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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왜 주일에 예배하는가? 주일성수와 성탄절의 유래

by 서귀포강변교회 2006. 10. 2.
제목 :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친구중에 주일성수를 토요일날 드리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일요일에 주일을 지키는 사람들을 모순이라고 지적하면서
저더러 성경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겠다면서 시간을 내라고 하더군요.

그친구의 주장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으므로 성수주일은 토요일이 된다고, 그리고 일요일은 이교도가 믿던 태양신을 숭배하던 날이라고 주장합니다.

 제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주일을 일요일에 드리는 걸로 알고 있다고하니 그친구는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더군요. 또 크리스마스는 태양신의 탄생일인데 왜 예수님의 탄생을 그날 드리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이에대한 정확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답변

좋은 질문 감사드립니다.
구약 성경에서 조차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호2:11)라고 선언하셨으며 사실 구약의 모든 절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자 사건으로 폐하여졌습니다.(갈4:10~11)

 

그래서 오늘 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옛언약(렘31:31~33; 히8:8~12 참조) 아래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눅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아래 있습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 '하나님의 교회'(안산홍 증인회)등 에서는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 주장하는 것도 듣는데 일고의 가치도 없는 아직도 옛언약의 그늘에 살고자 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안식일은 과거의 율법 속에서 강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마가복음 2:23~28에서 말씀하시기를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라고 말씀하시면서 요한복음 5:16~18에서도 같은 교훈을 주십니다.

오늘날도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면 짐승의 제사도 다 그렇게 드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짐승의 희생 제사도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오늘 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 즉, 승리의 날에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오시는 날까지 전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고전11:26)
이것은 로마의 태양신을 섬기는 것에서 전례된 것이 아니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부분입니다.

어떤 사람들, 특히 잘못된 교리로 무장된 사람들과는 논쟁을 해야 마음만 상하고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딤전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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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관한 것은 성경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지적은 바로 잡아야 할 신앙의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음의 글을 참고 하십시오...

크리스마스 어떻게 볼 것인가?
크리스마스 축제를 지키는데 논쟁의 여지가 있는가?, 이종배 (성경 통신교육원 출판부, 1991), 1-40.

Ⅰ. 서 론

1. 연구의 목적
왜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은 성경에 없기 때문이다" 라는 단순한 답변으로 우리는 그동안 후배 신앙인들에게 일반적으로 말해왔다. 사실 그것보다 정확한 답은 없을 것이다.
1990년 5월호 '참빛'지에서 조준형의 "환원의 넋두리"라는 제목의 글 속에서 "평범한 크리스마스를 그저 선생님들의 얼버무림으로 보내게 된다"는 고백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다.
사실 현대의 논리적 사고 속에서 성장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이 답변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과학과 철학 등 이성의 학문은 "왜"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여 끝없이 "왜"를 반복하면서 발전해 간다. 이러한 일반적인 논리체계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신앙의 어떤 부분들조차도 같은 입장에서 소화하고자 덤벼든다. 분명히 신앙은 인간의 이성적 논리로만은 납득될 수 없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어떤 사건들조차도 인간적 합리주의에 더 충실하게 해석하려고 한다. 그 흐름이 "현대신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을 이끌어 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과격하게 말한다면, 감히 인간의 완악함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 하심에는 "왜" 라고 하는 물음이 있을 수 없다. 어떠한 사랑이 진실이라고 말할 때에 거기에는 더 이상 "왜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은 질문으로서의 설득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로 이끌어냈는가"라는 말로 끝없이 대들었고 결국 그러한 자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만 '어떻게 사랑하셨는가'에 감격하던 사람들만이 축복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하나님이 인간을 왜 사랑하시는가" 거기에 대한 답변은 하나님이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거저 베푸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입장은 분명해진다. 하나님은 인간의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신다고 했다. 그렇다면 후배 신앙인들이 "왜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이러 이러한 것들을 하지 말라 하느냐?"는 질문에도 조금은 성의 있는 답변을 마련하여 혼란에서 저들을 자유케함이 사랑일 것이다. 특히 "하지 말라"는 어떤 주문은 더욱 역효과만을 거둘 수 있는 소지가 있으므로, 일반 교회 같으면 있지도 않을 신앙의 갈등을 우리가 친절히 풀어줌이 조그만 사랑의 실천일 것이다.
매년 소위 크리스마스 절기가 되면, 이것을 '지켜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술렁임을 본다. 일부에서는 비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데, 무시해 버리자니 다른 교회들이 색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망설임은 거기에 대한 확고한 지식과 소신의 결여에서 비롯되어지는 것이다. 어떤 일에든지 확신이 있는 자는 그것을 행함에도 망설임이 없다. 적어도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만큼은 망설임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이 졸고(拙稿)가 독자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 연구의 범위와 구성
어떤 글이 아집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것이거나, 분풀이 식의 독선으로 이루어진다면 가치성이 결여될 것이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솔직히 그러한 두려움이 앞선다. 오늘날의 기독교 세계에 있어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원에 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는 듯 싶다. 그러한 이유에서 반대입장의 연구는 더우기 찾아보기 어렵다. 이 이야기는 다른 말로 모든 인류, 특히 기독교 세계의 사람들이 그만큼 크리스마스에 익숙해 있다는 논리와 함께 이러한 연구에 대한 자료가 희귀하다는 말도 된다. 사실 크리스마스의 기원에 대한 반증(反證)자료가 전무(全無)하다시피 한 상태에서 객관성이 결여된 넋두리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시발(始發)되어야 한다고 믿는 까닭에 무엇보다도 성경만이 가장 확실한 자료라고 믿는다.
그 동안 나름대로 여기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다가 James L. Denison의 저서 "The History of Christmas"(크리스마스의 역사)를 받아 들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사실 이 책을 그대로 번역하면 알량한 연구물 보다 훨씬 훌륭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분량으로 봐서 다음에 기회가 주어지면 소책자로 내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되어서 우선 이 책을 중심으로 해서 날짜의 기원과 크리스마스 풍습의 연원(淵源)을 살피고 파급효과를 생각한 다음 결론을 짓는 방향으로 개진(開陣)하고자 한다.


