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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단기선교 및 성지순례 여행기

이집트 카이로

by 서귀포강변교회 2013. 6. 21.

Egypt 이집트 무겁고도 긴 여운①카이로 트래비 |  

입력 2013.06.20        

 
고대 이집트 문명과 마주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3,000년간 지속됐던 5,000년 전의 고대문명 앞에서
여행자의 모든 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숱한 고대 이집트 유적 중 하이라이트 몇 곳만을 만나는 데도 빠듯했다.
아쉬움만큼 이집트 여행의 여운은 길게 드리워졌다.
고대 이집트 문명을 낳은 6,671km의 나일 강만큼이나 긴….

↑ 기자 지구 3대 피라미드 앞에 피라미드 파수꾼처럼 앉아 있는 스핑크스


●Cairo 카이로
아잔은 투탕카멘을 향했다

카이로 이집트박물관Egyptian Museum에서 투탕카멘Tutankhamen을 만나고 막 돌아왔던 참이었다. 아잔Azan이 물결처럼 퍼졌다. 하루 다섯 번 이슬람교도에게 기도시간을 알리는 성스러운 울림. 흐느끼듯 애잔한 그 울림은 알라신에 대한 순종을 다짐하며 하늘로 스미는 듯했다. 알라신보다 한참 앞서 이 땅의 신이자 왕이었던 투탕카멘. 그날의 아잔은 마치 투탕카멘을 향한 것처럼 느껴졌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3,200년에서 기원전 332년까지 3,000년 가까이 나일 강을 젖줄로 지속됐다. 3,000년의 고대 이집트 역사는 현대의 편의대로 30개 왕조로 나뉘었고 각 왕조를 다스렸던 수많은 파라오들과 신들의 이야기가 하나둘씩 베일을 벗었다. 마지막 30대 왕조는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더 대왕의 점령으로 소멸했다. 소멸한 문명을 다시 연 것은 역설적이게도 점령자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 프톨레마이오스였다. 그는 기원전 305년, 이집트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하면서 파라오가 됐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기원전 30년 로마 공화정에 자리를 내줄 때까지 300년간 이집트를 다스렸다. 왕조 시대에는 여러 신을 섬겼지만 그레코로만 시대가 되면서 그리스도교 유일신 신앙으로 바뀌었다. 이후 현재의 이슬람교로 다시 바뀌었는데 초창기 그리스도교인 콥트교Copts는 지금도 이슬람 국가 이집트에서 그들 나름의 종교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의 이집트와 고대 이집트 문명 간에는 종교와 언어, 문자 등에서 마디마디 단절이 선명하다. 5,000년의 굽이굽이, 마디마디를 돌고 넘었고, 30왕조에 걸쳐 185명의 파라오와 그들이 섬겼던 더 많은 신들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키니 짧은 여행으로 감당하기에는 여간 버거운 게 아니다.

↑ 7세기 무렵 이슬람 제국의 점령으로 이집트는 이슬람 국가가 됐다

↑ 고대 이집트인들은 독특한 형태로 신과 파라오를 표현했다


어린 파라오의 부활

투탕카멘은 18왕조의 파라오였다. 9살(BC1361년)에 파라오로 즉위해 18살(BC1352년)로 현세의 생을 마쳤다. 어린 왕의 짧은 재위…. 여전히 의문에 싸인 소년 파라오의 죽음에 더해 3,200년간 까맣게 잊혔다가 깜짝쇼처럼 재등장했다는 극적인 요소는 투탕카멘을 고대 이집트의 스타 파라오로 부활시켰다.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룩소르 '왕들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에서 그의 암굴무덤을 발굴했는데, 온전한 상태였다. 파라오 무덤 중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됐다. 그의 유물은 무려 3,500여 점에 달한다. 파라오의 무덤은 즉위와 동시에 만들기 때문에 만약 투탕카멘이 더 오래 통치했다면 유물이 더 많았을 것이라던 현지 가이드의 탄식은, 굳이 맞장구칠 필요조차 없이 당연했다. 더 큰 탄식은 다른 파라오들의 도굴당한 유물로 향해야겠지만….

