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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단기선교 및 성지순례 여행기

[스크랩] 노아 방주의 또 다른 이야기들

by 서귀포강변교회 2009. 6. 27.
노아 방주의 또 다른 이야기들

  성경의 기록대로 방주가 아라랏산으로 올라가 머물렀다면 지금의 아라랏산에서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 이 질문은 매우 오래전부터 있었으며, 방주에 대한 기록은 주전 275년 바벨로니아 시대부터 로마시대, 중세시대, 초대교회를 거쳐 15세기 마르코 폴로에 이르기까지 여러 소설, 역사, 교회의 설교와 강론에서 자주 언급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19세기에 들어서 아라랏산을 탐험한 사람들의 자취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있다. 노아방주를 발견했다는 기록은 고대와 중세의 많은 문헌에 나타나 있다.

  먼저 BC 275년경 베로수스는 바빌로니아라는 역사책에서 '아르메니아에 있는 고르디엔 산맥에는 아직까지 배의 일부분이 남아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역청의 조각들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부적으로 사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요한 크리소스톰은 ‘노아의 방주가 아르메니아의 산에 있다’라고 증거하기도 했다.

  15세기말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는 아라랏산 근처를 통과하면서 '아르메니아 중앙에 아주 크고 높은 산이 있는데, 그 위에는 노아의 방주가 남아 있다고 하면서 이 산을 방주의 산이라고 불리고 있다' 라고 기록하였다.

  1647년 아라랏산 근처에 살았던 아담 올리어리우스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방주 잔해들은 단단하게 되어 그들은 완전히 석탄처럼 보인다. 우리들은 메디아 페르시아에 있는 샤마키에서 검고 단단한 나무 십자가를 보았는데, 그 곳 주민들은 그것이 방주를 만든 나무로 확신하였다.'라고 말 하였다.

  1856년경 노아의 방주를 믿지 않는 세 명의 영국 과학자들과 두 명의 아르메니아 안내자들이 방주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아라랏 산에 올랐다. 방주와 비슷한 물체를 아마도 발견되었던 것 같은데, 영국과학자들이 현지 안내자들에게 사실을 그대로 보고하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몇 년이 지난 후 당시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던 등반 안내원인 아르메니아인 중 한 사람과 등반에 참가했던 영국인 과학자중 한 사람이 자기들이 등반 당시 노아의 방주를 찾았었다고 보고했다.

  19세기의 유명한 영국의 학자이며 여행가인 제임스 브라이스 경은 방주에 관한 대규모의 자료수집과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 후 그는 방주가 아라랏산 어딘가에 보존되어 있다고 확신케 되었다. 결국 1876년 그는 아라랏 산 정상까지 올랐고, 해발 약 4천 미터 수목 한계선에서 4 피트나 되는 손으로 만든 나무도구 조각을 발견했는데, 그는 이를 방주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1차 세계대전 중 아라랏산 상공을 비행했던 한 러시아 조종사가 자신이 방주를 보았다라고 러시아 황제에까지 보고 되어, 그 장소로 대규모의 조사단이 파견되었었다. 파견된 조사단은 배를 발견하고 보고서까지 만들었으나 그 결과가 황제에게 보고되기 전에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그들의 보고서는 분실되었고 그 조사대의 군인들도 흩어졌다. 그들 중 몇 명은 미국에 정착케 되었는데, 그들의 얘기를 들은 많은 친척들과 친구들이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방주를 발견한 사람 중 가장 유력한 증거를 찾은 사람은 프랑스 사업가 페르난데 나바라(Fernand Navarra)이다. 그는 방주 사진을 촬영했을 뿐 아니라 얼음 강에 잠긴 방주에 로프를 타고 내려가 나무 일부를 떼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 방주조각은 이집트 농무성, 카이로 박물관 고고학부, 스페인 산림연구소 등에 보내져 고고학 및 산림학적 방법으로 그 나이가 추정되었는데 그 나무의 나이는 당시로부터 5000년 내지 6000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노아홍수의 시기와 성경적으로 유사하며, 혹 연대 추정이 부정확하더라도 잣나무로 밝혀진 그렇게 오래된 나무가, 수목한계선 위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노아방주의 실체를 증명하는 유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방주를 목격하거나, 사진을 촬영하고, 자료를 수집한 사람들은 현재까지 통틀어 약 200명에 다다르며 이들의 증언에 따른 방주의 모양, 보존상태 등이 거의 비슷하다. 또한 아라랏산을 수차례 인공위성에 의해 촬영되었으며 방주 목격자들의 증언과 일치하는 방주모양이 여러 차례 촬영되기도 했다.

  1987년부터는 터키 정부에서 아라랏산에 노아 방주가 있는 지역을 공식 지정하고 고대 유적지로 많이 개발해 놓았다.

  아라랏산 주변(현재의 터키, 이란, 아르메니아)에 살던 부족들은 방주 주위에 악령이 있어 방주로 접근하는 사람에게 재앙을 내린다는 오랜 전설이 있어서 이 지역을 탐험하는 사람들을 막거나, 길 안내를 꺼리는 전통이 있어서 방주 탐험을 어렵게 한다고 한다.

  또, 방주는 수천 년 동안 산속에 묻혀 있어서 그 형태가 변해서 배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고, 아라랏산 정상 부근의 만년설에 완전히 묻힐 경우 찾아내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무엇보다도 방주탐험을 어렵게 하는 것은 방주가 아라랏산 어디에 있는지 성경을 비롯한 어느 자료에도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주 탐험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창조과학회의 학자들을 비롯한 세계 도처의 기독교 과학자들과 탐험가들의 노력이 계속된다. 고고학과 역사적으로 중대한 아니 지구의 과거와 미래를 통틀어 가장 큰 사건의 증거를 찾는 탐험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라랏 산 모습


 멀리서 잡은 노아방주의 잔해 유적


 노아 방주 유적 중 닻으로 사용했던 돌


 노아 방주 현장 배 위에 현재 모습

현재 잡초와 흙으로 덮여있다.

 노아 방주 여러가지 고증 자료 전시


 노아 방주 뱃머리에서 바라본 전체 모습


 노아 방주 뱃머리에서 아라랏산을 배경으로


 땅속에 묻힌 노아 방주 전체 윤곽도


 하산을 하다 바라본 노아 유적 모습


 레이다 장비로 방주를 탐험한 내용


출처 : 페르시아 사랑
글쓴이 : 주페르시아 원글보기
메모 : 노아의 방주를 통해 이 시대를 조명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