Ⅱ. 본 론

1. 탄생의 시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이 서기 1년12월 25일이라고 하는데 거의 의심을 갖지 않는다. 만약에 열 사람을 상대로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묻는다면 열 명 모두이거나 혹은 아홉 명은 이와 같은 답변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렇게 대답하느냐?'고 하면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탄생의 날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정확한 연도, 월, 일, 그 어느 것도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기 1년 12월 25일을 성경과 역사 속에서 살필 필요가 있겠다.

(1) 우리가 소위 주 후 몇 년이라고 쓰고 있는 서력기원이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정확하게 계산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죽은 몇 세기 후부터 정확하게는 7세기부터였다. 로마의 학식 있는 수도사인 '디오니시우스(Dionysius)'로 생각되는데, 그는 적어도 '역사를 세는 중심점을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탄생을 서기 1년으로 지정했다. 이것은 754년 로마의 기초로부터 연대가 계산되어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시대의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디오니시우스'가 기원 연도를 설정하는데 있어 최소한 4년 정도를 실수했다는데 동의한다. 그 이유로써 그리스도를 찾아 죽이려 했던 "헤롯 대왕"(King Herod the Great)이 현재 B. C. 4년으로 부르고 있는 첫해 4월 가까이에 죽었고, 그때에 그리스도는 그의 부모와 함께 이집트에서 적어도 6개월에서 3살까지의 기간 동안 있었다고 생각된다.'이러한 상황에서 유추할 때 B. C. 7년에서 4년 사이 어느 때 그리스도는 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J. L. 데니슨은 주장하면서 그러한 이유에서 탄생의 연도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서기 1년은 아니라고 본다고 주장한다. 물론 탄생의 연도에는 그 밖의 다른 의견들도 없지 않다.

(2) 그리스도가 탄생한 달은 과연 추운 12월인가?

현재의 12월은 고대 히브리 종교력으로 제 9월인 "기슬르월(참고 느1:1)" 하순이거나, 제 10월인 "데벧월(참고 에2:16)" 초순에 해당된다. 성경적으로 이 달들의 기후를 다루고 있는 두 곳을 참고해 보자. 예레미야 36장 22절에 "때는 '9월'이라 왕이 겨울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피운 '화로'가 있더라" 여호야김 왕은 겨울별장에 있었고 그는 따뜻한 열이 필요해서 '화로'가 있었다는 기록이다.
다른 하나는 에스라 10장 9절에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이 3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9월 20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전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를 인하여 '떨더니'"했고, 13절에는 상반절에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춥고 비오는 계절은 '불월'(참고 왕상6:38), 즉 현재의 10월 하순에 시작하여 여러 달 계속되고, 현재의 12월경에는 밤에 종종 서리가 내린다고 한다.