투탕카멘의 유물은 카이로 이집트박물관 2층 특별전시실에 있다. 투탕카멘의 진짜 유물을, 그것도 3,300년 전 그가 다스렸던 땅에서 만나는 감동은 클 수밖에 없다. 부활과 영생을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 뒤에도 육신을 보전하면 사람의 혼 '카'와 정령 '바'가 돌아와 부활한다고 믿었다. 죽은 투탕카멘을 미라로 만들고 영생에 필요한 갖가지 물건을 미라와 함께 무덤에 부장했다. 카와 바가 알아볼 수 있도록 미라에 황금마스크를 씌웠고, 미라를 본뜬 크기가 다른 3개의 관은 미라를 겹겹이 안았다. 금박을 입힌 관실 역시 겹으로 관을 보호했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의 원류가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의 장기가 담겨 있다는 카노푸스 단지Canopic Jar 앞에서는 열어 보고 싶은 호기심이 솟구쳤다. 황금의자에는 왕과 왕비의 다정한 모습이 천연색으로 채색돼 있었는데 마치 어제그제 칠한 듯 화려한 색감이 살아 움직였다. 투탕카멘의 시중을 들도록 함께 묻힌 샵티Shabti는 차라리 앙증맞았다. 사람 모양을 하고 있는 샵티는 죽은 파라오가 부활해서 부릴 몸종이다. 1년 365일에 맞춘 365개의 샵티와 샵티 10개당 감독 샵티 1개씩 배치했다는 대목에서는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스쳤다. 한참 뒤 다른 문화권에서 행해졌던 순장이나 사티Sati 관습과 비교하면 한참을 앞선 인본주의적 사고였다. 투탕카멘의 황금목걸이와 지팡이, 칼, 우산, 장신구, 전차, 침대, 물병 등도 신비롭고 감탄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무덤이라기보다 내세의 생활공간으로 꾸민 게 분명해 보였다.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와 한참을 대면했다. 3,300년 시간의 간극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 1 동물 머리에 사람의 몸으로 표현된 신이 파라오의 미라에 다가온 모습을 표현한 조각품 2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를 본뜬 기념품은 이집트 여행의 인기 아이템

↑ 삼각뿔 모양의 알 쿠른 산. '왕들의 계곡'은 물론 귀족 등의 암굴무덤이 산재해 있다


이집트 박물관 이집트 5,000년 유물과 만나다
이집트박물관Egyptian Museum은 고대 이집트 왕조부터 그레코로만 시대에 이르는 유물 12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 일부를 전시하고 있다는데 그 수와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너무 많아서인지 유물의 가치에 비해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는 안타까움마저 들었다. 우리의 가이드는 람세스Ramesses 2세 석상, 아멘호테프Amenhotep 3세와 왕비의 좌상, 멘카우라 왕King Menkaura 상 등 핵심 유물 위주로 안내했다. 5,100여 년 전 고대 이집트 1왕조의 나르메르 왕이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내용을 부조한 나르메르 팔레트Narmer Palette에서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는데 마치 신화처럼 들렸다.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 히에로글리프Hieroglyph 해독의 열쇠가 된 로제타스톤Rosetta Stone도 비록 복제품이었지만 흥미로웠다. 로제타스톤은 나폴레옹이 1798년 이집트를 침공했을 때 발견했는데 현재는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침략자며 유물 약탈자였지만 프랑스의 이집트 학자 샹폴리옹Champollion이 신성문자를 해독하는 데 실마리를 던졌다는 공은 인정해야 할지 고민이다. 선사시대에 있던 고대 이집트를 비로소 역사시대로 편입시킨 열쇠가 바로 로제타스톤이다. 히에로글리프를 해독하지 못했더라면 피라미드 벽에 새겨진 '피라미드 텍스트Pyramid texts'도, 파라오의 무덤에 새겨진 '코핀 텍스트Coffin texts'도 우리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었을 것이다.
미라전시실에는 왕들의 계곡에서 옮겨 온 아멘호테프 1세, 투트모세Thutmose 3세, 세티Seti 1세, 람세스 2세, 람세스 3세 등의 미라가 누워 있다. 유물보호를 위해 사진촬영을 금지한 박물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것으로 유물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글·사진 김선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