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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단기선교 및 성지순례 여행기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①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by 서귀포강변교회 2013. 3. 12.

지구 여행기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①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트래비|입력2013.03.11 15:22|수정2013.03.11 15:27 

강해 보이기만 했던 이스라엘을 옆에서 바라보니 곳곳에 흉터가 선명했다.
이스라엘이 낸 '민족과 종교'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면,
'사해·사막·지중해'가 들어있는 3종 선물 세트가 기다린다.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이스라엘관광청

●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Masada마사다 & Qumran쿰란


강자 앞에서 당당하고 약자 앞에선 따뜻하고 싶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지리멸렬한 싸움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팔레스타인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편향된 마음을 들킨 것인지, 이스라엘 여행은 처음부터 꼬였다. 출국을 코앞에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 간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신문 국제면이 '이스라엘-하마스 교전 격화…전면전 가능', '하마스 군 수장 사망' 등 살벌한 이야기로 도배됐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안전한 나라가 그 어디 있는가. 내 나라만 하더라도 서로 남과 북으로 찢어져 으르렁거리고 있는데 말이다. 다행히 하늘이 도왔다. 출국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 현지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휴전에 합의했으니 안심하고 와도 좋다." 100여 명을 일주일 만에 죽이고 1,000명을 다치게 했다는 이번 전쟁은 시작도 끝도 문을 여닫는 것처럼 간단해 보였다.

짧은 말다툼으로도 마음이 들들들 끓는데, 총과 칼을 내젓는 싸움이 쉬울 리 없다. 이스라엘을 여행한다는 건 피고름이 철철철 흐르는 그들의 과거사를 훑는 과정이다. 이스라엘의 조상은 신에게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아브라함1). 아브라함이 신으로부터 받은 땅은 바로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이다. 신의 간택을 받았을지언정 아브라함의 자손은 끝없는 고통 속에서 광야를 헤맸다. 그들의 수난사를 읊자면 끝도 없다. 유대인에게 행복한 과거란 노역생활을 하던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을 되찾았던 순간, 지혜로운 다윗과 솔로몬을 왕으로 삼았던 시절 정도였을 테다. 여기에 십자군전쟁의 박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의 삶까지 더하면 '신은 정말 있습니까' 하고 저절로 묻게 된다.

특히 이스라엘에서 로마제국의 발길질은 악명 높았다. 이탈리아를 지도에서 찾아보면, 지중해에 발을 담근 구두 한 짝과 같은 모양새다. 신발의 높다란 굽으로 로마군은 유대인을 마구잡이로 밟아댔다. 척박한 사막을 비집고 자리한 기괴한 마사다Masada 는 로마군과 유대인의 처절한 싸움을 그 자리에서 똑똑히 지켜봤다. 450m의 높이에 들어선 이 요새는 길이 600m, 너비 320m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AD70년, 로마에서 온 디도 장군의 박해를 피하고자 유대인 960여 명이 마사다로 몰려들었다. 도망자들을 가만히 손 놓고 봐 줄 로마군이 아니다.

1만5,000여 명의 로마군은 마사다를 정복하고자 수를 쓴다.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마사다에 오르지 못해 쩔쩔매던 로마군은 요새로 들어가기 위한 경사로를 3년에 걸쳐 만들었다. 경사로가 마사다에 닿았을 때, 그곳에서 로마군을 기다린 것은 유대인의 시체 960구. 유대인들은 로마군에게 능멸을 당하는 대신 죽음을 택하기로 했던 것이다. 죽음을 도울 사람을 제비뽑기로 뽑고 최후의 1인은 자살하는 식으로 그들은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마사다 정상에 오르면 900명이 넘는 유대인이 어떻게 3년간 마사다 꼭대기에서 생활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이 풀린다. 이곳엔 목욕탕, 창고, 채석장, 교회, 수영장 등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마사다의 본래 용도는 왕의 피난처였다. BC40년경 헤롯왕2)은 본인이 도망갈 곳으로 마사다를 지었고 온갖 시설을 갖추었다. 헤롯왕이 만든 시설을 이용하며 목숨을 부지하던 유대인은 빗방울을 모으려 도랑을 만들고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비둘기까지 길렀다고 한다. 마사다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로 금방이건만 많은 유대인은 가파른 마사다를 직접 두 발로 오르며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사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쿰란 동굴Cave of Qumran이 있다. 쿰란 동굴 역시 마사다와 마찬가지로 로마에 굴하지 않은 유대인의 삶을 증명한다.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는 쿰란 동굴에 숨어 살던 은둔주의자들이었다. 에세네파는 성경사본을 항아리에 담아 숨겨놓았는데 2,000년이 지난 1947년, 목동이 염소를 찾던 중 항아리를 발견한다. 그 속에서 사해본Dead Sea Scroll으로 불리는 양피지 두루마리 7개가 나왔다.