장로교의 유명한 성경 주석가인 "알버트 반즈(Albert Barnes)"도 "예수님의 탄생의 시기는 현재의 12월과는 매우 다르며 겨울의 어느 달이 아니라 오히려 여름이 더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러한 이유를 유대지방의 겨울 날씨는 매우 춥고 험악해서 목자들이 들판에서 양을 지키며 밤을 새기에는 부적합하므로 누가가 기록하는 것처럼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눅2:8)"라는 말씀과 현재의 12월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즈씨는 유대의 목자들은 여름철에 그들의 양들을 이끌고 목초지를 찾아 산간이나 사막지역을 다니며 길을 잃고 이탈되거나, 약탈하는 동물들로부터 양들을 지키면서 양들과 함께 밤을 지샌다고 설명한다. 그는 덧붙여 "10월에서 최소한도 11월 중순까지는 목자들이 양떼를 축사 안으로 옮기며 더 이상 바깥 들판에서 양과 함께 밤을 새는 일은 없다"고 지적한다.

또한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 하라는 명을 내렸을 때(눅2:1)" 공교롭게도 그 시기가 예수님의 탄생과 일치되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춥고 비오는 겨울인 12월에 각기 고향으로 호적 하러 가라는 포고를 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반항적인 신민(信民)인 '유대인들'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짜를 12월 25일이라고 계산해 넣기 위해서 얼마나 큰 실수와 부주의가 수반되었는가를 증명하기 위하여 다시 "브리태니카 백과사전(The Encyclopedia Britannica)"의 진술을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생일을 위한 정확한 날짜와 같이 12월 25일이 언급된 처음 달력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탄생의 첫 해, 주 예수께서 나신 12월 25일은 새 달의 15일과 같은 금요일이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에 있어서 서기 1년 12월 25일은 금요일이 아닌 일요일이었다"는 것이다.

2. 왜 12월 25일인가?
크리스마스는 로마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내력은 다음과 같다. 로마에는 12월말에 세 가지 축일이 계속된다. 첫째는 '사터르날리아(Saturnalia)'라고 부르며 17일부터 24일에 이른다. 옛날 새턴 신이 지배한 황금시대를 기념하는 제사로서 이 계절에는 "귀천 빈부를 가리지 않고 함께 환락에 빠진다" 다음은 '시갈라리아제(Sigillaria)'인데 어린아이에게 인형을 선사한다.
그리고 '브루말리아제(Brumalia)'인데 동지 제사이다. 태양의 빛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축하하는 것이다. "이들 축제에 참가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모여서 다른 의미의 축하행사를 가졌는데 그리스도는 이 태양 빛이 회복되는 시기에 탄생하시는 것이 합당하다는 사상도 섞여서 이 때를 구주탄생의 날로 축하하기 시작한 것 같다"
과학저술가로 알려진 '아시모프(Asimov Isaac)'박사는 "...기원 300년 얼마 후, 그리스도교는 농신제를 흡수하는 최후의 일격을 가했으며, 이로써 '미드라' 숭배에 대한 최종적 승리를 거두었다. 12월 25일은 예수의 탄생일로서 자리를 잡았고, 따라서 그 성대한 축제가 그리스도교의 것이 되었다. 12월 25일이 그리스도의 탄생일이었다는 성서적 근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고 12월 25일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회의를 나타낸다.
나 자신이 처음 교회에 나가서 맞이한 성탄절 날 그곳의 말씀 선포자는 "12월 25일 즉 동지 후가 되면 밤이 점점 짧아지고 일조량이 많아지므로, 이 땅의 그리스도의 탄생이 바로 어두운 세상에 빛이 점점 편만해 지는 의미에서 이 날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상징하는 날로 적합하다"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은 성경의 의견이 아니라 인간의 그럴듯한 생각이다. 요즘 어떤 교회들은 자정을 하루가 시작되는 첫 시간이라고 하여 새벽예배로 드린다고 선전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유대인들은 하루의 시작을 일몰로부터 계산했고, 우리와 같은 문화권에서는 일출로부터 하루의 시작을 계산한 것이다.
결국 연 월 일 이라고 하는 시간의 단위는 인간이 만들어서 사용하는 표준일 뿐이다. 하나님이 만들어서 쓰도록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무시간성과 대조해 볼 수 있겠다. 따라서 12월 25일은 이교주의를 수용한 일부 사람들의 합리적 수단과 사고의 산물일 뿐이다. 그리고 미신과 이교의 풍습을 그대로 기독교 안에 같이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오늘날 이교 축제와 꼭 같은 양상으로 번져 가는 크리스마스를 통해서 실증되는 셈이다.

