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이끄는 삶 시리즈 (10)
예배의 중심 (The Heart of Worship)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서론) 현대인들은 항복 (surrender) 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배의 중심은 언제나 전적인 항복 (total surrender) 이다. 진정한 예배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완전히 드리는 것이다. 항복이란 헌신, 십자가를 지는 것, 자신을 죽이는 것, 성령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 등으로 표현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이다. 항복과 헌신을 방해하는 요소는 ‘두려움’(fear)과 ‘자만’(pride)과 ‘혼돈’(confusion) 이다.
1. 내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 (두려움)
1)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없다
2)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두려움을 없애고 신뢰할 수 있다
3)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최고의 증거는 예수님의 희생이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2.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라 (자만)
1) 인간은 인간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2) 하나님같이 되려고 애쓰면 결국 사탄같이 되고 만다
3)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이상을 바라지 말라
3. 항복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혼돈)
1) 항복하는 것은 게으름, 포기, 겁쟁이, 비이성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2) 항복이 곧 자기의 독특한 성품을 억누르는 것도 아니다
3) 우리가 하나님께 더 많이 항복할수록 우리는 더 진정한 우리가 된다
4) 항복이란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다
(눅 5: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가장 항복하기 어려운 부분이 돈이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7) 전적 항복의 최고 모본은 예수님이시다
(막 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 항복의 축복은 무엇인가? (The blessing of surrender)
1) 평화를 경험한다
(욥 22: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2) 자유를 경험한다
(롬 6:17-18)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3) 능력을 경험한다 ... 하나님께 항복할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
5.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 (The best way to live)
1) 인간은 결국 어떤 것 (누구) 에 항복하게 되어 있다
2) 하나님이냐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냐 (타인, 돈, 분노, 두려움, 자만심, 욕망, 자아, 혼돈)
3) 하나님께 삶을 드리는 것 (항복) 이야말로 최선의 유일한 삶의 방법
4)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 자기를 죽이라. 그러면 오히려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결론) 예배의 중심은 항복이다 (The heart of worship is surrender)
(묵상질문) 나는 삶의 어떤 부분을 하나님께 숨기고 있는가?
목적이 이끄는 삶 시리즈 (10)
예배의 중심 (The Heart of Worship)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지체라는 것은 몸의 모든 부분을 말합니다. 우리들의 육체적인 몸 부분, 정신적인 부분인 마음, 생각이러한 모든 것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라! 오직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의의 병기’ 사실 우리의 몸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닙니다. 원래는 선하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악을 위해서 쓰면 악한 도구가 됩니다. 또 선을 위해서 사용하면 선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돈도 마찬가지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축복들이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께 드리면 참으로 귀하고 복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우리에게 저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수술도구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더럽고 병균이 우글거리면 그 도구로 사람을 수술할 수가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일 수 있습니다. 살인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끗하게 소독해서 병균이 없는 깨끗한 것으로 사람을 수술하면 그것은 살리는 도구가 되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소독약으로 깨끗하게 청소가 될 때 우리의 남은 생애가 하나님께 아름다운 의의 병기로 사용되게 될 줄 믿습니다.
(서론) 현대인들은 항복 (surrender) 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배의 중심은 언제나 전적인 항복 (total surrender) 이다. 진정한 예배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완전히 드리는 것이다. 항복이란 헌신, 십자가를 지는 것, 자신을 죽이는 것, 성령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 등으로 표현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이다. 항복과 헌신을 방해하는 요소는 두려움 (fear) 과 자만 (pride) 과 혼돈 (confusion) 이다.
우리 몸을 하나님의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라고 하는 것은 예배인데 ‘예배’는 항복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두 가지 있는데 그것의 첫째가 영적인 굶주림(spiritual hunger)입니다. 배가 고파야 합니다. 영적인 배고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배고프고 예수님에 목마른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사슴이 목말라 시냇물을 사모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이러한 영적인 배고픔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total surrender(완전항복)하는 것입니다. 캐톨릭에서 사제가 서품을 받을 때 대주교나 교황 앞에 바삭 엎드립니다. 완전히 배와 얼굴을 찬 대리석 바닥에 엎드려서 황복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내가 이제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단지 무릎 꿇고 안수받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황복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그 증거로써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일생을 사는 것인데, 그것은 의미는 있지만 모든 주의 종이 의무가 되어서는 안되고, 은사를 받은 독신의 은사를 받은 자가입니다. 구태여 주의 종이 된다고 해서 독신을 주의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개별적인 것으로 적용을 합니다만 하여튼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단순히 예배드려서 내가 기분이 좋다! 좋은 말 들었다. 아! 참 만족하다! 은혜를 받았다! 하는 차원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항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항복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예배다. 그것이 바로 예배의 중심이다.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두려움’ ‘자만’ ‘혼돈’입니다.
