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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진리를 소개합니다

[스크랩] 무엇이 당신의 삶을 이끄는가 ?

by 서귀포강변교회 2010. 10. 11.
 

 목적이 이끄는 삶 시리즈 (3)


무엇이 당신의 삶을 이끄는가?

(사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즉 심지가 견고하다는 것은 성실, 그리고 평강, 의뢰한다는 것은 믿음. 그러니 믿음과 성실과 평화 이것이 함께 같이 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리고 마음에 평안이 있는 사람은 가장 무서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환경과 조건을 초월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행복으로 가득찬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론) 모든 사람은 무엇인가에 이끌려 살고 있다. “이끌다” (drive) 라는 동사는 “길을 인도하다, 통제하다, 방향을 제시하다”라는 뜻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든, 못을 박든, 골프 공을 치든 우리는 그 순간 그것을 인도하고, 통제하며, 그것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의 삶을 이끌고 가는가?

 ‘목적이 이끄는 삶’의 타이틀을 영어로 ‘purposen driven life’라고 합니다. 중학교 때 영어공부 할 때 drive, drove, driven. 그러니까 driven은 과거분사로써 ‘끌려가는~’ 목적에 이끌려가는 삶이다. 인생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drive) 할 때 내가 운전하는 것에 의해서 이 자동차는 끌려갑니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운전하느냐에 따라서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인생을 누가 운전(drive)하느냐?에 따라서 가는 것이 나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그것이 오늘 주제입니다. 보통 세상사람들이 이끌어가는 다섯가지가 있습니다.   


1. 세상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보편적 다섯 가지


1) 죄의식에 의해 끌려 다닌다 (guilt:윤리적 법적으로/ 죄의식)

  영어로 guilt 라고 하는데 결국 일부 사람들은 자기들이 저지런 죄나 잘못된 행동이나 과거에 어떤 습성에 포로가 되어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창 4:12)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이것을 누구에게 한 말씀 같습니까? 가인을 두고 한 말입니다. 동생 아벨을 쳐죽였습니다. 엄청난 살인 죄를 저질렀습니다. 결국 죄의 포로로 일생을 살아가게 되어 있는 모습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 일생의 큰 실수 죄, 어떤 사람은 이혼을 한 것이 평생에 그것이 죄의식이 자기를 괴롭힙니다. 거기서 빨리 헤어나와야 합니다. 또 낙태를 했다! 또 남이 모르는 어떤 죄를 지어서 마음 가운데 stress로 인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삶을 사는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어떤 죄를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새롭게 살아가게 하는 전문가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 32: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어떤 캐톨릭 신자가 낙태를 했습니다. 캐톨릭에서는 절대 낙태를 금기시합니다. 개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 살 된 여자 아이와 더 어린 애기를 가진 가정을 심방했습니다. 신부님이 ‘아기가 두명이군요!’ 질문했는데 엄마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세 살된 아이가 갑자기 ‘엄마는 거짓말 장이!’ 하면서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거짓말쟁이!’ ‘우리는 셋인데 엄마는 둘이라고 하는거야!’ 그 자리에서 엄마는 실신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까 세 살 먹은 아이와 한 살된 아이 사이에 한 아이가 더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 엄마에게는 큰 죄의식(guilt)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죄책감 때문에 늘 고통을 당하는데 그 날도 큰 아이가 그것을 이야기할 때 죄책감으로 까무러쳐 버린 것입니다. 그랬을 때 나중에 신부님이 그것을 알고 신부들이 같이 회의를 하고 이를테면 회의를 거쳐서 고해성사를 받고 하나님께서 그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을 믿도록 하고 그 뱃속에서 죽은 영혼을 위해서 특별미사를 드려줬고 그 죽은 아이의 이름을 주어주고 죽은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의식을 드리고 엄마의 죄책감을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주는 것으로 그 가정의 죄의 문제를 회복시켰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굉장히 우리에게 의미하는바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캐톨릭 차원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이 아무리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한다고 할지라도 원튼 원치 안튼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그 죄에 포로가 되어서 우리의 남은 생애가 하나님 앞에 불쌍한 운명이 되지 않도록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써 성찬으로써 모든 죄책에서 자유함을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원한과 분노에 의해 끌려 다닌다 (resentment and anger)

상처와 원한으로 분노를 샄히거나 억누르고 억누를 때 그것이 암이되고 아니면 반대로 그것을 막 그 분노를 터뜨리고 폭발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잘되려면 그 분노와 원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특히 어려서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 학대, 폭력을 당해서 평생 그 마음에 분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원한.

 어느 고교 동창생이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데 너무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시기와 원한 때문에 그 동창생을 죽이고 그 애 둘을 죽여버렸습니다. 같이 놀이하자고 눈을 가리고 술래잡기 하면서 목을 졸라서 결국 세 명을 죽인 사건이 오래 전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원한과 분노가 얼마나 엄청난 파멸을 가져오는가? 를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보아 옵니다. 히틀러가 히틀러 된 것은 자기 어머니가 유태인 남자와 잠자리, 바람을 피는 것을 것을 목격하고서 분노와 원한을 품고 유태인들을 6백만이나 죽이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원한과 분노가 어마 어마한 영혼을 빼앗아 간 것입니다.