3. 따르는 행사들의 근원은 성경적인가?
우리는 이미 크리스마스의 날자 선택이 이교도들을 흡수하기 위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선택에 의해서 였다고 하는 사실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과연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행사들의 출처는 어디에서부터 기인되었던가를 살피면서 더욱 흥미 있고 그러나 가슴 아픈 사실들을 생각해 보자.

[1]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트리에 관한 공식적으로 제출된 현저한 두 개의 이론은 그리스도 탄생의 그리스도인 예배에 돌린다.
그 하나는 16세기의 '마틴 루터(Martin Luther)'로부터 소개되었다고 하나, 그보다 먼저인 8세기의 성 '보니파스(Boniface)'에 의해서 라는 의견이 더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들이 어디로부터 왔는가 하면 대부분 이교의 사상에서 취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몇몇의 권위 있는 백과사전들의 진술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수명의 학자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을 초기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나무 숭배는 '스칸디나비아인'의 나라들에서는 보편적인 것이다" "북 유럽의 이교도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들이 신성시한 상록수들을 크리스마스 축제의 한 부분으로 만들었고, 그 나무들은 별이나, 달, 그리고 태양을 나타내는 도금한 도너츠나 견과류와 양초들, 사과들로 장식되었다" "이것은 고대 게르만 부족들의 나무숭배의 습관이 잔존한 것이다" "우리의 크리스마스 상록수들의 장식은 역시 초기 그리스도인 시대로부터 연유되었다... 초기의 교회는 상록수들의 사용에 불만을 나타냈는데 초기 이교축제와 그들의 교제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이집트'의 '이시스'[Isis - 고대 이집트의 최고 여신]여신 숭배의 종려나무를 사용한 의식에서 기원 된 것으로 믿어진다"
이상과 같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나무숭배 사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위 사전들의 진술에서 볼 수가 있다. 성경도 이러한 것들에 대한 경계를 준다. 열왕기상 14장 23절은 "이는 저희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세웠음이라" 나무들이 적어도 일년에 한번은 푸를 것이므로 여기서 '푸른 나무'를 지적하는 이유는 사철나무, 즉 상록수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지금의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인 '크리스마스 트리'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531년 독일의 '스트라스부르'에서였다. 독일인 이주자들이 이러한 관습을 미국으로 가져왔으며 거기서도 그러한 나무들은 장식되고 대중화 되어갔다. 1882년에는 '뉴욕'시에 있는 발명가 '에디슨'의 동료로 보이는 '에드워드 존슨'의 집에서 최초로 전기 불로 밝혀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선을 보였다고도 한다.

