가 통합되어 있는 그런 학교이다.

  운동장에 링에 그물은 없지만 농구대도 서 있고 운동장도 제법 넓다.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막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여느 학교와 같이 아이들이 몰려나온다. 파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표정이 무척 밝아보였다. 학생들은 교복을 입어야 제 모습이 나는 것 같다.

  낯선 이방인 필자에게로 우르르 몰려들어 반갑다고 무언가 재잘대는데 알아들 수 있어야지. 아이들이 먼저 나오고 다음에 젊디젊은 대여섯 분 선생님들이 별관 교무실로 쉬로 온다.

  검은 양복에 단정히 넥타이를 맨 남자 선생님은 이젠 갓 교직에 들어온 햇병아리 선생님 같다. 세 분의 여선생님도 앳된 얼굴이다. 필자를 보고 교무실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같이 교직에 있는 필자로는 호기심 반 동정 반 마음으로 교무실에 들어섰지만 우리나라 60년대 그런 교무실 같다. 네댓 평쯤 되는 좁은 공간에 책상과 의자가 전부이다. 옆에 386급쯤으로 보이는 낡은 컴퓨터 한 대가 달랑 놓여있다.

  젊은 선생님들의 표정이 무척 밝다. 선생님들과 전혀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서로 의사소통이 되어야 얘기를 하겠는데 그냥 마음으로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는 정도이다.

  잠깐 쉬는 시간이라 선생님들의 업무에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일어서려는데 한 젊은 여선생님이 이방인 필자를 위해 언제 준비했는지 차를 한 잔 대접한다.

  한 젊은 교사는 이왕에 온 김에 오후에 우리들에게 영어를 좀 가르쳐 줄 수 없느냐며 통사정을 한다. 모두가 영어 문맹이다. 시간이 있었다면 이들에게 영어며 한국학교의 교육의 우수한 점을 상세히 이야기 할 텐데.

  약간 금발머리를 한 여선생님 미모는 이란 여성들에 비해 훨씬 세련되어 보인다. 이곳 터키도 이슬람 문화권이지만 여성들에게 강제로 히잡 착용을 시키지 않는다. 모든 행동이 자유분방하고 발랄해 보인다. 여자들이 이 정도 되어야 사회 전체 분위기가 밝아지겠는데 이란 시아 이슬람은 너무 강력한 구속력으로 여자들이 꼼짝없이 당하고 있는 것 같다.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운동장에 나와 아이들과 같이 사진이라도 몇 장 찍으려고 하다가 밀려드는 아이들 바람에 큰 곤욕을 치렀다. 여기저기서 포토 포토하면서 찍어달란다.

  벌 떼처럼 몰려든 아이들을 따돌리고 교문을 나서는 데 1-2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 몇 녀석이 ‘풀 풀’ 하면서 끝까지 따라온다. 한 푼 달라는 이들의 근성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가는 곳곳마다 크고 작은 아이들이 풀 풀하고 소리를 지른다.

  누군가 돈을 쑤욱 쑤욱 빼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이렇게 끈질기게 따라붙지. 혹시 마음이 여린 여행객이 불쌍하다고 따라 붙는 몇 놈에게 잔돈이라도 주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는 것이 일쑤이다. 돈을 받은 놈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돈을 받았노라고 자랑이라도 하면 돈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땡벌처럼 달려와 자기에게도 내놓으라고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는다. 어떤 여행객은 옷까지 빼앗겼다는 사례도 있다.

  교문을 한참 나와 도로까지 따라온 녀석들이 댓놈된다. 이놈들은 끝까지 떼거리를 쓴다. 우리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다.

  터키의 산골 학교는 아직은 원시의 티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풀(돈)’ 타령만 빼면 그래도 자연 속에서 천진난만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은 순수했다.

 손에 잡힐 듯한 아라랏산


 노아 방주 유적 박물관 뒤뜰에 세워진  이 땅에 평화가...

 

 각종 유적 전시 자료


 하산하다 바라 본 방주 유적 모습


 터키 산골학교 모습


 산골학교 선생님들과


 반갑다고 손짓하는 학생들


 필자를 끝까지 따라오며 풀풀하고 있다.


 무척 표정이 밝은 선생님




 

출처 : 페르시아 사랑
글쓴이 : 주페르시아 원글보기
메모 : 노아의 방주를 통해 이 시대를 조명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