1)아브라함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다. 그는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올리거라'는 신의 명령을 따르려 했을 정도로 신에게 충성했다. 현재 물과 기름 같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사실 알고 보면 아브라함을 한 조상으로 삼고 있다.

2)헤롯왕 이스라엘 일대를 다니다 보면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헤롯왕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헤롯왕은 아기 예수가 두려워 '어린아이를 모조리 죽이라'고 지시했던 왕으로 유명하다. 악덕한 왕이긴 했지만 그는 건축에 조예가 깊었다.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전을 대대적으로 재건축했으며 자신의 피난처로 철옹성 같은 마사다를 축조했다.

↑ 로마의 발길질을 피하고자 발버둥친 유대인의 흔적을 이스라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국기에 새겨진 별은 '다윗의 별'로 불린다

↑ 검은 양복을 고수하는 정통 유대교인

↑ '머리 위에 신이 있다'는 의미의 작은 모자, 키파

↑ 유대인은 예수의 이야기를 닮은 신약성서를 부정하고 구약성서만을 읽는다


그것은 누구의 사원인가

Temple Mount성전산 & Western Wal l통곡의 벽

마사다와 쿰란을 돌아보던 중 고개를 들었다. 모래바람이 풀풀 날리는 사막 한가운데서 보이는 것이라곤 너른 하늘과 뜨거운 태양뿐. 왜 유대인이 '하나의 신'만을 숭배하는지 퍼뜩 이해가 됐다. 그들에겐 이리저리 떠돌며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잡아 줄 강력한 절대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반대로 불교는 '숲의 종교'라 불린다. 울창한 숲은 사막과 달리 풍요로워 수많은 식물과 동물이 살아간다. 유일신이 필요 없다. 인간이 곧 신이 될 수 있으며 그저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 된다.

'하늘에 계신 신'을 아버지로 삼는 건 유대교뿐만이 아니다. 유대교에서 뻗어 나온 기독교,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세 종교가 하나로 겹쳐져 보였다. 한 뿌리에서 뻗어 나왔을지언정 결코 세 종교를 같다고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종교의 각축장인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세 종교의 정체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을 조망할 수 있는 감람산에 올랐다. 공동묘지 너머로 성전산Temple Mount이 보였다. 성전산은 유대인, 기독교인, 이슬람교인 모두 '성지'라 여기는 곳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산인 동시에 예수의 발길이 닿은 곳이며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말을 타고 승천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곳에 서니 세 개의 종교가 동시에 "우리가 진짜"라 외치는 것만 같아 현기증이 났다.

지금 성전산에는 황금색 모자를 쓴 황금사원Dome of Rock이 서 있다. 이슬람교도가 예루살렘을 점령하며 지은 이 사원은 오마르 모스크Mosque of Omar로도 불리며 메카와 메디나만큼이나 중요한 곳으로 여겨진다. 당연히 유대인은 이슬람교도가 축조한 황금사원을 보며 칼을 간다. 그들은 성전을 두 번이나 지었으나 두 번 모두 잃었다. 솔로몬왕 시절 지어진 첫 번째 성전은 전란 중 부서지고 말았고 두 번째 성전은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됐다. 디도 장군은 과시용으로 성전의 서쪽 부분 일부를 남겨 두었는데 그 흔적이 통곡의 벽Western Wall이다.