[2] 산타 크로스의 활동에 대해 성경은 어떤 권위를 주고 있는가?
'콤톤(The Compton's Encyclopedia)'백과사전은 "'벨기에'나 '화란'같은 몇몇 북쪽의 나라들에서는 12월 6일, 그의 축제일 전야에 '성 니콜라스가 선물들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다"고 전한다. '니콜라스'는 270년 소아시아 니케아의 '파타라'시에서 출생한 자선심이 강한 주교로 알려지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4세기의 '미라'[Myra - 지금 터키의 서남부. Lycin의 옛도시]의 주교로 알려져 있고 그에 따른 전설은 '그가 한 지방 주민이 세 딸에게 줄 결혼 지참금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모르게 금화를 그 집 창문, 또는 굴뚝으로 던져 넣어 주었다고 한다. 그 금이 아마도 말리기 위해 벽난로 가에 매달아 놓은 스타킹 속으로 떨어져 들어갔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이태리'의 관습에서 유래된 1월 6일과 관련된 '베파나'[Befana - 1월 5일 밤에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준다고 믿는 할머니]요정에 관한 이야기와 거의 같다. 베파나 요정은 어린이들의 공로와 과실에 맞게 어린이들의 스타킹에 선물을 채워두지만,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오직 재만 받게 된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위의 성 니콜라스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의 죽음 이후까지 연결되어 진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고향 마을인 '미라' 시(市) 전체가 슬퍼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가난하고 어려운 가운데 있는 사람들, 특히 과부들과 어린이들은 그의 도움의 특별한 대상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미라'시의 사람들은 하늘에서조차도 오직 그들이 부탁만 하면 성 니콜라스는 계속 도와준다고 믿는다. 수천의 기적들과 함께 충실한 믿음을 가진 그들의 기도에 응답이 된다. 이리하여 아이들은 그리스도가 아닌 니콜라스에게 기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톨릭에서는 소위 상당수의 기적들을 카톨릭의 성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돌린다. 카톨릭은 그들의 성자들에게 기적들을 요구하는데 매우 익숙해 있다. '카톨릭 백과 사전(The Catholic Encyclopedia)'도 "성인들과 순교자의 집단들 혹은 그들 중 특별한 어느 대상에게" 기도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얻고자 그 성인들에게 간절히 기원하고 성인들의 기도와 도움의 조력에 의지하는 것은 선하며 유용한 것이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예를 들면 관절염이 걸렸을 때는 '성 야고보'에게 기도를 드리며 두통일 때는 '성 데니스'에게, 불임여성은 '성 길레스'등에게 기도한다. 하여튼 이러한 사상에서, 온 세상의 소년 소녀들은 그들의 수호신 성자인 성 니콜라스에게 기도하도록 고무된 것이다. 이렇게 오늘날 선물을 달라고 산타크로스에게 청원하는 아이들의 사상은, 선물을 달라고 성 니콜라스에게 기도하는 카톨릭 아이들의 관습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종교 개혁 후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의 일부는 크리스마스와 같은 축제일은 간직하기를 원했으나 '크리스마스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성 니콜라스는 그러한 위치에 두는 것을 원치 않았다. '크리스마스의 아버지' 대신에 일반적으로 '산타크로스'를 생각한다. 하지만 산타크로스 기원은 언제부터인가? 그 기원이 주로 성 니콜라스와 관련되어졌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산타 크로스는 성 니콜라스의 화란어 이름이 와전된 영어 번역이다. 미국의 화란 이주민들이 그를 '신타-클라아스(Sinter Klaas)'라 부르는 데서 연유된 것이다. 그 이외에도 산타 크로스가 카톨릭교의 성 니콜라스라는 증거들은 더 있다. 어떤 나라들에서는 산타 크로스가 카톨릭 교회 감독의 예복을 입고 공중 앞에 나오기도 한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선물을 나누어주는 빨간 옷을 입은 산타의 관념은 일련의 유명한 뉴욕 시민들의 풍부한 상상의 산물인 것으로 믿어진다. 19세기에 "크리스마스 전야였다"라는 글로 유명한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과 '클레멘트 무어(Clement Moore)'를 포함한 저술가들이 문학적 묘사를 제공하였고 마지막으로 미국 민주당의 당나귀와 공화당의 코끼리를 창안해 낸 만화가 '토마스 네스트(Thomas Nest)'가 끝손질을 가하여 크리스마스 철이면 눈에 띄는 유쾌한 노인 모습을 그려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모습은 백화점을 비롯해서 모든 상점들의 성탄절 판매원 모델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는 '지식의 책 백과사전(The Book of Knowledge Encyclopedia)'의 "산타크로스는 성 니콜라스의 유령이라고 생각한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음을 실감할 것이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유령 같은 존재인 산타크로스가 아이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다 알고 있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가르치고 싶은가? 아니면 또 자신이거나 이웃이 산타 복장을 하고 선물을 갖다 놓고서는 산타가 가져다 놓은 것이라는 거짓말을 계속 가르치고 싶은가?