1. 내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 (두려움)
내가 정말 하나님께 항복할 수 있을까? 감히 혹은 내가 과연 항복을 할 때 그것이 효과가 있을까? 괜히 내가 손해나는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닐까?
1)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없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항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뭔가 투자를 했으면 거기에 대한 결실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인생은 도박이고 특히 예수를 믿고 산다는 것은 어마 어마한 도박입니다. 우리가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고 확실히 믿을 때 하나님께 투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적당히 교회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예수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정도의 주님께 헌신을 한다면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을 때 두려울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두려움을 없애고 신뢰할 수 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사실.
3)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최고의 증거는 예수님의 희생이다
저와 여러분을 책임져 주십니다.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자도 하나님처럼 완벽하게 사랑하실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증거가 무엇인가? 가장 큰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다!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를 이 땅에 보내셨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셨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
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을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는 그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러므로 그 예수를 우리가 믿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의 대상이 되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고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완전히 맡기고 항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엄청난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짜리다!’ 예수님께서 나를 값을 지불하고 사셨다. 너무나 값이 비싸서 값을 못 메깁니다.
“당신은 참으로 귀한 존재입니다!!!”
2.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라 (자만)
우리가 항복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자만(pride)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무 내가 아까운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맞먹으려고 합니다.
1) 인간은 인간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인간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나는 그의 피조물이다’ 하나님가 인간의 질적인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차원에 뛰어 들어갈수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맞먹으려고 할 때 파멸이 닥아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같이 되려고 애쓰면 결국 사탄같이 되고 만다
사탄은 타락한 천사입니다. 가장 서열이 높은 천사장이 루시퍼였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보니까 너무나 기가막힙니다.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항복하지 아니하고 대적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분노하셔서 하늘의 보좌에서 집어 내어던지시고, 그 사탄의 최후 타락한 천사장과 그를 추종하는 천사들의 일부 무리들을 완전히 멸하기로 작정하신 것이 지옥입니다. 원래 지옥은 타락한 무리들을 위해서 형벌주기 위해서 만든 것인데 이 사탄이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 아담을 획책 한 것입니다. 거기에 인간이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에게 항복해야할 인간이 사단에게 항복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가는 곳을 같이 따라가다 보니 어디까지 가게 된 것입니까? ‘지옥’까지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견딜수가 없어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사탄에게 항복한다는 것을 돌이켜 이제는 하나님께 항복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사탄따라 우리의 운명이 이제는 예수님 따라 천국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로.... 그러므로 원래 지옥은 인간을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사탄을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사탄 흉내내면서 사탄의 소유가 되니까 끝까지 따라가다보니 지옥입니다. 이게 예수를 모르는 운명,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3)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이상을 바라지 말라
그 이상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하면 불평이 생깁니다. 내가 좀더 잘나지 못했을까? 나는 왜, 키가 요 모양 요골인가? 나는 왜, 코가 문들어 졌을까? 이게 뭡니까? pride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입니다. 나는 능력이 이것 밖에 안되나? 나는 왜, 재물이 이것 밖에 안되나? 또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시기와 질투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그 사람을 불평하게 되고 자꾸 시기하게 된다. 이런것들이 모두 자만(pride)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사탄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아가는 위대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구세군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케더린 부스 여사 그는 여덟명의 자녀를 위대하게 양육하였습니다. 그 비결을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언제나 악마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나쁜 습관을 배우기 전에 좋은 습관을 가르치고, 악마가 나쁜 생각 가르치기 전에 먼저 어머니가 좋은 생각 가르치고, 악마가 나쁜 지혜를 가르치기 전에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치고, 악마가 사탄의 거짓과 위선을 가르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나님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먼저 하나님을 가르치라!’ ‘하나님을 먼저 택하라!’ 캐톨릭에서는 세 살 된 아이를 캐톨릭에 맡기시오, 평생을 책임지겠습니다. 그것은 어렸을 때 하나님을 가르치면 평생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먼저 하나님을 가르치라!
3. 항복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혼돈)
우리가 하나님에게 항복하는 요소는 혼돈이 되는 것입니다. 이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항복한다고 하니까 완전히 나만 손해보는 것 같이 느낍니다. 원래 세상에서는 항복이 인기가 없는 것입니다. 이겨야합니다. 세상에서는, 정복해야 합니다. 남에게 진다는 것은 결국 세상에서 실패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1) 항복하는 것은 게으름, 포기, 겁쟁이, 비이성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2) 항복이 곧 자기의 독특한 성품을 억누르는 것도 아니다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를 자유가 없고, 구속당하고, 할 것을 못하고, 돈 번 것도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갖다 바쳐야 하고, 예배도 한 두 번 드리는 것도 아니고,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 몽땅 못한 것만 있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오해라는 것입니다.
