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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단기선교 및 성지순례 여행기

바울의 4차 전도여행 로마로 가는 길

by 서귀포강변교회 2013. 9. 27.

 

바울의 4차 전도여행 로마로 가는 길

예루살렘 > 가이사랴(아드라뭇데노 배) > 시돈 > (구브로 해안 통과) > (길리기아, 밤빌리아 해안 통과) > 루기아지방 무라성(여기서 이달리야로 가려는 알렉산드리아 배로 옮겨 탐) > (니도 맞은편) > (살모네 앞을 지남) > 미항(그레데섬의 작은 항구) > (뵈닉스항으로 가려 했으나 유라굴로 광풍에 휘말림) > (아드리아 바다 표류) > 멜리데섬(석달 머뭄) > (다른 알렉산드리아 배) > 수라구사 > 레기온 > 보디올 > 압비오 저자, 삼관 > 로마

 

바울이 로마로 호송되어 가는 날이 결정되자 누가와 데살로니가 출신 아리스다고는 베스다 총독의 허가를 받고 로마로 출발하게 되였는데 베스도는 황제 부대 소속 율리오라는 백부장에게 바울과 다른 죄수들을 넘겨 주며 바울을 잘 보살펴 줄것을 당부하였다.

바울일행과 죄수들은 아드라뭇데노에서 온 배를 타고 떠났는데 그 배는 아시아 지방의 여러 항구를 거쳐 가는 배였다.

이튿날, 일행은 시돈항에 도착하였고 율리오는 바울에게 매우 친절하여 바울이 자유롭게 신자들에게 갈 수 있게 해 주어 그들이 바울에게 쓸 것을 줄 수 있게 하였다.

배는 다시 시돈항을 떠나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앞 바다를 가로 질러 14일간 항해한 후에 루기아 지방의 무라에 도착하였다.  무라항은 애굽에서 오는 곡물선이 로마로 가기 위해 정박하는 항구로 그 곳에서 백부장 율리오는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이탈리아로 가는 곡물선을 발견하고 바울 일행을 그 배에 태웠는데 276명과 곡물을 실은 거다란 배였다.

알렉산드리아 배는 며칠 동안 천천히 항해한 끝에 간신히 니도 앞 바다에 이르게 되었고 맞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와 계획된 항로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어서 살모네 맞은 편에 있는 크레타 섬을 끼고 해안가를 따라 어렵게 항해하여 라새아라는 도시에서 가까운 미항에 도착하여 바람이 잔잔해 지기를 기다렸다.

 

2000여년전 바울이 탄배가  잠시 머물렀던 미항 전경

 

시간을 많이 빼앗긴 데다가 이미 금식 기간도 지나 더 이상 항해하는 것이 위험했으므로 바울이 그들에게 충고하기를 "여러분 계속해서 항해를 하다가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배와 짐만 손실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듣기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다. 왜냐하면 그 항구는 겨울을 보내기에는 적당하지 못한 항구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그 곳을 떠나 먹을 것 술집, 놀것이 많은 뵈닉스(베니스)에 가서 겨울을 보내고 싶어하였다.

뵈닉스(베니스)는 크레타 섬에 있는 항구 산업 도시로 남서쪽과 북서쪽을 향해하는 배들이 정박하고 무역을 하는 곳으로 무역하는 사람들이 머물기를 좋아하는 그런 곳이였다.

때 마침 남쪽에서 순풍이 불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자기들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줄 알고 닻을 올려 크레타 섬 해안을 따라 뵈닉스(베니스)로 항해하기 시작하였는데 갑자기 '유라굴로'라고 부르는 폭풍이 섬 쪽에서 불어 왔다.

배는 폭풍에 휘말려 바람을 거슬러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자 앞으로 가려는 노력은 포기하고 바람이 부는 대로 배를 내맡기고 표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의 남쪽 방향으로 떠밀려갈 때에 우리는 간신히 거룻배를 끌어올릴 수 있었고  선원들은 거룻배를 끌어올린 다음에 밧줄로 동여맸다.

선원들은 배가 스르디스의 모래톱에 걸릴까 염려하여 돛을 내리고 배를 바람 부는 대로 떠밀려가게 하였지만 폭풍에 너무도 시달리자 이튿날에는 선원들이 짐을 바다에 내던졌다.

 

삼 일째 되는 날에는 배의 장비마저 내어 던지고 며칠째 해도 별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바람은 계속해서 거세게 불어 오자 결국 모두가  살아 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모두 포기하고 말다.

그 때 바울이 그들 가운데 일어서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지쳐있는 그들에게 "여러분, 내가 크레타 섬을 떠나지 말자고 한 말을 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이런 손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고 물건을 잃어버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치만 여러분  이제 용기를 내십시오. 이 배만 잃을 뿐 여러분 중에는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밤에 나의 주님이요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내 곁에 나타나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반드시 황제 가이사 앞에 서야 한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너에게 맡겨 주셨다.'

그러니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천사가 내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어떤 섬에 밀려가 닿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말에 그들은 일말에 희망을 갖게 되였다.

이일로 인하여  배안에서 바울의 말이 절대적이 되였다. 백부장 율리오도 선장의 말 보다 바울의 말을 신뢰하게 되였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이게 되였다.

 

미항을 떠난지14일 되던 밤에 배는 아드리아 바다에서 표류하였는데 선원들은 알지 못하는 섬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암초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서 나아가는데 선원 몇 사람이 배에서 빠져 나갈 속셈으로 배 앞쪽에 닻을 더 내린다는 구실로 거룻배를 물에 내렸다. 그러자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 사람들이 배에 남아 있지 않으면 당신들마저 구조되지 못합니다"라고 말했고 군인들은 즉시 밧줄을 끊어서 거룻배를 떼어 버렸다.