[3] 서양 감탕 나무[Holly - 일명 호랑가시나무]와 겨우살이(Mistletoe) 사용의 출처는 성경의 지지를 받고있는가?
크리스마스 행사 중에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장식물 중의 하나가 서양 "감탕 나무" 와 "겨우살이" 등이다. 이것들이 호평 받는 이유는 추운 겨울에도 열매를 맺는 마법의 식물이기 때문이라는 믿음에서이다. 이것을 사용하는 것을 고무하는 입장의 사람들은 붉은 서양 감탕 나무 열매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고, 가시 투성이의 잎사귀는 예수님의 체포 당시 군병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기 위해 씌운 '가시 면류관'을 상징한다고 믿지만, 북 유럽에서의 이교도들은 서양 감탕 나무의 빛나는 잎사귀와 열매를 영원한 생명의 남성적 상징으로 간주하고, 담쟁이 덩쿨을 불멸의 여성적 생명의 상징으로 보면서 이것을 다산(多産)의 상징이라고 믿었다. 많은 믿을만한 증거들은 이러한 식물들은 이미 서력기원 오래 전부터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지역에서 춥고 견디기 힘든 그들의 겨울동안 봄을 재촉하는 겨울 축제에서 사용되었다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특히 중세기의 '튜튼(Teuton)'이나 '겔트(Celts)'족들은 겨울에는 시들어 버리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여전히 푸르름을 가지는 서양 감탕 나무와 겨우살이들을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 신성시했다.
고대 영국의 '드루이드(Druids)'족들은 그 나무가 악귀, 질병, 불임증 등의 불길한 것들을 이겨내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심지어는 이러한 상록수를 너무나 거룩하게 여겨 그러한 나무 아래서 적군을 만나면 무기를 내려놓고 서로 평화의 입맞춤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식물이 결정적으로 예수님과 연결되어지기 위하여 그럴듯한 전설이 조작되었다고 하는데 그러한 전설의 내용은 이집트로 피난 가는 예수님의 일가와 관련 지어지고 있다. 이 전설에 의하면 '서양 감탕 나무는 원래 상록수가 아니었다고 하며 요셉과 마리아가 천사의 지시를 받고 이집트로 피난을 가는 도중에 헤롯의 군인들을 만나 이들에게서 어린 예수를 보호하기 위해서 서양 감탕 나무 덤불 아래에 숨겼다고 한다. 그러자 이 나무는 예수님을 은폐하여 보호하기 위해 즉시 잎사귀 끝에 온통 가시 투성이인 두터운 푸른 잎들을 내밀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5] 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말은 성경에서 왔는가?
크리스마스 의 의미는 대부분이 알고 있을 줄 안다. 이것은 '그리스도'라는 말에 제사를 의미하는 카톨릭의 '미사(Mass)'가 합쳐진 말로써 즉 '그리스도의 제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밤중을 전후해서 갖는 특별한 미사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마스(미사)'는 무엇인가? '미사'란 세상의 죄를 위해 갈보리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희생을 갱신 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 '미사'와 관련된 '화체설'은 너무나 알려져 있으므로 생략한다. 모든 '미사'시간에 '그리스도는 다시 희생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다음의 성경 말씀과는 정면으로 대치된다. "히 7:23-27, 9:24-28, 10:8-14, 롬 6:8-10."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위하여 단번에 드려졌다.

'존 A. 오브린(John A. O'Brien)'의 '수백만의 신앙(Faith of Millions)'에 따르면 카톨릭 신부가 미사에 관해서 말하기를 "...그는 천국에 미쳐서 그리스도를 그의 왕권으로부터 모셔 내리며 우리들의 제단 위에 그를 두고 인간들의 죄를 위해 희생한 것처럼 해달라고 다시 간청했다." 그는 또 말하기를 "그 신부는 말했다. 보라! 영원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머리를 신부의 명령에 겸손히 복종하는 것을" 이라고 자신은 자못 감탄해 마지않은 말을 하고 있지만 신부가 말하고 주께서 겸손히 복종하는 불경이라니! 이런 까닭에 오늘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로마 카톨릭교로부터 개혁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프로테스탄트들은 초기 그들의 지도자들이 사용하던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만 좋아할 뿐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개신교에서도 카톨릭에서 만들어진 대부분의 절기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주현절(Epiphany; 또는 현현절)' '사순절(Lent)' '부활절(Easter)' '오순절(Pentecost)' '강림절(Advent; 또는 대강절)' '왕국절(Kingdom)' '성탄절'등으로 여기에는 색조까지도 별도로 사용되도록 정해져 있는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물론 이 절기 속의 일부는 '유대교'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이교적인 풍습을 본 따서 인위적으로 만든 것들이다.
다시 이 제목의 주제로 돌아가 보면 위에서 살핀 것과 같이 '미사'는 예수님의 희생에 어울리는 말은 되어도 탄생의 의미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크리스마스'라는 용어 자체가 신약 성경 본래의 기록인 헬라어가 아니라 그 훨씬 후에 라틴어로 구성된 말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이 명칭의 선택도 합당치 못하다고 말할 수 있다.

[6]크리스마스는 현재 어떤 영향을 가져오고 있는가?
'기독교 교육' 88년 12월 호에서는 성탄절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성탄의 기독교 교육적 의미"라는 제목에서 성탄절의 파급 효과로서의 의미를 대개 다섯 가지로 쓰고 있다.