3) 우리가 하나님께 더 많이 항복할수록 우리는 더 진정한 우리가 된다
4) 항복이란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다
(눅 5: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말씀에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6) 가장 항복하기 어려운 부분이 돈이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돈을 돌같이 여기라!는 것이 아니라 돈을 섬기지 말라! 는 것입니다. 돈은 우리가 섬겨야할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돈이 우리를 섬겨야 합니다. 내가 돈을 사용하는 것이지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섬기고 항복하는 것은 하나님에게만이라는 것입니다.
7) 전적 항복의 최고 모본은 예수님이시다
(막 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이게 바로 항복의 모델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십자가 지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모세혈관이 터졌습니다. 땀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피가 되어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위대한 점이 무엇입니까?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저와 여러분이 항복하는 것은 무얼 말하느냐? 나에게 고통이 있고 문제가 있고 고난과 시련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면 그것을 수용하는 것. 그것을 무조건 없애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항복하는 길이라면,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라면, ‘주여! 내가 따르겠나이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께 항복할 때, 하나님의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할 때, 하나님은 당신을 포기하신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전적으로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나의 가장된 것을 그에게 드리면 하나님의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슈바이쩌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자신의 세 가지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첫째로 그는 음악가 였는데 바하의 음악에 심취했었는데 그것을 포기했고, 두 번째로 그는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대학교수직을 포기했고, 세 번째로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한 후 적도 아프리카에 가서 영적인 복음을 위해서 병원을 설립하고 영적인 구원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고 수 많은 사람을 치료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에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슈바이처의 포기와 희생에 대해서 ‘바하’협회는 모든 회원들이 참여하는 대형연주회를 아프리카에서 연주하게 해 주었고 대형오르간을 선물했습니다. 또 존경과 명예가 따르는 교수직을 포기했을 때 하나님은 그가 평생동안 강의할 만한 시간을 안식년을 맞아 1년동안 허락하셔서 전세계에서 가장 유수한 대학에서 초청강연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을 포기했을 때 그가 저술한 자서전과 수많은 책들이 베스트 셀러가 되어서 자신의 선택한 삶의 가치를 모든 사람에게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은 웃기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쇼펜하우어’입니다. 소펜하우어는 별명이 개똥철학자입니다. 그는 염세주의를 주장하면서 인간에게 최상의 길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 하였고 차선책이 빨리 죽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염세주의철학을 따르는 수 많은 철학도들이 얼마나 많이 자살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본인 쇼펜하우어는 73세까지 살다가 죽었습니다. 얼마나 얄미운 개똥철학자입니까? 자신이 이야기한 그것을 먼저 자신이 실천해야 진정한 리더인데 그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그가 가르친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 자신이 가르친대로 그것을 실천하시려고 33세에 십자가에 달려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다 예수처럼 죽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항복할 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4. 항복의 축복은 무엇인가? (The blessing of surrender)
1) 평화를 경험한다
(욥 22: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2) 자유를 경험한다
(롬 6:17-18)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3) 능력을 경험한다 ... 하나님께 항복할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
얼마나 능력이 큰지는 얼마나 하나님께 항복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평화와 자유와 능력, 이 세가지가 인간의 위대한 가치 아닙니까? 진정한 축복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항복함으로 다 받아 누리는 운명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5.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 (The best way to live)
1) 인간은 결국 어떤 것 (누구) 에 항복하게 되어 있다
2) 하나님이냐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냐 (타인, 돈, 분노, 두려움, 자만심, 욕
망, 자아, 혼돈)
인간은 무엇인가?에 누군가?에게 항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다른 것에 항복할 수가 있습니다. 인정과 기대에 항복할 수 있습니다. 물질에 항복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물질에 노예가 되어서 사는 사람은 돈에 항복된 사람입니다. 분노에 항복된 사람입니다. 두려움에~, 자만~ 욕심~ 자아~ 혼돈에 항복이 되어 살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항복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 삶을 드리는 것 (항복) 이야말로 최선의 유일한 삶의 방법
4)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 자기를 죽이라. 그러면 오히려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참축복의 최대 장애는 항복하지 않는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의 야망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세계에서 가장 크게 쓰임 받은 종이 ‘빌 브라이트’입니다. C.C.C총재 빌브라이트 박사. 이 빌브라이트박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원했는지? 모릅니다. 이 빌브라이트를 하나님께서 크게 쓰셨는가?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은 젊었을 때 하나님과 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계약서를 쓰고 거기에 사인을 했답니다. ‘나는 내 인생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전적으로 항복합니다’ ‘주여, 저를 마음대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그러고는 사인을 했답니다. 그 계약서를 빌브라이트는 젊은 시절에 그를 부르실 때 하나님 앞에 드렸답니다. 그 계약서를 가지고 그는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를 가장 위대한 종으로 들어사용하셨습니다.
(결론) 예배의 중심은 항복이다 (The heart of worship is surrender)
(묵상질문) 나는 삶의 어떤 부분을 하나님께 숨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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