땅을 잃은 백성은 수천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이 벽 앞에 선다. 세우면 무너지고, 찾으면 또 뺏기고…. 약자의 역사를 이해한다. 우리의 조상도 그랬을 것이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유대인은 성전을 다시 세울 '그날'을 기다리며 통곡의 벽에 머리를 조아렸다. 키파1)를 쓰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토라2)를 읽는 그들의 모습은 생경하다. 구레나룻을 돌돌 말고 검은 양복을 입은 정통 유대교도도 여기선 흔하게 보인다.

1)키파 유대인이 쓰는 테두리 없는 모자. '하느님이 내 머리 위에 있다'는 뜻으로 크기는 손바닥 크기 정도. 이스라엘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있으니 기념품으로 사 와도 좋다.

2)토라Torah 유대인은 예수의 행적을 담은 신약성서를 인정하지 않고 구약성서만을 읽는다. 토라는 구약성서의 처음 다섯 권을 일컫는다. 주요 내용은 신과 계약을 맺은 모세의 이야기로, 모세5경으로도 불린다.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 바벨탑, 노아의 방주 등 익숙한 성경 이야기가 모두 토라에 담겨 있다.

↑ 통곡의 벽에는 종이가 꼬깃꼬깃 박혀 있다. 신에게 '소원을 들어 주십사'하는 일종의 청탁서다


시대를 넘나드는 진보주의자
Galilee갈릴리


이스라엘을 돌아다니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스토커처럼 따라다녔다. '신'은 누구인가. 유대인은 하느님의 나라로 이끌어 줄 메시아를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지만 기독교인은 그 메시아가 바로 부활한 '예수'라 말한다. 메시아를 예수라 생각하든 생각하지 않든 예수의 굴레에서 벋어날 수는 없다. 서구문명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서력기원西曆紀元을 따르기 때문이다. 역사는 예수가 탄생하기 전Before Christ·BC과 예수가 탄생한 후Anno Domini·AD로 나뉜다. 2013년 역시 예수가 태어난 그 해를 기점으로 시간을 기록한 것이다.

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그는 인간의 세월까지 쥐락펴락하나. 나는 부활한 예수가 아니라 약자를 몸소 품었던 박애주의자, 인간 예수를 만나고 싶었다. 갈릴리Galilee로 간 이유다. 갈릴리 호수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갈릴리 일대의 명소로 향한다. 갈릴리는 예수가 어부 베드로를 만나고, 회당에서 설교를 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배불리 먹인 바로 그곳이다.

8가지 복을 설교했다는 팔복교회Church of The Mount of Beatitudes의 입구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Let anyone who thirst come to me and drink whoever.목이 마른 자는 내게 와라 그리고 누구든지 마셔라" 나는 'Whoever누구든지'라는 단어에 꽂혔다. 당시 병자, 귀신 들린 자는 신의 율법을 어긴 '더러운 존재'로 간주됐다.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여성은 또 어떠한가. 아버지와 남편이라는 남성에게 종속돼 자유의지 없이 살았다.

그러나 예수는 병자, 귀신 들린 자, 여성 등 사람이라면 가리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예수가 첫 공생애3)를 보낸 가버나움Capernaum에는 예수의 기적이 가득하다. 예수 덕분에 소경은 눈을 뜨고 중풍 걸린 환자는 일어나 걸었다.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유대인에게 도전하는 예수의 행보는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십자가를 들어야 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어간 길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만날 수 있었다. 본시오 빌라도 총독에게 형을 받고 십자가를 짊어진 지점, 피땀으로 얼룩진 예수의 얼굴을 닦아 준 베로니카를 기념하는 장소 등을 하나씩 훑고 지나면 마지막으로 예수가 사흘 후 부활했다는 무덤이 나온다.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어리석은 인간을 대신해 십자가를 졌다는 그는 내게 아름다운 진보주의자로 기억될 것이다.

3)공생애公生涯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예수가 30세경 공식적으로 활동한 기간을 일컫는다. 그는 광야에서 금식 기도를 하고,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는 시험을 받는다. 공생애 동안 첫 번째로 행한 기적은 가나의 혼인식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이었다.

↑ 기독교인은 부활한 예수를 메시아라 생각한다.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야르데니트Yardenit

↑ 갈릴리의 가버나움에서 예수는 가난한 자를 위해 기적을 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