1. "절기교육으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라고 하여 유대교의 절기들과 함께 유월절을 연결 시키고 있다.

2. 기독교 공동체를 이루는데 큰 공헌을 한다.

3. 복음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교육하는 절기로서 큰 의미를 찾는다.

4. "기독교 유산을 나누는 절기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제목에서 성탄절은 '초대교회 때부터 지켜왔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성탄절은 수십 세기를 걸치면서 수많은 전설을 낳게 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5. 성탄절의 철학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며 특히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이 많은 자선사업을 고무하게 됐다고 논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부정적인 영향은 전혀 배제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좋은 의도 때문에 성탄절은 오늘까지 많은 미신과 이교행사를 용인하면서 계속 지켜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농신제'가 빈부귀천 없이 향락에 빠지는 것과 꼭 같은 양상이 오늘에도 재현되고 있다는데 문제는 크다 하겠다. 일부 사람들, 특히 비기독교인 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 행사를 먹고 마시는 일에 탐닉할 기회로 이용한다는 것을 아는가? 도회지에서 12월 25일 아침에 중심가를 거닐어 보면 가관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먹지도 못하는 귀한 음식들이 술과 함께 배에 들어갔다가 토해낸 흔적들이 비일비재한 것을 보며 상쾌할 수 없는 기분을 가진다. 이 얘기는 또 크리스마스는 비 그리스도인들의 축제로 더 유명한 것을 말하기도 하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원은 싫어해도, 크리스마스는 더 좋아하는 양상이 이곳 제주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가? 그것은 근본적으로 크리스마스 자체가 비기독교적인 것, 곧 이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그리스도인이 가장 적다고 하는 이웃 일본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78년도 12월 말의 '요미우리' 신문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취급하고 있다.
"상부에 가로로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영자로 쓴 '생크림 케이크'는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라면 어느 가정이나 필수품이 되었다. '산타오지이산'[산타크로스를 일본말로 일컫는 말] 모형을 완전히 갖춘 케이크는 7달라 70센트에 팔렸다. 많은 가정에는 모조 눈으로 덮인 조그마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져 있다. 남의 것을 모방한 이 축일이 이제 일본에서는 커다란 행사가 되었다.

 

'요끼오 노무라'씨는 자기의 11살된 아들을 위하여 원격 조정장치가 되어 있는 233달러 짜리 장난감 자동차를 구입하던 중 회견하는 가운데 "우리 일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그리스도인들이지요"라고 말하였다. 어느 무역회사 사원인 '노무라'씨는 말하기를 자기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 그 축일을 기념하는 것은 '먹고 마실 핑계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크리스마스 기간은 많은 회사들이 '보오넨까이(망년회)'를 여는 때이기도 한데 종종 이어서 여러 술집을 돌아다니며 밤새 술잔치를 벌이게 된다. 경찰은 유흥지역을 특별순찰하며 흥청거리는 사람들을 집으로 안내해 준다" 이것은 비단 일본의 일만이 아니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대부분 비대한 사람은 다이어트를 하다가도 과식하고, '알코올' 중독자는 과음하며, 순진한 사람들조차도 자제를 잃어 상당한 숙취를 겪게 된다. 궁핍한 사람들은 가난을 더 뼈저리게 느끼고, 외로운 사람들은 고독을 더 절실히 느끼는 때가 소위 성탄절인 것이다.
해마다 가장 많이 생산되는 9-10월의 사생아들은 무엇 때문에 슬픈 운명 속에 살아야 하는가?
현재의 성탄절은 분명 좋은 복음전파의 시기라는 유익을 얻는 차원보다는 그것을 능가하는 비관적인 조짐이 압도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교회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성탄절을 보내면서 점검해야 할 것이다.


Ⅲ. 결 론

1. 성경의 침묵
성경이 그리스도의 육신적 생일에 침묵한다고 해서 전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의 의미, 그것은 결코 약화시킬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때를 아는 일에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 속에서는 분명한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한 날을 정하여 생일로 지키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이 그리스도의 생일 축하를 고무하지 않는 이유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할 것이다.