(욥 5:2)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여러분, 다른 사람이 내게 해끼치는 일을 했다고 해서 비참한 인생을 살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 원한 쓴뿌리를 뽑아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두려움에 의해 끌려 다닌다 (fear)

두려움은 스스로를 감옥에 갇히게 하는 감옥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망하게 하는 결정적인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두려움과 게으름입니다. 두려움은 정신적인 것이고, 게으름은 실제적인 것입니다. 대개 보면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이 대개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게으름에 포로가 됩니다. 두려움과 괴로움을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로써 다 청산해야합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하면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꾸 두려운 이유가 왜입니까?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해서 그런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을 너무 너무 가까이 하고싶은 존재가 됩니다. 엄마, 아빠가 왜, 두렵습니까? 그것은 근본적으로 사랑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내가 뭔가를 할려고 하면 두렵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좋으면, 이 일 하다가 망하면 어떡할까? 그런 두려움의 포로가 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세요! 그러면 두려움이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갈 줄 믿습니다! ‘좋아하면! 성공한다! 사랑하면 더 성공한다!


4) 물질에 의해 끌려 다닌다 (materialism)

 물질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한 것이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보는 눈이 한국에서는 가장 첫 번째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가장 큰 관심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돈생돈사’

 지금 사람들이 돈 때문에 전부 돌았습니다. 돈은 ‘돌게한다’고 했습니다. 원래 돈은 돌고 돌아야 하는 것인데 돈만 보면 끌어안고 미쳐버리니까 돈은 돌아버리게 합니다. 이 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닌데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이용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다. 저와 여러분이 돈이 목적이 되지 말고 하나님이 목적이 되고, 하나님의 목적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돈은 목적을 이루는 수단입니다.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쓰면 거룩한 돈이 되고 악한 목적으로 쓰면 악의 병기가 되는 것이 돈입니다.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은 범죄가~ 타락이 부정 부패가 횡행합니다. 우리나라의 10대과제 중에서 첫째가 부정부패입니다. 진정한 행복과 가치, 안전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안전보장해 주시는 진정한 관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성경 자체가 재물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섬기지 말라는 것이지, 재물이 나를 섬겨야지 내가 재물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겨야지, 돈을 섬길 수 없다. 물질을 섬길 수 없다. 적어도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이 분명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돈이 여러분을 따라다니도록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5) 타인의 인정에 의해 끌려 다닌다 (approval)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것이 항상 생각의 관심사가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는 저도 자유하지 못합니다. 성도들이 나를 어떻게 인정할까? 오늘 설교가 사람들의 마음에 흡족했을까? 아직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솔직히....

 은혜 받았다고 하면 어깨가 올라가고, 은혜 못 받으면 절망하고 내가 부족해서~ 탄식하고 죽고싶고....

  오늘은 사모에게 인정 받을 수 있을까? 누가 나한테 한 어떤 말 한마디 가지고 밤에 잘을 못잔다. 이것이 극복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너를 좋아 할 수는 없다. 너도 싫은 사람이 있듯이 누군가 너를 싫어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항도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한다. 항상 너는 너로써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나님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칭찬을 하던지 흉을 보던지~ 당당하게 살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지나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개 자기 스스로 인정받지 못하겠거니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더 좋은 것으로 치장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사람을 인정하고 평가하고 높여주고 그러지 않습니다. 남을 그렇게 의식할 필요 없습니다.


2. 목적이 이끌어 가는 삶의 다섯 가지 유익


1) 삶의 의미를 부여 한다 (meaning)

비극은 죽음이 아니라, 무의미와 무목적입니다. 의미가 있으면 목숨도 걸게됩니다. 에베레스트산에 올라가다가 얼어 죽고 떨어져 죽고, 남극과 북극에서 극한 상황에서 물속에 들어갑니다. 안들어가도 될 것을 ~ 에베레스트산이나 히말라야 산에 죽을 힘을 다해서 올라가는 사람들은 그 산을 정복하는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의미가 발견되면 모든 것을 다 희생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헛된 것에 목숨을 걸지 말고 정말 목숨 걸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번지 점프하다가 죽은 사람이 수천명이 된답니다. 전세계적으로~ 우리가 생각할 땐 별거가지고 목숨을 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끈이 풀어져서 죽은 경우가 여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 49: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히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정녕히 나의 신원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세상에 하나님이 없는 것은 다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욥 7:6)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내는구나』

 이 모두가 무의미하고 허무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요 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여러분, 예수님이 왜, 그렇게 당당하게 살았습니까? 무의미가 아니라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적인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삶의 목적과 의미가 되게 해야합니다.

