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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단기선교 및 성지순례 여행기

[스크랩] 967명이 장렬하게 산화한 최후의 결전지 "마사다"

by 서귀포강변교회 2010. 1. 23.

"마사다" 

엔게디 남쪽 16km, 사해 중부 서안 2km 지점에

해발 450m, 동서 폭 350m,  남북 길이 570m

아래 사진과 같이 사방으로 고립된 천혜의 자연 산악 요새.

주전 161-142년 대 제사장 요나단 마카비 때 처음으로 요새 구축.

또한 해롯은 유사시를 대비해 주전 36년부터 30년에 걸쳐

이중 성벽, 방어용 탑, 창고, 저수조, 병사, 무기고, 목욕탕, 3층의 호화스런 궁전 등을 지음.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의 티토장군에게 함락된 후

유대 열심당 967명이 최후까지 결사항전을 각오하고 이곳 마사다에 진지를 구축함.

로마 제 10군단은 천연요새인 마사다를 함락시키지 못하다가

3년 동안이나 토사를 쌓은 후에야 점령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함락 직전까지 결사항전으로 마사다에서 싸우던 최후의 967명은

비굴한 항복을 하는 대신 차라리 죽기로 하고 차례대로 서로를 죽여 자살을 하고 만다. 

철두철미한 유대정신과 불굴의 신앙의지로 최후의 1인까지 항복을 거부하고 죽어간 마사다의 유대정신은

오늘날 이스라엘 신병 군인들의 정신적인 훈련의 마지막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사방으로 고립된 천연요새인 마사다

뒤로 사해가 희미하게 보이며 중간 지점에 로마 10군단이 쌓은 토벽이 보인다.

 

 서쪽의 계곡

이렇게 깊은 계곡에 3년동안 토사를 쌓아 마사다로 통하는 정복로를 구축한다.

 

 마사다를 점령하기 위해서 머물렀던 로마 10군단 진영의 흔적이 남아있다.

 

 마사다를 향해 화살과 창을 날렸던 당시의 로마군영의 전쟁무기

 

 마사를 향해 돌대포 알을 발사했던 로마 군영의 돌대포

 

 위의 돌대포에 장전하여 발사했던 돌대포 알(배구공 크기만하다)

어떻게 저렇게 큰 돌 대포알을 300~400 m나 날려보낼 수 있었는지~

 

 마사다를 공격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인 서북쪽의 로마군의 공격진지.

 

 로마 10군단이 3년동안 모래와 자갈과 흙을 쌓아서 마사다 정복 통로를 구축했다.

마치 당태종 이세민과 싸웠던 고구려의 안시성 싸움을 연상하게 한다.

 

 마침내 3년동안 마사다로 통하는 토사를 완공하고 그 토벽을 따라 마사다를 함락시킨다.

 

지금도 마사다는 2000년 전에 로마군이 쌓은 토사의 길을 따라 마사다 정상에 오르게 된다. 

 

 마사다 정상의 서쪽 문

 

  마사다 정상에 세워졌던 37개의 망루 중의 하나

 

 마사다 정상 방어용 돌 포탄

 

마사다 모형도

 

유사시 피신할 목적으로 마사다 북쪽 끝지점의 천혜의 요새에 구축한 3층의 해롯 왕궁

 

 마사다 정상에서 동쪽 사해쪽을 등지고, 뒤로 사해가 펼쳐져 있다.

 

 마사다 북쪽 끝 지점에서 다 함께.

저 뒤 절벽 아래 해롯 궁전이 있다.

 

당시의 채색 벽이 그대로 남아있다.

 

 

 북쪽 해롯 궁전의 모자이크 바닥

 

온돌 구조의 목욕탕 사우나 시설의 흔적

 

 목욕탕의 모습과 채색 벽의 모습

 

 빗물을 받아 동편 물 저장고로 흐르게 하는 수로

 

 동편 물 저장고 - 수로를 따라 흘러온 물은 이곳에 모아진다.

 

 당시 마사다에서 발견된 토기 항아리

 

 마사다 동편 사해쪽으로 내려가는 뱀길

 

케이블카 타러 가는 길 - 뱀길대신 지금은 케이블카로 내려간다.

 

 동편 사해쪽엔 케이블카로 마사다를 오르내린다.

 

 마사다의 관문인 케이블카 선로

출처 : 바람 바람 신바람
글쓴이 : 신바람 원글보기
메모 : 1998년7월, 역사의 현장인 마사다에서 느꼈던 감격이 떠오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