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드라’는 평야지대의 구릉에 위치한 소아시아의 중요 도시였으나, 지금은 작은 마을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투사라이’에서 오른쪽으로 4km 떨어져 있는 계곡의 구릉지대에 있다. 루스드라는 32km 떨어진 이고니온과 96km 떨어진 더베를 연결하는 도로에 위치하였으며 디모데의 고향이다. 그 위치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1885년 ‘스테렛’(J.R.Sterrett)이라고 하는 지리학자는 루스드라의 위치를 루가오니아 지역의 이고니온에서 약 29km 떨어진 터키의 마을 ‘하툰사라이'(Hatum Sarai : 숙녀의 저택) 북쪽, 커다란 언덕으로 보았다. 요즈음 터키 현지의 하툰사라이 지역에서는 2km 정도 떨어진 곳에 교회 터가 남아 있는 휘위귀 마을을 루스드라로 보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더베에서 루스드라가 90km이상 떨어져 있기에 이고니온 남쪽에 1001개 교회가 있는 지역인 마덴세히르(Madenshir)로 주장하기도 한다. 루스드라는 ‘아나톨리아’의 ‘소금 호수’의 남서쪽에 있었던 평원, 루가오니아에 있는 고대 유적지이다. A.C. 6, ‘아우구스투스’(Augustus)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함께 루스드라를 로마의 식민지로 지정하였다. 고대 역사에 있어서 루스드라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도시였다. 루스드라는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시대에 들어와서 농경 정착지로만 존재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유적 구릉들에 의해 식별되는 인접한 다른 초기의 많은 촌락들과 비슷한 것이었다. 페르시아인들과 희랍인들이 지배하던 시대의 루스드라의 흥망성쇠는 루가오니아지방에 관한 일반적인 언급들로부터 추측될 수 있는데 루가오니아는 처음에는 셀류커스 왕조에, 그 다음에는 아칼루스 왕조에, 마지막으로 모라인에게 복속되었다. A.C. 6, ‘아우구스투스’(Augustus)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함께 루스드라를 로마의 식민지로 지정하였다. 루스드라의 후대 역사는 더베의 역사와 유사하다. 이 두 도성은 로마에 복속된 왕 ‘코마게네’의 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 후 ‘아트니누스 피우스’는 이 두 도성을 길리기아에 편입시켰다. 이 유적지의 후기 역사는 모호하다. 루스드라 주교들의 이름을 수록한 명판들만 남아 있다. 이 지역은 두 개의 커다란 강이 교차하는 후미진 곳이다. 따라서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헬레니즘의 루스드라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루스드라의 유적지는 1820년에 발굴하였는데, ‘하툰사라이’에서 약간 북쪽으로 떨어진 구릉지대라고 불 수 있다. ‘졸데다’ 또는 ‘조르들라 휘이크’등으로 다양하게 언급된 이 구릉은 B.C. 3000까지 그 연대가 소급되는 지층들을 지닌 곳으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요즈음의 루스드라라고 하는 희귀 마을은 마을 전체가 양을 치는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는 시골이며, 외지의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한적한 곳이다. 이 마을에는 초대 교회 때, 교회로 사용했던 두 군데의 동굴 교회가 있다.
루스드라에 온 바울은 나면서부터 발을 쓰지 못하는 앉은뱅이를 보고 그에게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그에게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하여 고쳐준 표적이 나타났다(행14:8).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를 두 번째 방문하면서 길리기아 관문을 거쳐서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이 길을 따라 여행했을 것이다(행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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