(렘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여러분, 장래와 소망 희망과 미래가 있을 때 우리는 삶의 희망과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가 바로 저와 여러분의 희망이요 미래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천국이 우리의 미래요 희망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에 부질없는 인생같아도 의미를 가지고 하루 하루를 멋지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엡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우리에게 그분이 분명할 때 삶의 의미가 분명한 것입니다. 예수가 내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있을 때 그것이 목적이 될 때 우리의 삶 모든 것은 의미가 있어지는 것입니다. 고통조차도 실패조차도 우리에게는 가치가 있어질 것입니다.

2) 삶이 단순 해진다 (simply)

목적이 분명해지면 삶이 단순해 집니다.  목적은 모든 활동의 유무를 결정합니다. 우리에게 목적이 분명할 때 다른 것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 내 삶을 이끌어간다면 왠만한 것은 그냥 쉽게 넘겨집니다. 포기합니다. 분주하고 복잡한 인생이 아닙니다. 왜, 수도사들이 수도원에 들어가서 단순한 삶에 기쁨과 만족을 느낍니까?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예수를 열심히 믿는 사람을 들어서 세상 사람들은 ‘교회 밖에 모른다!’라고 하는데 그건 감사한 것입니다. 오히려 단순한 것입니다. 복잡한 세상에 얽매여 사는 것이 얼마나 골치 아픕니까? 세상적으로 보면 불쌍한 것같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이 위대한 삶인 것입니다.    

(잠 13:7) 『스스로 부한 체 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 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참평안이 있는 것을~

(사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3) 초점을 맞추게 된다 (focus)

  포커스, 집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과 에너지는 무한이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는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할 때 성공합니다. 선택과 집중은 모든 구조조정의 요체가 되는 것입니다.

(엡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주의 뜻에다가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목적이 분명하고 그것보다 강력한 삶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여러분, 경주하는 사람이 옆에 신경 쓰는 것 보았습니까? 오직 앞에 있는 것을 향해서 뛰어가기 때문에 훨씬 더 생산성이 높습니다. 집중하니까. 공부도 잘하는 애들은 집중합니다. 못하는 애들은 산만하고 딴 짓을 많이 합니다. 집중을 하지 못합니다.

 레이저 광선이 왜, power가 있습니까? 집중하기 때문에 ~ 초점이 너무 너무 분명합니다.


4) 삶의 동기가 유발된다 (motivates)

열정을 있게 합니다. 열정적으로 뜨겁게 살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목적이 분명하니까 가만 앉아 있지 못하게 합니다. 게으르지 않습니다. 열정적이라는 것은 신(神)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열정이 오히려 우리를 더 건강하게 합니다. 인간은 과로가 원인이 되어 죽지 않습니다. 그의 죽음은 다름아닌 ‘낭비와 번민’이라고 데일카네기가 말했습니다.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힘들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분산되니까 이것이 스트레스가 되어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5) 영생을 준비할 수 있다 (eternity)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런 성과도 기록은 깨어지고 명성은 사라지고 공로는 잊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을 남기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기억되기 위해서 태어나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을 준비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잠시 천국 가는 길에 지구라는 횡성에 들려서 관광 여행 중에 있습니다.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진짜 이 세상을 방문하고 사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천국입니다. 안 믿어지십니까? 


(롬 14:10, 12) 10『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그때 우리의 인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지금 지나가는 한 단면을 보고 아! 저 사람 참 멋지게 사네! 못사네!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설 때, 과연 영원한 것을 위해서 얼마나 살았느냐? 영원한 것은 영원한 것을 위해서 사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영원한 영생을 위해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밀라노 대성당에 문이 세 개가 있는데 첫 째 문은 장미꽃과 함께 모든 즐거움은 잠간이다. 라고 쓰여 져 있습니다. 둘 째 문은 십자가와 함께 모든 고통도 잠간이다. 라고 쓰여 져 있습니다. 세 번째 문에는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 라고 쓰여 져 있습니다.


3. 마지막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할 준비하라


1) “너는 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엇을 하였느냐?”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과연 이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가졌느냐? 이것을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이것이 백보좌 심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백보좌 심판에서 면제받았습니다. 지옥이냐? 천국이냐? 질문을 받게 되고 그 다음에~

2) “내가 너에게 준 것들로 너는 무엇을 하였느냐?”

관계와 함께 성취입니다. 생산.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이라는 자원을 가지고 너는 과연 어떤 목적을 위해서 사용했느냐? 너만 위해서 살다가 다 낭비했냐? 아니면 내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네가 모든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잘 사용했느냐? 한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반드시 인과응보의 원리는 마지막에 적용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질문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착하다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충성된 종아! 라는 것이 무엇을 남겼느냐? 라는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질문에 분명한 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두 질문에 분명하게 당당하게 답변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운명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목적을 따라 사는 것은 참 평화로 가는 길이다.

어지럽고 혼탁한 이 세상에서 참평안을 목적과 함께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질문) 가족과 친구들은 내 삶의 원동력을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 나는 진정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 두 가지의 질문이 관계와 생산입니다. 관계는 예배. 그 다음엔 생산이 사역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곳에 하나님을 섬기시든지 예배와 사역에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누리시고 그리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모든 축복을 모든 달란트와 재능을 주님을 위해서 멋지게 사용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예인이할배
글쓴이 : Θ의形像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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