날이 밝을 무렵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면서 "지난 십사 일 동안 여러분은 마음을 졸이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음식을 드십시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그 누구도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 말을 하고서 모든 사람 앞에서 빵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빵을 떼어 먹기 시작하였다.

배안에 있는 276명은 바울의 말에 용기를 얻고 음식을 먹고 힘을 내어 식량을 바다에 던져 배를 가볍게 만들었다.

배가 해안에 근접하자 두 물살이 만나는 곳에 들어가 모래톱에 걸려 뱃머리는 꼼짝도 하지 않게 되였고 배 뒤쪽은 거센 파도에 부딪혀 깨어졌다. 군인들은 죄수들이 헤엄쳐 도망칠까봐 그들을 죽이려고 하였는데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을 살리고 싶어 군인들이 죄수를 죽이지 못하도록 하고 헤엄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바다로 뛰어들어 육지로 올라가라고 명령했다.

배안에 있던 276명은 헤엄치거나 널판지 등을 타고 모두 무사히 육지로 올라 올 수 있었는데 그 섬의 이름은 멜리데고 지금은 몰타 라고 불린다.

 

바울일행이 표류하다 만난 멜리데(몰타)항 전경 

 

 

몰타섬에 도착한 사람들은 비가 오고 엄습하는 추위로 떨고 있는데 섬 사람들이 분에 넘치는 친절을 베풀며 불을 피워 놓고 일행을 맞아 주었다. 바울이 장작을 한 무더기 모아다가 불에 넣었는데 뜨거운 불 때문에 독사가 튀어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다. 섬 사람들은 독사가 바울의 손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틀림없이 살인자다. 바다에서는 살아 나왔는지 모르지만 '정의의 신'이 그를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라며 서로 수군거렸다.

그러나 바울은 그 뱀을 불 속에 떨어 버렸고 사람들은 바울의 몸이 부어 오르거나 그가 갑자기 땅바닥에 쓰러져 죽으리라고 예상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바울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그들은 바울을 달리 생각하게 되었고 바울을 신이라고 불렀다.

그 근처에 그 섬의 추장인 보블리오가 땅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울일행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삼 일 동안 친절하게 대접해 주었다. 때마침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바울이 그를 찾아가 기도하고 그 사람의 몸에 안수를 하여 병을 낫게 해 주었다.

이 일이 있은 뒤에 그 섬에서 병을 앓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도 바울을 찾아와 고침을 받았으며 병고침과 함께 복음을 듣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되였다.

그들은 바울 일행을 극진히 대접해 주었을 뿐 아니라 섬을 떠나려고 할 때 바울일행이 필요한 물건들을 배에 실어 주었다.

현재 지중해의 한가운데에 있는 몰타섬은 인구 41만 명이고 면적은 316km 이며 바울의 전도 영향으로 카톨릭 인구가 전체 인구의 98%를 차지한다. 

 

영국식민지시대에 지은 성당의 내부

 

석 달이 지난 후  바울일행은 그 섬에서 겨울을 보낸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뱃길에 올랐는데 그 배의 앞에는 쌍둥이 신 표시가 있는 디오스구로라는 배였다.

배는 항해하여 수라구사에 도착하여 사흘을 머물고 그 곳을 떠나 레기온에 도착했고 그 이튿날 남풍이 불어 와서 그 곳을 쉽게 벗어나 이틀만에 보디올항에 닿았다.

 

보디올에 있는 바울 기념교회

 

 

거기서 바울 일행은 보디올에 있는 신자들을 만나 그들의 초청을 받고 일 주일 동안 함께 지내며 복음을 전하고 헤여진 뒤에 마침내 바울일행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 한다는 그 유명한 아피아 가도를 걸어 로마에 도착하였다.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는 아피아 가도

 

로마에 있는 형제들은 바울 일행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로마에서 65km 떨어져 있는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 (세개의 여관)까지 바울 일행을  마중하러 나왔고 바울은 뵈뵈를 통해 전해진 로마서 서신을 통해 믿음이 굳어진 그들을 보자 용기를 얻었으며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바울이 로마도착 기념우표

 

로마 입성

드디어 바울은 아피아 가도의 끝에 서서 감사기도를 드리며 그토록 전도하기를 고대하였던 로마에 죄수의 몸으로 입성하게 되였다.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을 호송하면서 바울의 인품과 그가 전하는 예수의 복음을 듣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 아마도 호송을 끝내고 황제에게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종교문제로 억울하게 고발 당해 황제께 항소하여 이곳으로 왔지만 호송하는 동안 관찰한 결과 전혀 악한 것이 없고 죄를 줄 수 없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보고를 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 결과 바울을 감옥에 수감하지 않고 바울이 셋집을 얻어 가지고 그곳에 유하면서 집에 오는 사람들을 다 영접할 수 있도록 허용하게 되였다. 쉽게 이야기하면 자유로운 가택연금 상태로 있게 된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심을 느끼게 된다.

바울이 호송되어 오면서 자유로운 몸으로 1.2.3.차 전도여행 할 때와 같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가이사랴에서 벨릭스와 베스도 총독을 비롯 2년 동안 가이사랴 감옥에서 전도하고 백부장 율리오를 비롯 함께 승선한 276명과 몰타섬 추장을 비롯 섬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한 일이며 보디올과  아피아 가도를 오며 전도한 행적으로 보아 로마로 가는 길은 바울의 4차 전도 여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