 

가령 어떤 날이 생일 축하 일로 정확하게 언급 됐다면 사람들은 그리스도보다도 어쩌면 '탄생의 날'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우려를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마치 칼빈이 죽기 전에 사람들이 자신의 묘를 신격화 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평토장(平土葬)을 부탁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여하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생일축하의 예는 단지 세속 통치자들의 경우(참고: 창40:20; 마14:6; 막6:21)이지, 주님의 탄생일을 권장하는 내용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참고: 욥1:4-5). 하나님은 어떤 귀중한 신앙의 행위에 대해서 절대로 침묵하시지 않는다. 가령 예수님의 죽으심을 만찬을 통하여 기념하는 것을 4복음서뿐 아니라 바울 사도조차도 적극 권장하고 있다(고전11:23-26).
만약에 그리스도의 탄생의 날이 꼭 기념되어 져야만 했다면 그의 충성스런 추종자들이 침묵했을 리 없었을 것이다.
'콜리어 백과사전(The Collier's Encyclopedia)'의 크리스마스 축제에 관한 말들을 요약하면 "날자는 3세기가 넘어서야 겨우 지목됐고 초대 기독교인들은 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전한다.
'

J. L. 데니슨'도 그의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은 권고를 주고 있다.
'많은 크리스마스와 연결된 관념들은 성경적이거나 역사적이거나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거행했던 행사가 아니라 오늘에 거행되는 것과 같은 크리스마스는 카톨릭과, 유대교, 이교주의, 그리고 미신의 산물처럼 보인다.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종교적 크리스마스 축하를 갖지 않는다...이 글을 마감하면서 특별한 날들의 종교적 행사와 관련해서 바울의 말을 환기 시키고 싶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4:10-11)
나의 결론도 그렇다.
그러나 그것을 따르고 아니 하고는 독자의 권리이다.

2. 또 다른 제언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의 향락과 음란, 그리고 요란함을 보라 교회에서의 전구장식의 현란한 오색빛깔은 무당 집 신당을 들여다보는 오싹함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은 이런 요란함 속에 계실까? 요란함을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이다. 무당들이 춤추는 굿판을 본 적이 있는가?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장식하기 위한 요란한 장식물들은 영락없이 무당들의 신당 장식용품과 거의 같은 것들이다. 심지어는 불교의 연등이 '축 성탄'으로 바뀌어져 매달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해마다 휴전선 애기봉을 비롯하여 세계 도처에 켜지는 오색전구가 먹어치우는 값비싼 전기 에너지는 얼마나 많을까? 그것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쓰여질 수는 없는가? 그 한달 동안의 오색전구를 켜는 에너지를 복지시설의 겨울 난방비로 충당한다면 결코 모자라지 않으리라 믿어진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기 위해 해마다 베어지는 상록수는 또 얼마나 많은가? 올해도 플라스틱으로 조립된 인조 크리스마스 트리의 가격이 7,500원에서부터 40,000원을 호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이것은 도매가격이다.
이 모든 것들은 진정 누구를 위함이며 누가 기뻐하겠는가? 우리는 기독교로 옷만 바꿔 입은 허울 좋은 이름들로 포장된 이러한 이교적인 문화를 수용해야만 하는가?

우리의 영원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요란한 허식과 기만으로 포장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아니, 오히려 그분을 꾸미려고 하는 것은 그분의 영광을 일부분이라도 가리울 뿐이다. 그분 자체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요1:14)이기 때문이다.
어떤 잘못된 가르침들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위신과 권위를 위해서 그만 두지 못하고 계속 한다면 그것은 나중에 주님으로부터 더 심한 낮춤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솔직히 시인하고 고치는 소탈함이 진리를 전하는데 위대한 행동으로 인정되지 않을까? 권위를 위해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 것보다는 진실함이 더 큰 힘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없을 때 행함에 담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했다. 행하지 않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다. 알지 못하여 행하지 못함으로 행하는 것과 아는 것은 하나라는 말이다.
왜 가장 옳은 것을 가지고 의구심(疑懼心)을 갖는가? 거기에 진보는 없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말로만 판단치 말고 옳음을 묵묵히 실천할 때 자부심은 쌓이고 열매는 맺어질 것이다.
영국의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성탄절을 싫어하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수전노 '스쿠루우지' 뿐이었다. 그가 싫어했던 이유는 먹고 노는 것과 히히낙낙 하는 것이 싫었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크리스마스가 성서에서 명령 된 행사가 아닌 이교도적 산물인 것을 확신하는 까닭에 제 2의 스쿠루우지이고 싶은 것이다. 독자들도 생각 없이 성탄절 행사를 계속 하고 있다면 한번 멈춰 서서 이 글에서 나타난 사실과 함께 진정 이러한 행사의 시작이 어디로부터 인가라는 질문을 자신 속에 던져 볼 것을 제안 하는 바이다.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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